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억의 편린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꿈꾸던 삶과 대립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과연 주저앉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삶이 나에게 다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저 함구한 채로 우두커니 앉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기억을 먹고 살아간다. 정확히는 기억을 ‘되새김질’ 하며 살아간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그렇게. 나를 이루는 수많은 기억들 중 미소 짓게 만드는 몇몇 덕분에 큰 숨 한 번 쉬고 다시 두 발로 땅에 디딜 수 있게 된다.
뇌는 좋지 않은 기억들을 일정시간이 지나면 미화시켜 좋은 기억으로 변환시킨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개체는 이미 지구에서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 안 좋은 기억들이 모두 뇌리에 박혀 여전한 스트레스로 존재하게 된다면 우울과 온갖 질병을 포함해 자살률도 극에 치달았을 테니. 뇌가 겨우 미화라도 시켜주니 ‘맞아. 그때 참 힘들었지만 좋은 기억이었어.’라는 대단한 문장도 만들어내겠지. 그 당시에는 울고불고 힘들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시간이 지나면 ‘피식’ 하게 되는 위대한 마법. 오직 시간만이 부릴 수 있는 신기한 마술일지도.
작은 기억의 편린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한, 친구와 함께한, 연인과 함께한, 나와 함께한 가슴 시릴 정도의 애틋한 추억 한 두 개가 나를 아직도 살아 숨 쉬게 한다.
세상의 입긴 서린 차가운 공기에 타협하고 싶지 않다. 나를 주저앉히고자 하는 입김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고작 그 정도의 편린으로 역경을 이겨내겠다고?”라고 묻는다면 “충분히!”라고 무심히 답해야지.
좋은 기억의 편린들이 작고 작게 내 몸속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다. 그들은 돌고 돈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그들도 소멸되지 않는다.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 내가 평생 잊지 않을게.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