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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08. 2021

그 방에서 작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미드 집필 과정,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할리우드 TV 작가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떤 이야기가 내 귀에 들릴까? <오리지널스>라는 작품에서 일을 할 때, 편집팀과 작가팀은 한 공간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내 방 바로 맞은편, 두어 발자국만 가면 닿는 거리에 작가 회의실이 자리했다. 하루 종일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그 방의 풍경은 하나였다. 여러 작가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뭔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어시스턴트 한 명이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의문은 늘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Q: 한 회를 쓰는데 보통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나?


조슈아(이하 J): 먼저 실제 집필에 앞서 해당 에피소드의 플롯, 캐릭터, 신 순서 등 모든 걸 결정하는데 일주일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후 1고를 쓰는데 두 주 정도가 걸리고, 이것을 촬영 전까지 계속해서 퇴고한다. 이 퇴고 과정은 에피소드의 규모에 따라 일주일이 될 수도 한 달이 될 수도 있다.


Q. TV 드라마 한 회를 집필하는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서 간단히 짚어주면 좋겠다.


J: TV 드라마 에피소드를 쓸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드라마의 포맷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다음 작가는 해당 에피소드가 전체 시즌을 놓고 봤을 때 어디에서 시작하고, 이 에피소드 내에서 무엇을 이뤄내야 하는지 확인하고 결정해야 한다. 


CSI 같은 형식의 경찰 드라마를 예로 들어보자. 이런 드라마는 경찰이 매 회 새로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런 류의 드라마는 각 회의 이야기가 그 회 안에서 끝나는 독립적인 구성이다. 이야기가 한 회 안에서 모두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이뤄지고,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비교했을 때 주요 캐릭터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크리미널 마인드>와 같은 드라마는 물론, <프렌즈> 등과 같은 코미디 시트콤도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 속하는 드라마는 에피소드를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큰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스토리라인이 한 시즌 전체에 걸쳐 연결되는 형식이 있다. <왕좌의 게임>이라던지 <기묘한 이야기>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각 에피소드는 시즌이라는 더 큰 전체를 이루는 퍼즐 조각과 같다. 3회를 보기 위해선 2회를 봐야 하고, 4회를 보기 위해선 3회를 봐야 한다. 다음 회의 이야기는 그 전 회로부터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류의 드라마에선 각 에피소드 끝에 대체로 클리프행어를 배치하여, 시청자들이 다음 에피소드를 보지 않고선 못 견디게 만든다. 또한, 앞에서 말한 류의 드라마와는 달리 주요 캐릭터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대부분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이 두 가지 형식이 조금씩 섞인다. <아이 좀비>의 예를 들어보자. <아이 좀비>에서는 매 회 메인 캐릭터들이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함은 물론, 시즌 전체에 걸쳐서 시청자가 따라가야 할 더 큰 플롯 역시 존재한다. 


자, 이제 네가 작가라고 가정하고, 4화 집필을 배정받았다고 해보자. 그런데, 3화에서 주요 캐릭터 한 명이 죽었다. 이때 4화에서 무엇을 쓸지 결정할 때 이 죽음에 메인 캐릭터들이 어떻게 반응하냐를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한다.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시즌의 나머지 부분이 말이 되질 않는다. 이렇게 반드시 해결되고 넘어가야 하는 플롯 포인트는 이외에도 로맨틱한 관계에 대한 부분, 누군가의 부상 등 드라마에 따라 다양하고 그 수도 많다.


에피소드 내에서 어떤 일이 다뤄져야 하는지 결정했다면, 이제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에피소드의 플롯, 서브플롯이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결정된 모든 씬들을 작은 카드에 적는다. 카드는 여러 색깔인데, 이는 각각의 색이 다른 플롯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TV 드라마는 플롯과 서브플롯에 기반하여 쓰인다. 가장 중요한 메인 플롯인 A 플롯, 그다음 중요한 B 플롯, 그다음 중요한 C 플롯… 각 플롯은 그에 맞는 다른 색깔의 카드에 쓰여서 작가들이 전체의 줄기를 이야기하고, 신을 구성할 때 도움을 준다.


Q: 여러 시즌을 동시에 오더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음 시즌이 존재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써야 한다. 이런 점이 혹시 집필에 영향을 미치나?


에리카&캐틀린(이하 E&C): 우리가 다음 시즌을 하게 될지도 모르면서 시즌 마지막에 클리프행어를 넣고 싶지 않다. 하지만, 스튜디오는 다음 시즌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비해서 어떻게 이번 시즌에서 다음 시즌으로 이야기가 넘어가게 되는지 집어넣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와는 별도로, 우리에게 기회는 단 한 번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것을 다음 시즌에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한 번의 기회에 다한다는 생각으로 쓴다.


Q: 에피소드 방영 후 시청자들의 반응이 다음 에피소드 집필에 영향을 미치나?


E&C: 설사 우리가 스케줄에 뒤쳐져 있다 하더라도 시청자 반응에 따라 다음 화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을 시작할 때, 지난 시즌을 돌아보며 어떤 부분을 시청자들이 잘 받아들였고, 어떤 부분을 그렇지 못했는지 따져서 수정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때에도 시청자의 반응 때문에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크게 바꾸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J: 시나리오는 방영 전 훨씬 전에 이미 쓰인다. 게다가, 넷플릭스나 아마존 등 최근의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시즌 전체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풀기도 한다. 즉, 이번 회의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다음 회를 쓴다거나 하는 일은 사실상 힘들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일반적으로 다음 시즌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다.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나 싫어하는 것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청자의 반응에 너무 휘둘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Q. 작가실에서 작가들은 끊임없이 토론한다. 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나? 


J: 일단 말해 둘 것은 모든 작가실은 운영되는 방식이 다 각자 다르다. 그런 전제하에, 내 관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플롯, 이 플롯을 누구의 시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캐릭터. 이렇게 두 가지가 작가실에서 우리가 가장 집중해서 토론하는 부분이다.


플롯 중심의 드라마의 경우, 캐릭터가 시즌의 끝에 어떤 결론에 다다를지에 대해선 쇼러너들이 일반적으로 이미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작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인물들을 어떻게 그 지점에 도달시킬지 함께 고민한다. 즉, 큰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디테일들을 생각하는 거다. 각자의 역사가 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이 지점에 도달하는지 개연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시청자는 이야기를 납득하지 못하고 뜬금없다고 느끼게 된다.


코미디 시트콤 같은 장르에서는 “그 주의 에피소드”가 가장 핵심이다. 에피소드는 주로 그중에 우리가 등장인물들로부터 보고 싶은 가장 재미있는 순간들이 무엇인가에서 출발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벌어질지를 결정하고 나면 에피소드에 ‘한 방'이 있는지 확실히 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작품의 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별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는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 어떤 식으로든 이미 작품의 톤과 전체적인 느낌을 인지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E&C:  결국 스토리텔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로 귀결되는 질문인데, 어떤 게 가장 중요하다고 딱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둘은 ‘명료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종류의 이야기에서도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명료함을 가져야 한다.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작품의 작가나 크리에이터가 의사결정에 있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은근히 많다. 자신의 비전과 관점을 먼저 이해하고, 이야기의 매 순간마다 그 비전과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들 역시 그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시청자가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명확하게 이해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시청자가 계속 궁금해하고, 또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 역시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이때에도 이야기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작가의 의도가 여전히 명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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