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편집과 비슷한 부분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박종인 씨가 쓴 <기자의 글쓰기>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명확하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 모호하게 쓰면 비평가들이 달라붙는다." 이는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말이라고 한다. 영화와 정확하게 들어맞는 부분이다.
관객은 영화 <극한직업>을 볼 때 헷갈려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웬만해선 모든 게 명확하다. 영화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흥행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관객들이 이야기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엉클 분미>는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찾진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관객은 정글 속에서 길을 쉽사리 잃는다. 영화의 많은 부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전문 평론가들은 물론 어중간한 관객 평론가들도 좋아할 만하다.
"이들 몇 가지 원칙을 하나로 정리하면 '글은 쉬워야 한다'다. 쓰기 쉬운 게 아니라 읽기에 쉬워야 한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저) 중에서
조금 고쳐 말하자면,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헷갈려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나의 스승인 돈 캠번(Donn Cambern, <이지 라이더> <고스트 버스터즈 2> <보디가드> 등의 편집자)은 그에게 딱 한 가지의 원칙이 있다고 한다. "관객을 지겹게 하거나 헷갈려하지 않게 하라(Don't bore and don't confuse)."
헷갈리지 않는다는 게 이야기가 단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야기는 얼마든지 다층적이고 복잡한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수많은 복선과 반전이 난무할 수 있다. 각 씬이, 그리고 각 쇼트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명확하게 만들어진다면 관객이 경험하는 것은 헷갈림이 아니라 궁금함이다.
명확함이 모여서 궁금함을 낳는다. 모호함은 아무리 모여봐야 짜증만 남긴다. 이것은 영화를 만든 당사자와 지적 허영심을 가진 평론가만을 만족시킬 뿐이다. 정작 중요한 관객은 제외된다.
위에 나온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쓰기 쉬운 게 아니라 읽기에 쉬워야 한다.' 읽기 쉽게, 보기 쉽게 쓰고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모호하게 만드는 일은 명확하게 만드는 일보다 쉽다. 카메라를 켜라. 빈 하늘을 찍어라. 그렇게 열 시간 동안 두어라. 자. 이제 관객에게 보여주라. 관객은 헷갈린다.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관객이 겪는 이때의 감정을 지적 호기심이라 할 수 있을까? 창작자의 게으름을 관객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글은 필자가 아니라 독자가 주인이다. 글은 생산자인 필자가 아니라 소비자인 독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자기 글을 두고두고 읽으면서 왜 이렇게 나는 글을 잘 쓸까 하고 나르시시즘에 빠져봐야 소용없다. 문제는 소비자다. 독자가 읽고 만족하지 않으면 그 글은 잘못된 글이다. '만족'은 읽고 기분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반응'이 있다는 말이다. 좋은 글을 읽으면 독자는 분노하기도 하고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했다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