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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ungho Kim Feb 26. 2021

주니어 디자이너를 해드로 만들기까지의 3년

(제가 영국에서 한 기업의 CEO로 일할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유명브랜드 출신의 해드 디자이너를 보내며 남아있는 또 한명의 디자이너를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차 였다.
그녀는 26살의 주니어 디자이너였고 그 마저도 계약직이었다
회사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디자이너 한분을 더 쓸 여유도 없었고 해드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생각에 계약직으로나마 주니어 한명을 썼던 것 같다. 그녀의 역할은 해드 디자이너가 디자인 시안을 쓱쓱 그려주면 그것들을 컴퓨터로 작업해서 작업지시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상 자신의 디자인 없이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녀도 함께 내보내려 했다. 남성복 브랜드에 여성 디자이너라는 점이 썩 내키지 않았고 경력도 아직은 미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다.

출근 첫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장 먼저 주니어 디자이너와 미팅을 진행했다. 그녀의 이력과 개인 포트폴리오를 검토했다. 두개의 괜찬은 브랜드들에서 인턴 생활이나 계약직으로 일을 했고 그때 만든 제품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냥 평범했다. 오히려 대학때 만든 포트폴리오가 흥미로웠다. 여성이지만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포트폴리오였고 새로운 발상이 돋보이는 포트폴리오였다. 본인의 뜻을 물어보니 그냥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남은 계약기간 6개월을 지켜주기로 약속했다.

6개월간 그녀의 역할을 단순 반복 작업에서 변경을 시켰다. 다음 시즌 디자인 컨셉을 잡기 위해 시장조사를 시켰고, 룩북에 대한 컨셉을 정리시켰고, 주요매장(고객사)에 대한 방문 및 숍매니저 인터뷰 진행 및 기록을 정리시켰고, 거래하고 있던 3개의 외주공장에 매주 가보게 했다. 공장 방문의 목적은 새롭게 사용되고 있는 소재가 무엇인지, 색상은 어떤게 인기있는지, 스타일과 핏은 주로 어떤지,, 등등 다른 브랜드들의 생산상황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었다. 다음 단계는 우리 창고를 조사시키는 것이었다. 창고에 보관된 기존 원단재고를 리스트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와 같이 하나하나 살펴보고 확인해 새 시즌에 사용할수 있는 것들을 다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주니어 디자이너 손에서 작은 레인지이지만 새 시즌 무드보드가 나왔고, 룩북 컨셉이 나왔고, 디자인 시안이 나왔고, 소재 계획이 나왔다. 살림살이가 어려웠기에 외부 디자인 스튜디오 사용없이 주니어 디자이너를 데리고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룩북 사진 촬영도 모델없이 제품만 보여주는 식으로 자체적으로 만들었고 인쇄만 외부에 의뢰했다.

이 전과정을 주니어 26살짜리가 불평없이 다 하는 모습을 보고 정식직원으로 고용계약을 했다. 물론 급여도 계약직일 때 보다 37% 인상해 주었고. (계약직 때 워낙 낮아서)

그녀는 후에 부서 책임자가 되었고 그녀 손을 거쳐 많은 신상품과 콜라보 제품들이 시장에 나왔다. 계약직으로 있었던 직원이 6개월 후 Permanent employee로 전환되고 부서장으로 승진하는 기간이 총 3년 걸렸다. 같은 기간에 급여는 정확히 두배가 되었고.

그녀를 육성시키기 위해 영국내 지역적 특색을 가진 소재써칭, 스코틀랜드 전통 타탄 연구 및 협업, 아일랜드 린넨 탐구 및 사용, 일본 데님 공장 방문, 기타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시장 조사, 영국내 임가공 공장들 다수 조사 평가, 주요고객 정기적 방문 & 인터뷰, 등
불과 3년 사이에 허드렛일을 하던 계약직 직원이었던 직원은 셀프릿지 남성복 라인 책임자와 마주앉아 미팅을 하고 사카이 디자인 책임자와 협업을 하고 비비안웨스트우드 디자인부서와 교류하는 사람으로 발전했다.

그녀의 최종적인 꿈은 유럽무대에 자신의 브랜드를 세우는 것이었는데 2016년여름부터 3~4년간의 경험이 부쩍 그 목표에 다가서게 해준 것이 분명했다.

모르는 분야 디자인 쪽이었기에 더 조심스러웠고, 무턱대고 맡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주저하지도 않았던 시간이었다. 직원의 가능성을 보았고 작은 기회를 주었고 태도와 능력을 보았고 발전하는 모습에 따라 더 큰 기회를 주었고 더 큰 책임감을 요구했다. 그렇게 초보 CEO와 초보 디자인책임자의 상호 발전이 만들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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