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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Park Jul 13. 2019

야마나시 여행2 - 모모노키 온천

비탕을 찾아서

비탕

비탕(秘湯, Hitou)이란 일본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숨겨져 있는 온천을 의미합니다. 온천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특별한 온천에 대한 갈망도 크고, 그 갈망을 충족시켜줄 좋은 온천도 많은 나라입니다. 

정해진 기준은 없는 것 같지만, 보통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비탕이라 칭하는 듯합니다.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을 것. 교통이 불편하거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기 힘든 곳에 위치한 온천이어야 하는 듯합니다. 교통이 편하다면 남들도 가기 쉽고, 따라서 '비'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경관이 수려할 것. 이는 노천탕에 대한 수요로도 나타납니다. 온천을 하면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좋은 온천수일 것.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 갈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온천수 자체는 평범하지만 관리가 잘 되는 것인지, 온천수의 성분이 독특해야 한다는 것인지, 둘 다여야 하는지 말입니다.


온천의 코다와리

사실 친구는 후지산이 목표였지만, 저는 온천이 목표였습니다. 공평하게 하루씩 자기 욕구를 충족하면 서로 이득인 여행이라 생각하며, 두 번째 날은 온천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후지산을 보고만 가기는 아쉬우니 후지산이 보이는 온천에서 씻고 가자고 했습니다. 마침 그런 곳이 있어서 계획은 술술 풀렸죠.

베니후지의 탕(紅富士の湯, Benifuji-no-yu)은 후지산을 바라보며 목욕할 수 있다는 점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 대중목욕탕(銭湯, Sento)입니다. 물 자체는 온천수입니다. 노천탕에 나간다면 대빵만한 후지산을 바라보며 목욕할 수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경험이죠!

안타깝게도 수질이 아쉬웠습니다. 물에서 락스 냄새가 좀 났거든요. 물을 순환하여 사용하는 경우라면 피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합니다. 온천보다는 경치에 방점을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산골에 숨어있습니다. 모모노키 온천 산와소 정문(참고로 별관뿐입니다).

제 마음에 들었던 온천은 나름 비탕이라고 찾은 작은 온천 료칸이었습니다. 미나미알프스 시(南アルプス市, Minami-arupusu-shi)에서 서쪽의 아시야스아시쿠라(芦安芦倉, Ashiyasu-ashikura)에 있는 모모노키 온천 산와소(桃の木温泉さんわそう, Momonoki-onsen-sanwasou)였습니다. 미나미알프스 시 서쪽은 미나미알프스 국립공원(南アルプス国立公園, Minami-arupusu-kokuritsu-kouen)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국립공원 쪽으로 여행하신 분들은 지나쳐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이킹 코스로 찾아가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야샤진 고개(夜叉神峠, Yashajin-touge)의 아래쪽에 있습니다.

가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길이 좁아지고, 가팔라집니다. 헤어핀 구간도 몇 개 있습니다. 내륙이라 춥기도 해서 얼었다면 더더욱 답이 없을 뻔했죠. 그래서 눈이 왔었다면 운전하는 게 상당히 힘들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길을 간 보람은 충분했습니다. 후지산은 보이지 않지만요.


(좌) 예약하면 빌릴 수 있는 개인탕 (우) 일본식 객실 내부. 방 밖의 복도는 겨울이라 그런지 정말 추웠습니다.

