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헌 Nov 10. 2018

영국 가디언이 주목한 한국 북저널리즘과 포지셔닝

<미디어의 미디어 9> 출간 이야기 ③ 북저널리즘

혁신은 모방을 부르고, 모방이 반복되면 트렌드가 된다. 트렌드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가 다시 혁신을 만든다. 모든 산업에 통용될 법한 말이지만, 미디어 산업에서는 특히 그렇다. 국내외 미디어 기업 9곳의 리더들을 인터뷰한 신간 <미디어의 미디어 9>의 출간 후기를 연재한다. 스팀잇, 쿼츠, 악시오스, 모노클, 업데이, 퍼블리, 북저널리즘, GE리포트, 카카오 루빅스의 남다른 시도를 통해 미디어의 변화를 읽는다.


북저널리즘(BJ)의 이연대 스리체어스 대표를 만난 작년 7월 말 저녁엔 웃비가 내렸다. 광화문과 자하문, 세검정을 지나 평창동 사옥에 도착. 그날 북한산 허리춤에는 비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나는 비탈진 고개에 차를 두고 문을 두드렸다. 이 대표가 안내한 사무실에는 책상 대여섯 개와 인문서가 빼곡한 책장, 교열지가 보였다.


이제 두 달 된 브랜드에 혁신 타이틀을 붙여도 될까, 하고 나는 인터뷰 전까지 고민했다. BJ이 그때 발간한 책은 200쪽 이내의 6권이 다였다. 당시 서점과 온라인에서 BJ를 눈여겨본 나는 이연대 대표에게 만남을 요청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인터뷰 당일, 준비한 스무개 내외의 질문이 끝나고 이 대표와 나는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앞서 이어령 작가,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문열 작가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을 인터뷰한 그는 나와 마주한 내내 펜을 놓지 않았다. 그리곤 주말이 채 지나기 전에 이메일로 장문의 덧글을 보냈다. 이연대 대표가 인터뷰어로 나선 스리체어스의 바이오그래피는 내가 인터뷰 교본으로 삼는 책이다. 인터뷰이로 만난 그는 배울 게 굉장히 많은 업계 선배였다.


내가 꼽는 북저널리즘의 특장점은 영리한 포지셔닝이다. 국제 테크 경제 문화 기사를 주로 보지만 단신보다는 20매 이상의 분석 꼭지를 보고, 칼럼을 좋아하지만 소위 편집국 어른들의 팩폭보단 2030의 창업 스토리를 듣고 싶고, 책을 가까이 하지만 200p가 넘어가면 덮기 일쑤인 나에게 '미드 분량'을 강조하는 북저널리즘은 적절한 분량과 주제를 고루 갖춘 콘텐츠였다. 카테고리는 밀레니얼스Millennials, 밸런스Balance, 퓨처Future, 폴리틱스Politics, 비즈니스Business로 구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쁘다! 모스 부호가 연상되는 BJ의 로고는 세미콜론을 형상화한 것.


예전엔 생김이 요상해도 '그래도 누구 책인데' 하고 샀지만 이제는 영 아니면 도서관서 빌려 본다. 이창래, 레이먼드 카버 등 내내 기다린 번역서의 출간일에 뜨악한 적이 여러 번.


ⓒ북저널리즘
ⓒ북저널리즘


BJ의 '뉴스처럼 빨리, 책처럼 깊이있게'라는 슬로건은 신문과 단행본의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익숙하지만 낯선 어떤 선언으로 들렸다. bookjournalism.com 도메인이 비어 있길래 서둘러 등록했다는 후문. 


이연대 대표는 콘텐츠를 더 이상 매거진과 신문, 책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북저널리즘 편집부는 공급자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으로, 매주 이메일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 모처의 공간에서 취재하고 기획한 텍스트를 쏟아낸다. BJ 편집부는 업무도 이용자 중심으로 바꿔, 독자가 원하거나 원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걸 적절한 때에 쓱 하고 제공한다.


뉴스처럼 빠른 Saturday Edition 인터뷰 꼭지와 책처럼 깊이있는 20분 내외의 디지털 기사까지 북저널리즘 콘텐츠의 바이라인에는, 저자와 에디터가 함께 이름을 올린다. BJ의 단독 인터뷰를 받아쓴 언론 기사도 여럿. 현장 감각이 있는 전문가가 쓴 적당히 도톰한 페이퍼백(종이책) 또는 픽셀백(디지털북)은 웬만한 분석 기사보다 깊이있고 여느 단행본보다 시의적절하다.


미디어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스리체어스의 실험은 니치마켓을 파고든 유의미한 시도다. 이런 성과를 증명하듯, 올해 하반기엔 영국의 가디언, 인디펜던트와 국내 최초로 파트너십을 맺었다. 대박! 그 가디언? 하고 물어보는 지인이 다수였다. 위화의 가디언 기고를 번역한 디지털 콘텐츠는 꼭 읽어보길!


