퇴사를 확정한 그 순간, 속이 시원하고 통쾌해야 맞는데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인수인계는 그렇다 쳐도, 그 주에만 나에게 엮인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데 정신이 멍해졌다. 퇴사 전 1달 동안 살인적인 업무 폭격에 그 스케줄이 퇴사하던 주에 있었는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해졌기 때문이다. 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가 퇴사를 앞두고도 맘 편하게 쉴 수만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네이버 라이브 방송과 촬영 1건.
그중 네이버 라이브 방송은 퇴사 확정 당일 진행되는 업무이자 아무래도 타 업체와 엮여있고, 회사에서는 처음 하는 시도라 꽤 많은 공수와 노력, 그리고 에너지.. 그리고 그 곱절의 스트레스가 있었던 프로젝 트였더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내에서의 관심은 전무.
어차피 자기 일이 아닌 타 팀의 업무에는 관심 없는 환경이니까 그렇다 쳐도 대표와 이사들은 좀 너무했던 게 아닐까, 지금 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방송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할인율도 높아야 하고 혜택도 많아야 하는데, 어디서 또 쉰소리를 듣고 왔는지
'당장 해'라고 지시했던 그의 마음이 '너는 왜 내가 하라고 하면 무조건 하니, 넌 그게 문제야'로 돌아와
라이브 방송이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테스트로 이 비용을 주고 할 일이냐... 등등... 이건 뭐 진행을 해도, 안 해도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별별 일은 다 벌리시다가, 갑자기 라이브 방송에 딴지를 거시는 이유가.. 도대체.......
이해 안 되는 일들은 너무 많았기에 일단 진행하기로 한 것은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하자가 나의 목표였다.
그 당시 가장 업무가 많은 나와 Y의 어색한 공조(그래도 끝까지 자신의 일을 맡은바 다해주어 고마웠다).
설상가상 디자인팀 팀장까지 말도 안 되는 업무 방어로 (본인은 웹디자이너라 웹만 디자인하지 회사에 관련된 디자인 작업은 못해주겠다는...) 나의 화병이 정말 한계치까지 올라가 있던 상태로 어떻게든 업체와의 무한 커뮤니케이션에 나에게 남은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방송 당일까지 버텨온 것이었다.
라이브 방송 시간은 저녁 9시 반쯤이었던가... 늦은 밤에 해야 시청률이 높아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시간대이지만 퇴사를 확정하고도 밤 11시까지는 무조건 야근이 확정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난 못하니까 남은 팀원들 너네가 하라고 던져두고 싶지만, 어디 팀원들이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일, 거기다 원래 배당받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어찌나 철두철미하신지...
징징거리고 투덜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힘들어 죽을 것같은데 사람은 안 뽑아주고, 실장이 실무까지 책임지고 짊어져야하는 강압적인 분위기.
우리 팀원 중 한 사람이 미워, 가장 바쁜 우리 팀 내 인원은 안뽑아준다는 대표의 옹졸함이 부른 독박 파티..
이 라이브 방송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프로젝트일까....
어쨌든 그날의 라이브 방송은 시작되었다.
도저히 Y와 나 둘이서는 안될 노릇이고, 라이브 방송 브랜드의 당당자인 H 가 함께 있어 그나마 안심,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그리고 곧 나는 퇴사할테니 라이브 방송이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 할 것 같아 일단 남아서 진행 상황 체크하라고 남긴 홍보담당 (사실 이것도 내 오지랖이지 뭐, 나중에 또 라이브를 하면 혼자 남은 그녀가 힘드니까 미리 봐 두라는 나의 배려였건만...그녀는 진짜 '보.기.만'하고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나름 유명인인 스타일리스트랑 인사하고 싶어 어슬렁거리는 대표와 그의 꼭두각시 이사까지.
라이브 방송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라이브 중에도 계속 신경 써야 하는 댓글, 정보 알림 메시지까지.
정신없이 지나고 보니 라이브 방송은 모두 끝나 있었다.
성공적인 매출이야 내 알 바 아니었고(어차피 다 막아버린 고객 혜택과 할인율이라 기대감 자체가 없었다),
일단 한 두 달 동안 나에게 큰 짐이었던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서, 이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서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 홀가분했다.
부서질 것 같은 몸뚱이로 12시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웠다.
이렇게 라이브 방송을 끝냈는데, 바로 그다음 날 남양주에서의 촬영이 있었다.
사실 촬영 건은 MD 이사님이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 나는 가지 말고 내 밑의 에디터에게 온전히 시키라고 하였으나, 내 밑의 에디터는 혼자서는 절대 못한다고 자기가 혼자 하기엔 레퍼런스를 다 체크 못했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얼굴에 10년쯤 쌓아둔 정색을 표출한 그녀에게 홀가분하게 던질 수 없는... 또 다른 상황이었기에...
그 친구도 살아보려고 했던 몸부림이였겠지만, 나도 참..나고. 너네도 참 너네다...싶은 순간이였달까.
난 그냥 이왕 버린 몸 끝장을 보자는 마음으로, 그나마 아직은 남아있는 실낱같은 책임감으로 그 일정을 소화하려 했었던 것 같다.
촬영은 순간적인 센스와 감, 그리고 정확한 지시가 필요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그래서 푹 자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
눈을 감은 내 시야에 둥둥 떠다니는 '네이버 라이브'의 잔상들.
내가 만들었던 PPT 파일, 각종 이미지들, 브랜드 가방의 이름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네이버 라이브 방송 중, 계속 긴장해서 정보 메시지를 입력하고, 댓글에 답을 해주던 것이... 반복되어 눈을 감은 나에게 보여졌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은 기분이었으려나.
아마도 오랫동안 눌러왔던 스트레스와 이제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터져 나온 부작용이었겠지.
라이브는 끝났는데, 내 감은 눈 위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라이브는 그때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잠을 설치고 그 다음날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퇴사 일정이 픽스 된 날에도 야근을 하고, 밤을 새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