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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14. 2022

조 워커(Joe Walker); 듄(Dune)

<듄> 에디터 조 워커 인터뷰를 읽고

“This is film number four with Denis, so I didn’t get fired.”


<블레이드 러너 2049>, <컨택트>, <시카리오>, 그리고 최근의 <듄>의 공통점은? 모두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헝거>, <셰임>, <노예 12년>, 그리고 <위도우즈>의 공통점은? 모두 스티브 맥퀸 감독의 작품이다. 자, 그럼 위에 말한 여덟 작품의 공통점은 뭘까? 답은 조 워커(Joe Walker)라는 이름이다. 그는 스티브 맥퀸 감독과의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서 중간에 스티브 맥퀸 감독과 다시 뭉쳤던 <위도우즈>를 제외하고는 2015년 개봉한 <시카리오>를 시작으로 드니 빌뇌브 감독과의 작업을 현재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I think a very typical cinematic thing is simplicity and economy."


문자로 이뤄진 책을 이미지와 소리로 이뤄진 영화로 만들었을 때 둘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개 이 비교는 책이 영화보다 낫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결론에 다다르는 이유는 주로 책이 묘사하는 디테일을 영화에서 모두 다루지 못한다는, 책으로 이미 해당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불만이다. 책은 작가가 원하는 대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다. 할 이야기가 많으면 페이지 수가 늘어난다. 냄새 하나를 묘사하기 위해서 책 한 권을 다 쏟아부을 수도 있다. 출판사와 판매라는 문제에서 충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길이'에 있어서 자유로운 편이다. 반면, 영화는 길이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앤디 워홀은 8시간짜리 무성영화를 만들었지만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극장에 가서 보는 영화는 대체로 두 시간이다. 영화는 이 시간 속에서 책이 캐릭터의 구축을 위해 수십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과거사를 단 몇 분 혹은 몇 초 안에 해내야 한다. 책은 등장인물이 느끼는 어느 한순간의 감정을 서너 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묘사하여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작가가 인물의 감정을 몇 줄, 혹은 몇 페이지 걸쳐 묘사하는 동안 인물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영화는? 서너 페이지의 묘사를 단 몇 초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흔하게 부딪힌다. 이럴 땐 선택을 하고 집중해야 한다. 즉,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책 보다 간결하고 경제적으로, 그러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풀어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I am trying to get out of the way a little bit when I edit."


어떤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편집상을 받을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해상화>는 총 38개의 샷으로 이뤄졌다. 영화의 러닝 타임이 130분이니 대충 한 샷의 길이가 3분인 셈이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은 115분 러닝 타임에 117개의 샷이다. 한 샷의 길이가 평균 1분 정도다. 이런 영화는 언뜻 '편집'을 안 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면, <트랜스포머 2>는 2500여 개의 샷으로 이뤄져서, 한 샷 당 평균 길이가 3.4초다. 이때 우리는 <해상화>나 <생활의 발견>보다 <트랜스포머 2>가 편집적으로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샷의 수가 편집의 판단이 될 수는 없다.


현재 영화의 한 샷 당 길이는 장르에 따라,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7-8초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는 이보다 더 짧을 게 분명하다. 작업하다 보면 5초 정도만 지나도 다른 샷으로 바꿔주길 원하는 감독의 요구에 왕왕 부딪힌다. 10초 정도의 대사를 하는데 한 앵글에 머무르지 못하고 두세 개의 앵글로 쪼개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서 마시는 하나의 동작을 큰 의미 없이 두세 개의 샷으로 나눠서 보여주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게 언제나 나쁜 건 아니다. 이야기가 이런 방식을 요구할 때도 있다.


에디터로서 이렇게 샷을 바꾸지 않을 때 왠지 내 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은 불안을 느낄 때가 있다. 이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종종 엄습하는 이 불안 탓에 컷을 나누고 다른 앵글을 찾을 때가 왕왕 있는 게 부끄러운 고백이다. 샷이 많으면 리듬이 빠른 듯 느껴진다. 현대인은 갈수록 참을성이 작아지고 있다. 샷이 빨리 바뀌지 않으면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컷이 많으면 좀 더 풍성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똑같은 시간 내에 더 많은 수를 보게 되니 자연스레 그렇게 느낀다. 다만, 이런 느낌은 모두 허상이다. 때론 10초의 한 샷이 2초의 다섯 샷보다 풍성하고 박진감 넘친다.


"If you don’t care for the central characters, then we might as well go home."


아, 물론 이때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편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건 결국 배우의 연기다. 가상선, 콘티뉴이티 등은 모두 부수적인 문제다. 연기가 좋을 때 관객은 캐릭터가 진짜라고 믿는다. 캐릭터가 진짜라고 믿을 때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야기에 빠져들면 방금 왼손에 들고 있던 컵이 다음 컷에 오른손으로 순간 이동을 해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니,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할 수 있다. 결국, 편집은 관객이 캐릭터가 진짜라고 믿고, 캐릭터의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힘을 다해야 한다. 그게 안되면 조 워커의 말처럼 관객은 영화가 끝나기 전에 극장 문을 나설 것이다. 아니, 순식간에 클릭 하나로 영화를 멈추고,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 다른 영화를 들춰볼 것이다.



조 워커 인터뷰 전문 https://blog.frame.io/2021/10/27/art-of-the-cut-dune-joe-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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