가디어의 롱리드(The Long Read). 가디언의 콘텐츠를 엄선해 bookjournalism.com에 게재한다는 게 북저널리즘 편집부의 설명.


스리체어스는 출판사가 아닌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흔히 스타트업의 우선 조건으로 고유 기술을 꼽는다. 이 대표에게 스리체어스만의 기술과 노하우가 있나? 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스타트업의 우선 조건이 고유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타트업을 이용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곳이라고 정의한다. 대개 반복과 확장은 IT 기술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에, 기술과 스타트업이 동의어처럼 여겨진다. 우리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콘텐츠 분야에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많지 않다. (…) 뉴스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곳이 많지만, 데이터, 기술 기반의 뉴스 큐레이션 회사를 제외하고, 뉴스를 자체 생산하는 곳 중 스타트업이라 할 만한 곳이 드물다. (…) 레거시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독특한 주제에 천착한다고 해서 뉴스 스타트업이 될 수는 없다."


반복과 확장이 가능한 BM, 백퍼 공감.


북저널리즘의 실험은 진행형이다. 가장 기대되는 건 오디오 콘텐츠. 서브스크립션 모델도 곧 론칭할 계획이다. 종이와 디지털, 오프라인 공간을 넘나드는 BJ의 실험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여느 영 미디어처럼 수선 떨지 않고, 간결하지만 가볍지 않고, 무엇보다 독자의 지갑을 열게 한다.


올해 상반기 디지털 콘텐츠를 공개하고 종이책과 투트랙 전략을 내세우는 BJ는 11월 현재, 9월 마지막 주에 비해 회원 수는 100%, 판매량은 30% 이상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광화문의 대형서점과 신촌과 강남 동네서점의 주요 매대와 인스타그램에는 북저널리즘의 콘텐츠가 속속 보인다.


아래는 <미디어의 미디어 9> 본문에 실린 북저널리즘 꼭지의 일부.


"북저널리즘은 일간지와 단행본, 주간지, 월간지의 벽을 허문,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깊이와 시의성을 갖춘 심층 리포트를 1년 내 월 20개씩 발행하겠다는 이 대표의 포부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자 수급은 어떻게 하지'였다. 이에 북저널리즘 제작진의 '전문가의 기자화'를 내세운다. 저자도 에디터도, 북저널리즘에서는 기자다. 책보다 빠르고 뉴스보다 깊이 있는 콘텐츠를 지향하는 콘셉트에 걸맞다. 이 스타트업의 퍼포먼스를 그저 언론사 베끼기로 보기엔, 신문의 그것과 성격이 다르다."


"북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뿌리가 책에 있다'는 오래된 명제를 꺼내 들고 2017년에 등장했다.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은 속도는 빨라졌지만 깊이는 아쉽다. 반면 책은 너무 두껍다. 북저널리즘은 짧게는 20분, 길게는 2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최근 공개한 웹사이트에는 리딩 타임을 표기해 디지털 콘텐츠에서도 두께감을 느끼도록 도왔다. 최근에는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고 플랫폼 확장에 나서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상당할 것 같다. 깊이와 시의성을 모두 갖추려면 제작 기간을 감안할 때 결국 미래 이슈를 예측해야 한다는 뜻인데.


일간지, 방송 뉴스와 콘텐츠의 속성이 달라서 아직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제시하는 고유한 관점과 통찰은 단순 사실을 다루는 데일리 뉴스보다 콘텐츠의 생명력이 길다. 예컨대 아마존의 무인점포와 라스트 마일 배송(last mile delivery) 소식을 단순 소개하면 며칠 내로 휘발되지만, 아마존을 비롯한 물류업의 혁신 사례를 통해 물류와 산업의 미래를 전망하면 오래 읽힐 수 있다.


미래 이슈를 제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주목받지 않던 주제를 이슈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직 사회 이슈로 부상하지 않았지만 숙고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조명하고자 한다. 의제 설명은 저널리즘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 인디펜던트와 국내 최초로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국인의 영어 구사 능력이 과거보다 월등히 늘었지만, 영어를 국문만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독자를 1980~1990년대 초에 태어난, 스마트한 코즈모폴리턴이라 상정할 때 국내 콘텐츠만으로는 독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 매체들과의 협업을 고민했다. 롱폼 저널리즘의 전형인 가디언의 롱리드(The Long Read)를 읽을 때마다 필진들의 고유한 관점과 사유, 문학적 서사가 탐났다. 단편 소설 한 편 분량이라 지루할 새 없이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세계 각지의 이슈를 현장감 있게 다루고 있어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텍스트 편식을 막기에도 좋다. 좋은 글 중에서도 더 좋은 글을 가려내어 북저널리즘에서 번역, 소개한다. 두 매체 외에 다른 미디어 회사와의 협업도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북저널리즘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999728


<미디어의 미디어 9> 출간 이야기 ①

뉴욕 베를린 서울의 혁신 미디어 스타트업 9

<미디어의 미디어 9> 출간 이야기 ②

GE리포트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경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GE리포트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경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