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ghyun Park Jul 13. 2019

쿠마모토 여행 - 쿠로카와 온천

영화 속에 있는 듯한 그 온천마을의 후기

온천 돌아보기

처음 쿠로카와 온천(黒川温泉, Kurokawa onsen)에 간 것은 2018년 7월,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제 목표는 오직 그 온천이었고 나머지는 친구들의 맛집 투어를 위한 보조적인 동선일 뿐이었습니다. 같이 간 친구들에게 일정을 '통보'하다시피 했으니 얼마나 싸가지없는 여행 주최자이자 운전자였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때는 한창 서일본 대폭우로 인해 일본이 정신없을 때였습니다. 비 때문에 목적지 공항 사정으로 출발이 지연되었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쿠마모토(熊本, Kumamoto) 시내로 들어가 맛있는 새우튀김과 돈카츠 한 접시 꺼어억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거기까지는. 그 뒤에 숙소로 들어가던 그 길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제 입에서 최악의 운전이었다고 두고두고 씹힐 것 같습니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제가 뚫은 안개는 비를 퍼붓는 구름이요, 그 구름이 걸린 산은 아소산(阿蘇山, Aso san) 칼데라였더군요. 오죽하면 숙소 주인아저씨가 우천 취소를 하려고 하셨을까요.


뉴토테가타. 이렇게 온천 한 군데를 가면 스티커 한 장을 떼고 도장 하나를 받는 방식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다음 날은 그냥 비가 좀 오는 수준이었습니다. 아소산 정상 가서 비 오는 날 화산이 뭉게구름 내뿜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것만 깨닫고 쿠로카와 온천으로 향했을 뿐이었죠. 쿠로카와 온천에 대해 사전 조사하고 간 것은, 그 온천의 관광안내소에 가면 온천 3군데에서 당일치기 목욕을 할 수 있는 1300엔짜리 쿠폰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여기서는 뉴토테가타(入湯手形, Nyuu tou tegata)라고 부르고, 그렇게 온천을 돌아보는 것을 온센메구리(温泉巡り, Onsen meguri)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온천 마패 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온천 3군데를 다 돌지는 못하고, 두 군데만 돌아봤습니다.

쿠로카와소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절벽

먼저 간 곳은 쿠로카와소(黒川荘, Kurokawasou)였습니다. 뭔가 이름이 네임드 같아 보여서 그냥 골랐습니다. 대신 네임드답게 마을 중심가에서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쿠로카와 온천마을의 온천장들은 당일치기 목욕 손님을 위한 탕과 숙박객을 위한 탕을 따로 운용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쿠로카와소도 마찬가지였는데, 온천수 자체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온천수는 나트륨-탄산수소염-황산염천이라 합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 살짝 하얗게 탁한 색이었습니다. 목욕탕까지 내려가는 계단에서 보이던 절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캬쿠야, 후지야, 야마의탕, 료센소, 아지도코로 나카, 카지카, 키후진, 시로타맛코 이용 고객만 주차 가능

그다음은 오캬쿠야(御客屋, Okyakuya)에 갔습니다. 오캬쿠야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댄 후에 살살 걸어가면 됩니다. 오캬쿠야에서 온센메구리 손님을 위해 공개하는 탕은 대관의 탕(代官の湯, Daikan no yu)이라는 곳인데, 에도 막부 시절에 이 지역의 영주들이 에도(江戸, Edo, 지금의 도쿄)에 출장 갔다 오면서 이 온천에 들러 피로를 풀었다고 합니다. 온천수는 철분이 함유된 단순온천이었는데, 쇠 녹슨 냄새가 살짝 납니다.


다시 그 마을로

마을 분위기가 너무 예뻐 한 번 더 오리라 다짐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2018년 12월에 가족여행으로 그 기회를 잡게 되어 쿠로카와 온천마을의 료칸 중 하나인 이야시노 사토 키야시키(いやしの里樹やしき, Iyashi no sato kiyashiki)를 예약했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렌터카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리는 길을 달렸는데, 7월에 폭우가 퍼붓는 국도를 달리던 것에 비하면 부슬비만 내리는 고속도로는 정말 편했습니다. 산간마을이라 일반도로로 빠진 후에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다 보니 익숙한 그 길이 나타났고, 전에 갔던 안내소와는 다른 길로 빠졌습니다. 이야시노 사토 키야시키 역시 쿠로카와 온천마을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편이라 그렇습니다.

