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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o Kim Jan 05. 2017

브런치 재수생이 쏘아 올린, 丙申年 글

나는 브런치 재수생이다

인기 작가 진 님이 브런치를 추천해주어서 단칼에 작가 신청을 했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사유는, 글쎄, 브런치가 베타 서비스 기간이어서 보유한 바이트 수가 좀 부족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작가가 아니어도 글을 저장할 수는 있잖아? 아니, 바이트 수가 모자란 걸 거야. 더 생각하지 말자. 베타 서비스면 운영하기 힘들겠지. 당연히 바이트가 부족할 테니까. 부탁받은 너른 양해를 해야만 하겠다.

글쓰기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었다.

사실 가볍게 블로그 같은 서비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도 밥 세 끼 잘 먹었네' 수준의 글을 너덧 줄 끄적여 신청했었다. 정말이지 거절당해도 싼 글이었다. 거절을 당할 것이란 생각조차 못했다. 살면서 거절을 많이 당해 익숙했지만, 브런치의 거절에는 좀 놀랐던 것 같다. 열심히 써야겠네.



주토피아: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작가 신청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제약 조건은 처음 글을 공개하는 느낌, 주토피아 영화를 입히는 것, 목표를 최소한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구상에서부터 흐름을 짜는 데까지 몇 시간이 걸렸고, 문장을 쓰고 퇴고를 하는 데 5시간 정도 더 걸려 총 10시간이 안 되게 들었다. 주말 하루를 전부 들였. 영화의 흐름을 주로 따라가며 썼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이건 그냥 열심히 쓴 일기다. 예상 독자가 나 자신인지, 영화를 본 사람인지, 보지 않은 사람인지에 대한 고려도 없다. 제목도 너무 평이하고 도입은 없다고 봐야겠다. 제목과 부제를 포함해 첫 몇 문장은 타인에게 보내는 내 세계로의 초대장인데, 초대란 개념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 평생 글쓰기를 꾸준히 해왔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글을 써 본 적은 없었고, 나와는 매우 다른 타인을 초대한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친절한 진 님에게 '이미지를 넣고 두괄식으로 글을 쓰는 게 좋겠다'는 고마운 조언을 받았다. 그럼에도 미괄식 글쓰기를 버릴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내 사고체계가 미괄식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깊은 고민과 험난한 연습이 필요할 것이었다.



엑셀 예찬론 - 문과생의 서바이벌 프로그래밍

문과생의 논리적인 사고를 표현하고 싶었다. 제약은 엑셀에 한정예상 독자층을 넓게 가져가는 것, 그리고 기술적인 글을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역시 목표를 최소로 하고 글에 제약을 많이 담았다. 조건들이 간단하지 않아서 구상과 구체화에만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문장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퇴고를 하는 데에도 5시간 넘게 걸려 총 20시간이 조금 안 되게 걸렸다.


단락에 대한 짜임이 주토피아보다 아주 약간 낫지만 역시 도입이 미흡하다. 문장이나 단어 단위의 고민이 별로 다. 그럼에도 제약을 적당히 구체화한 구성은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사람들의 반응도 무난했다. 정보성이 아닌 재미있으려는 엑셀 글임에도 조회수가 적지 않게 나왔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거절의 회고 - 한국의 중금리 대출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의 의미

전쟁 같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큰 그림을 잊어버리기가 쉬운데, 에잇퍼센트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예상 독자는 회사 내부였다. 제약은 공개할 수 있는 이야기와 없는 이야기를 적절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적인 문제나 회사 정책상의 문제들을 잘 조율해야 했다. 구상과 구체화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복잡한 감정을 깔끔하게 담아내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총 20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내 스타일이 까다로운 미괄식이라는 것을 계속 인지하고 있지만, 예상 독자를 혼동하거나 제약에 타협하면서 도입을 잘 쓰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 실패였다. 돌이켜보면 제약들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세우고, 도입부를 절대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전체적으로도 늘어져, 더 압축하고 담백하게 담아냈어야 했다. 문장이나 단어 단위에서도 부끄러운 글이다. 회사 내부의 반응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회사 외부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만한 글이어서 조회수도 낮았다. 다양한 제약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글을 써보는 데 의의가 있었다. 정말 어려웠다.



에잇퍼센트 개발 면접문제를 풀어보자 - Recursive function의 이해

문과생도 엑셀을 넘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예상 독자는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약은 회사 개발 면접문제 안에서의 내 논리를 표현하는 것, 그럼에도 흥미진진할 것, 누군가에게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목적과 제약의 조화가 매우 적절해서 쓰기가 쉬웠다. 5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이 문제는 '2016년의 나를 자극했던 문제' 3위였다. 당시 사고 흐름을 거의 그대로 풀어낸 것이어서 글과 코드의 중간적인, 주석과 유사한 느낌이다. 코드를 이미지로 표현한 것도 방법상 신선하고 글 흐름에 적절했던 것 같다. 프로그래머를 초대하기에도 괜찮은 제목과 도입이었던 것 같다.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있지만, 지금까지 가장 조회수가 많이 나온 글이었다. 안하게 썼다.