온천에서는 유황 냄새가 살짝 풍겨왔지만, 분류상으로는 알칼리성 단순온천이었습니다. 즉, 성분은 별 거 없고 단지 물 온도가 25도 이상일 뿐이라는 뜻이죠(그래도 알칼리성 온천이라 피부가 매끄러워집니다. 미인탕이라고 하죠). 하지만 이 온천의 진짜 자부심은 온천수의 성분이 아니라 온천수의 공급 방식에 있습니다. 원천 재활용이 없는 100% 카케나가시(100%掛け流し, hyaku-pa-sento-kakenagashi)에 가온(加温, 원천수 온도가 낮아서 물을 끓여 공급하는 방식), 가수(加水, 원천수가 부족하거나, 온도가 너무 높거나, 지나치게 산성이거나 알칼리성일 때 이를 중화하기 위해 쓰는 방식), 입욕제 추가(원천수 고갈로 인해 온천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쓰는 방식)가 없다는 것이죠. 100% 카케나가시가 가능한 것은 투숙객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고, 가온이나 가수가 필요 없는 것은 원천수의 온도가 딱 40도 정도라 목욕하기에 최적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입욕제 추가야 욕만 먹을 뿐입니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온천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부의 욕탕은 2~3명 들어가면 풀방인 사이즈이긴 하지만, 애초에 투숙객이라고는 저와 제 친구, 6인 가족 1팀과 노부부 1팀이 전부였기 때문에 내부는 붐빌 일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개인탕도 비어만 있다면 원하는 시간에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여유로웠죠.


노천탕이 좋았었는데, 눈이 내리지 않아 설경 속의 목욕은 즐기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으니 불만은 없었습니다. 수려한 주변 경치와 불빛이라고는 료칸에서 나오는 것뿐이었기에 별을 바라보며 목욕한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12월 말이라 매우 추워서 노천탕과 실내를 오가는 건 많이 두렵긴 했었죠.


지역음식, 지역재료

(좌상) 전복의 간장절임 (우상) 산천어 소금구이 (우하) 야마나시현 향토음식인 호토 (좌하) 오늘의 메뉴. 잘 보면 '甲州' '甲斐' 등의 표현이 보이는데, 야마나시현의 옛 이름

료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카이세키 요리(会席料理, Kaiseki-ryori)입니다. 그 료칸의 숙박비와 숙박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약간 투박하긴 하지만 이런 작은 료칸에서 어떻게 이런 음식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야마나시 현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용하여 요리를 냈음을 강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만큼 야마나시에서 나오는 농축수산품이 다양하다는 뜻도 되겠지만, 자부심이 없다면 음식 하나 소개될 때마다 야마나시 소리가 나올 리는 없겠죠. 하다못해 전복요리에도 지역색이 묻어나 있었는데, 바다에서 나는 전복이 썩을까봐 간장에 절여먹었던 게 현재는 야마나시의 풍습이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네, 야마나시 현은 완전 내륙입니다). 우리나라의 안동 간고등어가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힘든 길

산중 온천을 지키며

제 생각에 이 료칸은 인근에서 제일 좋은 료칸이자 온천이고, 또 유일한 곳입니다. 온천마을이라고 소개되는 곳들 대부분은 비슷한 급의 료칸이나 목욕탕이 최소 2~3개 정도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아시야스 온천은 전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본 아시야스 온천은, 쇠락해가는 온천마을이었습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오가는 차량은커녕 사람조차 거의 없는 스산한 동네였습니다. 온천장이라고 하는 숙박시설들도 밖에서 보면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게 생겼을 정도로 낡고 허름했습니다. 온천마을로서는 전혀 매력이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꿋꿋하게 영업을 이어나가는 료칸 주인장의 끈기와 의지가 그래서 엄청나 보였습니다.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웹 사이트나 료칸 내에 걸어놓은 감사 인사 등에서 미루어볼 때 이 료칸의 운영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대형 관광 온천료칸보다는 비탕으로서의 료칸을 지켜나가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지 돈의 문제는 아니고, 온천장의 주인이라면 응당 가져야 한다고 배운 자세나 좋은 온천수에 대한 고집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870년쯤부터 영업을 이어왔다 하니, 역사와 전통을 버리고 관광온천으로 변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힙한 척한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마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그 길은 절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온천이나 료칸에 관련된 여러 군소 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건 동지를 찾아 힘든 여정을 함께 극복해나가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료칸에 가는 길만큼이나 힘든 길을 걷는 료칸 주인장 덕분에 좋은 온천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참고

모모노키 온천 산와소 http://www.momonoki.net/

베니후지의 탕 http://www.benifuji.co.jp/

일본 비탕을 지키는 모임(日本秘湯を守る会, Nihon Hitou-wo Mamoru Kai) https://www.hitou.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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