미리 늦겠다고 연락을 주긴 했지만, 료칸 내에 진입하니 직원이 미리 나와서 주차 안내를 했습니다. 상당히 감동적인 부분이었는데, 역시 디테일이 퀄리티를 결정합니다.


료칸 이야시노 사토 키야시키 정문. 이런 집이 몇 채 더 이어져 있고, 그 안과 밖에 별채가 있습니다.

료칸은 일본식 집이 몇 채 연결된 구조였습니다. 구조가 상당히 복잡한 것으로 보아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한 것 같습니다. 본관이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정말 고즈넉하니 좋았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만 상쾌하게 들리고, 기분 좋은 유황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료칸에서 비추는 조명만이 있어서 유달리 더 예뻐 보였습니다.

본관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 벽에 걸린 말린 옥수수가 정겨워보입니다.

방은 본관에 있는 객실로 예약했습니다. 노천탕이 딸린 별채를 예약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말자고 해서 본관에 묵었는데, 노천탕이 딸린 객실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국자가 있어서 떠마실 수 있습니다. 매우 뜨겁고, 쓴 맛이 나며, 유황 특유의 계란 썩은 냄새가 납니다.

온천수는 단순 유황온천입니다. 물에 녹지 않은 황화수소가 유노하나(湯の花, Yuno hana, 목욕탕의 꽃)가 되어 떠다닙니다. 물의 공급 방식은 원천 재활용 없는 카케나가시(掛け流し, Kakenagashi)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가수(加水, Kasui)는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천수의 온도가 80도가 넘기 때문에 이걸 목욕탕에 그대로 들이부었다간 목욕하는 사람들 전부 다 화상 입을 테니까요. 이 부분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욕탕은 몇 개가 있는데, 남탕과 여탕의 구조가 다릅니다. 이를 감안해서인지 료칸에서는 매일 남탕과 여탕을 바꿉니다. 남탕과 여탕 각각 노천탕이 있는데, 노천탕에서 노천 혼욕탕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네, 그 유명한 혼욕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천 투숙객 자체가 적고, 사람들도 가족단위가 아닌 다음에야 혼욕을 꺼려하기 때문에 민망한 상황은 겪지 않았습니다.

미하라시노 유. 밤중에 숲속에서 온천을 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

경치가 좋은 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개인탕이었습니다. 실내에 있지만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여서 노천탕이나 다름없습니다. 미하라시노유(見晴らしの湯, Miharashi no yu)를 이용했는데, 충분히 닉값하는 탕이었습니다.


히고규 구이와 산천어 소금구이, 3종 사시미와 오늘의 메뉴

식사로 나온 카이세키 요리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쿠마모토의 특산품인 히고규(肥後牛, Higo gyu, 여기서 '히고'는 쿠마모토 지방의 옛 지명) 구이를 메인으로 한 요리가 나왔습니다. 그 외에 산천어 소금구이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료칸의 꽃은 다름 아닌 라운지 바입니다. 투숙객 전용으로 운영되는 이 곳은 료칸 주인장이 직접 수집한 술의 컬렉션도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들고 구하기 어려운 고급 일본주도 여기에서 글라스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일본주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바에서 시음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찾아가는 길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 출발 하루 4번, 쿠마모토 공항 출발 하루 3번 있습니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미리 료칸에 연락하여 버스 정류장으로 데리러 오라고 얘기해야 합니다(웹사이트를 통해 직접 예약하는 경우 미리 알려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직접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쿠로카와 온천이 산골짜기에 자리한지라 경사가 많고, 일본의 택시비는 꽤 비쌉니다.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참고자료

산코 버스 https://www.kyusanko.co.jp/sankobus/korean/

하이웨이버스(다국어 지원이 부실하니 일본어로 검색하세요) https://www.highwaybus.com/gp/index

쿠로카와 온천 료칸 협회 https://www.kurokawaonsen.or.jp/eng_new/

쿠로카와소 http://www.kurokawaso.com/han/han.html

오캬쿠야 http://www.okyakuya.jp/english/

이야시노 사토 키야시키 https://www.kiyashiki.com/


작가의 이전글 야마나시 여행2 - 모모노키 온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