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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Feb 06. 2024

세상도 나이를 먹는다

한국어로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한다. 영어로도 통할 수 있는 표현이다. 물론, 영어로 eat age라고 표현한다는 말은 아니다. 영어에서 세월의 흐름, 특히 나이와 관련해서 사용되는 형용사는 old가 있다. 나이뿐만 아니라, 오래되고, 시간이 많이 흐른 고대의 것과 관련해서도 old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 


영어에서 나이가 얼마라고 표현할 때, old라고 쓰는데, 공교롭게도 그 old에는 먹이다, 양육한다는 의미가 있다. 최소한 영어로 봐서 나이는 정말 먹는 것이다. 


old는 ald, oud, alt 등으로 네덜란드어나 독일어에 나타난다. al-이라는 요소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자라다, 양육하다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al-이 사용된 단어는 대부분 자라거나, 번성하거나, 양육한다는 의미를 일반적으로 갖는다. 


자라고 양육한다는 뜻의 al-은 ol-로 나타나기도 한다. 양육은 곧 풍요로운 생산과 연결된다. prolific이 그렇다. prolific은 풍성한, 다산의, 번성한다는 뜻이다. 동사형태로 proliferate이라고 쓰기도 한다. proliferate은 증식하다, 번식하다, 급증한다는 뜻이 있다.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핵확산금지조약을 의미하는 NPT의 가운데 P가 바로 proliferation 의 약자다. NPT의 정확한 명칭은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이지만, 줄여서 Non-Proliferation Treaty, NPT로 칭한다.  


자란다는 뜻의 al-은 성인을 의미하는 adolescent에도 보인다. 잘먹고 자라야 성인이 되어서 키도 커진다. 키가 크게 자란다는 의미가 높아지는 것으로도 확장된다. 그래서 높이, 즉 고도를 의미하는 altitude에도 al-이 등장한다. 


남성의 목소리 톤을 의미하는 알토alto역시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동창생을 의미하는 alumnus에도 역시 al-이 보인다. 동창생은 나이를 함께 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나이를 매길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세상일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세상이 존재하고 난 후에 생겼다. 굳이 과학이나 지질학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이다. 세상world에는 그래서 old의 형태가 포함되어 있다. world는 영어의 근접언어권에서 조금씩 스펠링이 다르게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나이를 먹었다는 old의 표현을 갖고 있다. 


world를 살펴보면, 그래서 인간의 존재, 삶의 문제들, 혹은 아주 긴 시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단어를 분리해보면, wo-는 사람으로, old는 나이로 볼 수 있다. wo-의 형태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몇몇 영어 단어에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늑대인간 werewolf 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wer-는 고대영어에서 남자, 사람을 의미했다. 그래서 were인간wolf늑대의 의미를 갖는다. 


wer-가 남자를 의미하는 것은 virile에도 볼 수 있다. w와 v는 스펠링이 다르지만, 소리로 실현될때에는 종종 치환되기도 한다. W가 V처럼 소리나기도 한다. virile은 남자다운, 성인스러운 이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로 미덕이라는 단어 Virtue도 역시 여기서 기원한다. 의미상 미덕의 기원에는 남성이 들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과거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남성들의 특성으로 생각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세계를 한자로 적으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세世, 지경계界. 세라는 글자는 공간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할 때 사용되지만, 세대世代를 의미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세라는 글자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world라는 단어에 시간과 세월을 의미하는 old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세世라는 한자가 선택된 것은 매우 정확한 번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올드〉라는 영화가 있었다. 휴양지에 놀러간 가족이 겪는 기이한 시간의 흐름을 스릴러로 엮어낸 영화다. 외진 해변을 찾아간 사람들에게 갑자기 시간이 급속도로 빨리 흐르기 시작한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들이 금방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된다. 젊은 부모는 금방 늙어 버렸고, 노쇠해졌다. 죽음은 타임랩스된 화면처럼 실시간으로 번져간다. 


영화속의 설정은 공상과학스릴러니까 가능하다. 현실에서 시간은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영화속에서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처럼, 사실 우리들의 현실에서 흐르는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은 누구나 알고 경험하고 이해하지만, 그것의 본질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겐 영원한 미스테리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렇게 말한적 있다. 


추억에는 날짜가 없다. 계절만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숫자로 기억해야 하는 달력의 날짜는 불분명 하지만, 계절은 대체로 명확하다. 기억의 핵심은 숫자에 있는게 아니라 온도에 있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지속적으로 인간의 직관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논리와 이성이 가장 합리적인 지성인것처럼 여겨지면서 인간의 직관과 상상력은 점점 더 희미해져간다. 철새들이 남쪽을 찾을 때, 생각해서 찾지는 않을 것이다. 새들이 가슴에 품고있는 나침판에는 눈금이 없다. 오직 한 방향을 가리키는 믿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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