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ho Kim Feb 24. 2017

한국어에서 관사 찾기

보편 문법이란 무엇일까

외국인 친구가 한국어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한국어는 정말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이 많이 있단 말이지. 동화책에 이런 문장이 있어.

'옛날에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무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거지?

'옛날에 할아버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나무꾼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왜 안 되는 거야?"


정말 이상한 문장이고 이상한 질문이었다. 까다로운 맞춤법이나 어려운 문법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저 문장은 틀린 문장이었다. '왜'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말이었다. 누구라도 보자마자 같은 이질감을 느낄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조사에 대해서 배운 것이 가물가물하게 기억났다. 주격조사 '은/는/이/가'가 명사 뒤에 붙어서 주어임을 나타낸다,라고 배웠던 것 같다. '은'과 '는', '이'와 '가'는 단어 마지막 음절의 받침 유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까지가 내 지식의 전부였다. '은/는'과 '이/가'는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여러 문장들을 만들어보았다.

'날씨는/날씨가 좋다.'

이 문장에서는 '는'이 한정을 시켜주는 느낌이었다. '은/는'은 대상을 한정시켜주면서, 집합 외의 개념에 대해 배타적인 느낌이 내포되어 있기도 했다. '이/가'는 그보다 좀 더 가치중립적인 느낌이다.

'나는/내가 좋다.'

이 문장에서는 '는'이 '나'라는 개념을 제한시켜주면서, 문장을 좀 더 공손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럴 때에 '이/가'는 제한시키지 않은 표현으로 '은/는'과는 대비되는 느낌이다.

아, 주격조사 '은/는'은 한정적인 개념이구나.


그런데 이런 문장도 있었다.

'한국어는 공부하네.'

한정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조사 '는'이 사용되었는데, 한정적인 용법을 제외해보면 '한국어가 공부하네.'라는 문장은 틀렸다. '한국어를 공부하네.'가 맞는 말이었다.

어라, '은/는'이 주격조사가 아니잖아?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니 역시 '은/는'을 주격조사로 배운 것은 틀린 내용이었다.


외국인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려니, 영어의 관사에 비유해 설명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주격조사 '이/가'는 영어에서 'a(n)/some' 같은 뉘앙스이고, '은/는'은 'the' 비슷한 뉘앙스라고 설명했다.


굉장히 까다롭고 정교한 개념이었다. 내 뇌의 언어를 담당하는 어떤 부분은 뉘앙스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왜'를 알기 위해서는 블랙박스 같은 언어 회로를 면밀히 조사해 편안함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패턴을 찾아야 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모두 같은 회로를 가지고 있고, 이 부분에 의해 공통적으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언어를 담당하고 있는 부분은 굉장히 치밀하게 작동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S는 촘스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하는데, 위대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언어가 뇌에 종속되어다고 보았다. 따라서 모든 언어들이 보편적인 문법(Universal grammar)을 가진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외국어를 처음 공부할 때에는 언어라는 것이 우연하게, 불규칙하게 발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뇌의 하드웨어적 능력 따라 핵심 개념들이 조금 다르게 발현되는 것일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뇌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어서 가장 많은 진화적 압력을 받은 게 아닐까. 언어 회로의 수준으로 과학적 사고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