스타트업, 공감이 중요하다 - 에잇퍼센트 팀 매거진 발행

즐겁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상 독자는 회사 내부였다. 제약은 에잇퍼센트 팀 매거진에 대한 성과를 담고 구성원들의 글쓰기를 독려하는 것, 그리고 회사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싶은 것이었다. 목적과 제약을 한 묶음으로 엮어내는 것이 매우 까다로웠다. 구상하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무리 다듬어도 매끄러워지지 않았다. 25시간 정도 걸렸다.


예상 독자가 '특정 소수'라는 전제로 도입을 썼는데, 불특정 다수에게는 정말 별로였다. 아니, 도입뿐 아니라 대부분의 단락에 문제가 있다. 충돌하는 조건들 사이에서 혼란에 져 구조가 조각나버렸다. 지금도 다시 읽는 것이 부담스럽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즐겁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회사 내부의 분위기가 생기는 데 일조했는 점에서 최악은 면했다. 드디어 이미지 같은 이미지를 도입해보려는 시도를 했다. 다른 사람들의 문장을 패러디해보면서 문장의 건조함에 대해 돌아볼 수도 있었다. 이전엔, 글은 당연히 하고 유려한 문어체로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생각했다.



회식은 필라테스로 하시죠 - 에잇퍼센트의 건강법

회사의 문화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예상 독자는 에잇퍼센트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 제약은 가벼운 글을 재밌게 쓴다는 것과 필라테스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목적과 제약으로 인해 쉽게 쓸 수 있었다. 10시간도 안 걸렸다. 혜승 님이 써보라고 응원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까다로운 목적을 설정하거나 다양한 조건을 넣을수록 어려워지기만 할 뿐이라는 걸 배웠다. 공들인 글보다 자연스러운 글이 쉽고, 쉬운 글이 잘 쓰였다. 적절한 초대와 독자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미괄식 글임에도 흐름 조절이 적당히 되어 '빨리 결론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발전했다. 문장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글과 독자 사이의 거리를 약간 좁힌 느낌이다. 조회수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놀랐다.



머신러닝에 도움이 된 기초과목 - Andrew Ng 수업을 마치며

머신러닝 과제는 '2016년의 나를 자극했던 문제' 2위였다. 지적 자극을 나누고 싶었다. 예상 독자는 머신러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 제약은 문제를 직접 풀지는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조건을 많이 설정하고 쓰는 글의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서 가능한 완화하려고 했다. 역시 10시간도 안 걸렸다.


상 글을 쓰고 보니 석사과정에서의 공부가 너무 미천해 부끄러웠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제학도라면 당연히 편안하게 느껴야 하는 것들이 가물가물했다. 덕분에 지금도 글을 다시 읽기가 부담스럽다. 스스 읽고 싶지 않은 글을 공개하는 것이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바이트를 아껴야 하는 게 아닐까?



스타트업으로의 출근길에 서기까지 - 부적응 학생의 좌충우돌 생존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에게 졸업 축하를 받았다. 심지어 이효진 대표님졸업을 축하하는 글을 써주셨다. 화답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에 나온 출사표 같은 것을 써보고 싶었다. 제약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 어쩌다 생겼는지 모르겠는 '좋은 교육을 받고 곱게 자라왔을 것 같은' 이미지를 벗는 것, 앞으로의 일보다는 실제로 했던 것을 주로 표현하는 것, 마지막으로 최대한 방어적으로 쓰는 것이었다. 목적과 조건들을 잘 짜인 글 하나로 엮어내기가 간단하지 않았다. 구상에서부터 흐름을 잡는 데만 15시간이 걸렸다. 적지 않은 양의 일기, 블로그, 이메일, 편지에서 필요한 내용을 찾는 데에 10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고 퇴고하는 데 10시간, 이미지를 찾는 데 또 10시간이 걸렸다. 총 40시간이 가볍게 넘게 걸렸다. 정말 내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을 들이고 싶었다. 삼 주 동안 주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결코 쉽지 않았다.


대안학교에서의 추억은 가슴 저리게 아름다웠는데, 스토리에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 글을 붙잡고 있는 삼 주 내내 추억을 못 담는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고민을 많이 해보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지쳐갔다. 표현의 관점으로는 제목과 도입에 어느 정도의 성장이 보인다는 점이 좋았다. 문장과 단어 수준에서의 고민도 해보았다. 글이 본업이 아닌 이상 모든 문장에 대해 공을 들일 수는 없으니, 아쉬운 대로 강약의 조절이 보인다. 이미지와의 조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해원 님무료 이미지 사이트 글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몸으로 배우는 체험 작업환경 - 불쌍한 나의 컴퓨터 이야기

가벼운 글로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었다. 목적도 제약도 별로 없었고, 단순히 작업 환경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야 할 때여서 컴퓨터 이야기를 했다. 이미지를 찾는 데 공을 많이 들여 10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제목과 도입 설정, 그리고 이미지 삽입이 조금 안정적이 된 느낌이다. 문장도 부드럽고 가독성이 높아졌다. 조회수는 적었다. 하지만 일 년 동안 글쓰기가 조금 발전한 것이 보여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문과생으로서 글쓰기는 평생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옛날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조악하기 짝이 없다. 너무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지 않게 어떤 형태로든 피드백이 중요한 것 같고, 배우는 입장에서 열심히 쓴 글 하나보다는 적당한 다작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양한 조언을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또 내 글을 응원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 새해엔 더 즐거운 글, 더 맛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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