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디지만, 그래도 번아웃은 떠나갑니다.
작년 5월에 썼던 글을 브런치에 다시 올리고서 생각해 본다.
의식의 흐름대로 번아웃에 대한 글을 썼던 나는 왜 어느 순간 글을 멈춰버렸을까...
이유는 사실 심플했다.
번아웃에 대한 그 때 그 기억을 떠올리기가 너무 괴로워서.
다시 떠올리면 다시 미워지고, 미워지면 또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에...
지금은 다시 그들을 볼 일이 없지만, 좋지않은 사람들과 기억들을 다시 꺼내는 것은 나를 다시 스스로 고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 같아서, 굳이 글로도 번아웃과는 멀어지고 싶었던 것이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많은 일들이 번아웃이 수그러들때쯤 와르르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큰 어둠이 몰려든다고 했는데....
번아웃은 나에게 그런 어둠이었을까...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면...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번아웃 탈출을 위해 만나뵈었던 심리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내 가까이에서 나를 좀먹는 존재들을 모두 떨치고자 했었는데..
그시절... 그런 존재는 몇 없었지만, 핵심이었던 인물은 전 남자친구였다.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 내 옆에 있어주지도 않았고 나의 번아웃을 그저 남의 일 처럼...
혹은 그냥 쟤가 힘든것 같으니 나도 힘든데, 귀찮다... 던져두면 혼자 낫겠지...라고 쉽게 여기다가
영원히 나를 잃어버린 그...라고 표현하면 올바른 표현이려나?
그와는 오래전에 이별했었어야 했는데...일에 너무 바빠서..내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던 내가..바보처럼 그와의 인연을 그저 명목상으로만 이어갔을 뿐...
(그렇게 번아웃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과 별 필요도 없는 사람을 가려내게도 해 준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래 이별을 준비한 것 같았고, 헤어짐을 요구했을 때도 또 그에게 그 요구를 거절 당했을 때도 나의 결말은 정해져있었다. 그렇게 나는 후유증도 없는 이별을 했다.
또 다른 이슈는 또 다른 이직.
번아웃후 이직에 성공했던 그 회사에서의 6개월은 나름 살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울만 좋았을 뿐... 내실이 썩어들어가고 있었고,
젊디 젊은 대표는 컨셉츄얼한 회사 브랜드를 이용해 투자금은 받았지만, 그 투자금을 흥청망청 쓰고, 허세부리다가 결국 회사를 키우는 것에는 실패...
지금은 회사 사무실도 접고 온라인 사이트하나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월급이 밀리기 시작할 때 빠르게 탈출에 성공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월급을 못주는 회사가 말이 되나..
번아웃 이후, 운이 풀리려는지 마침 내가 공부하던 교육원의 선생님께서 좋은 자리를 추천해주셨고,
그 회사의 면접을 보고 합격!!!
내가 기존에 했던 패션과 라이프 관련 업무는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였고 무엇보다 내실이 탄탄하고 사람들이 좋아보여 선택한 회사였기에 적응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슈. 지금의 내 남편을 만났다.
전남친과 헤어지고... 벌써 꽉 차다못해 흘러내리는 나의 나이(30대 후반)과 남자를 만날 길 없는... 답답함..
그리고 정말 내가 결혼을 꼭 해야하나...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점에 그는 내 인생에 뿅하고 나타났다.
인연이 누군가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 시기가 따로 있다고 하더니..
사실, 이젠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각종 선을 볼 준비를 하고 있던 터에..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서로 첫 인상은...'아 내 스타일은 아니다'로 시작했는데, 대화가 너무 잘 되다보니..
스르륵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물들었다고 해야하나...ㅋ
결혼하기까지는 굉장히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이 많지만. 여튼 우리는 결혼했다.
번아웃을 겪고 난 후, 1년이라는 시간 안에 내 인생에서 정말 폭풍처럼 많은 것들이 훑고 지나갔고,
새로운 시절이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 나에게 있어 번아웃을 겪었던 시절은 '아 지금의 행복을 위해 겪어야 했던 시련이었나'싶긴 하지만,
그때는 죽을만큼 힘들었고 괴로운 눈물의 하루하루였는데..
그 힘든 시간들이 있어, 지금의 단단한 내가 되고.
또 현재 내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음을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번아웃은 사실,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내 가족에게도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절대 들이게 하고 싶지 않은
손님이다.
만약 번아웃이라는 놈이 당신의 인생에 기웃거린다면,
부디 강한 신념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훠이훠이! 쫓아버리길.
그리고 번아웃이라는 놈이 이미 당신의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 당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
충분한 휴식과 위안으로 번아웃이란 놈을 부드럽게 녹여버리길..
(시간은 물론 꽤 걸릴테지만, 억지로 떼어낸다고 떼어지는 놈이 아니더라)
당신의 인생에 번아웃이라는 손님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애정을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번아웃은 당신을 더 멋지고 자기다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경험이자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좀 먹게 하는 상황, 인간, 시간을 더 이상 참고 있지만 말자!
우리는 소중하고, 우리의 인생은 더 없이 가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