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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Park Apr 26. 2018

유후인에 대한 소고

가벼운 여행에 대하여

유후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온천 마을입니다. 여행에 대한 허세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사람보다는 자연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번잡한 곳은 꺼리는 편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유후인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찾는 곳엔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병도 악화된 상태라 뭔가 거창한 여행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친구와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온천에서 목욕만 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여행을 위해서요.

'쉬었다 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무것도 안 했던 탓인지 후쿠오카 공항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는 예약도 못 했습니다. 기차는 너무 오래 걸려서 비행기 시간에 맞출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렌터카를 예약했는데, 비싸기도 비쌌지만 항공기 연착과 렌터카 회사 직원의 쓸데없는 친절 덕분에 예상보다 많이 늦게 출발하게 되어 야밤의 일본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간 보람은 확실히 있었습니다. 숙소도 마음에 쏙 들었고, 무엇보다 온천의 물과 욕탕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숙소는 1박에 $160 정도의 저렴한 료칸을 예약했었는데, 공용 화장실뿐이긴 했지만 투숙객 자체가 적어서 불편함은 전혀 없었습니다. 방도 넓었는데, 원래 3인이 묵을 수 있는 방을 2인에게 내준 거라 굉장히 쾌적했습니다. 욕탕도 적당히 작아서 실내 욕탕은 3명이 들어가면 딱 맞았습니다. 노천탕은 실내탕보다는 넓었는데, 서늘하고 맑은 공기와 뜨뜻한 물이 동시에 선사하는 그 덥추한 느낌은 노천탕만의 느낌을 줍니다.

생각 외로 아담한 료칸입니다.


수질은 단순천이라고 하지만, 물에서 유황 냄새가 살짝 납니다. 실제 성분에도 유황 성분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물은 약알칼리성이라 미끈한 느낌이 납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목욕하기에는 더 좋았습니다. 원래 저는 유황 온천을 되게 좋아합니다. 유황 온천이 피부에 좋기 때문만은 아니고, 유황 냄새를 맡아야 제가 온천에 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땅 파서 나오는 뜨뜻한 물이면 온천이긴 하지만, 배운 게 지리학이라 그런지 온천은 화산이 인류에게 선사한 선물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화산에서 나는 냄새가 유황 냄새이다 보니, 온천에서도 같은 느낌을 원하네요.


이렇게 온천수 자체가 별로 부담이 없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여행의 목적에도 딱 부합했습니다. 노보리베츠 온천이나 오이라세 계류 온천 같은 경우는 제가 좋아하는 유황 냄새가 뿜뿜합니다만, 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비싼 곳들입니다. 게다가 유황 온천이 좋다고 해도, 그 냄새를 계속 맡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에 유후인은 우리나라에서 별로 멀지 않고, 값도 저렴하다 보니 부담 없이 목욕하러 오기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도 좀 '온천 티 나는' 정도이다 보니 뜨뜻하게 몸 담그기에도 좋고요.

유후 산의 산머리만 봐도 온천물 좀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여행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료칸이 저를 밖으로 내쫓더군요.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청소 시간이라 온천탕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후인 마을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생각 외로 다니기 좋았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어 파는 공방, 달콤한 디저트, 입맛 당기는 고로케와 같은 길거리 음식 등의 유혹을 모두 이겨내고 거리 끝까지 걸어가면 긴린 호수가 나옵니다. 호수라고 해봤자 엄청 크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주변의 조경을 잘 해두어서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더군요. 호수 옆의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잔 하며 걷느라 고생한 발에게 휴식을 준 후에 다시 숙소까지 살살 걸어가면 딱 욕탕이 개장하는 시간이 되더군요. 어차피 오후 4시에서 5시 정도가 되면 거의 모든 가게의 영업이 종료되어서 할 것도 없습니다.

긴린 호에 있는 카페에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 본 여행 중에선 가장 가벼운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행이란 언제나 뭔가 거창한 목적이나 성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항상 어떤 지역의 의미 있는 무언가를 보아야 하고, 그 동네를 죄다 돌아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 마음을 조금 억누르고 가볍게 돌아다녀 보니 이런 여행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마음에 드는 경관을 사진에 담고, 좀 피곤하면 온천탕에 몸을 지지는 여행도 충분히 좋았습니다. 유후인 덕분에 가벼운 여행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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