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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yun Park Jul 13. 2019

미야자키 여행 4 - 키리시마 신궁

천손강림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에비노 고원 에코 뮤지엄에서 안내하시는 분에게 에비노 고원 일대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마지막에 코스를 추천해주실 때였습니다.

길을 따라 쭉 내려가셔서
다카치호가와라(高千穂河原, Takachihogawara)를 둘러본 후에 
키리시마 신궁(霧島神宮, Kirishima Jinguu)을 가시면 좋아요

사실 전 신궁 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 신도 관심이 없는데 일본 신에 관심이 있을리가요. 대학 입시 전에 온 우주의 기운을 다 끌어모아야 했을 때 일본 신한테도 보험이나 들어놓자는 생각에 도쿄 아사쿠사(浅草, Asakusa)의 센소지(浅草寺, Sensouji)에 가서 대길을 뽑았었는데 재수한 후, 일본 신과는 손절했습니다.

그런데 키리시마 온천에서 기분 좋게 온천을 하고 나오니 신궁 가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온 동네에서 키리시마 신궁을 홍보한다는 건, 이 동네가 보여주고자 하는 장소가 신궁이라는 것이겠죠. 어떤 장소의 진정한 모습은 그 장소가 감추고자 하는 곳에 있기는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왔는데 복잡한 것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렌터카의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키리시마 신궁으로 찍었습니다. 도착하니 엄청나게 큰 토리이(鳥居, Torii)가 서 있습니다.

깜짝이야.

큰 토리이이길래 대체 얼마나 큰 신사일까 하고 겁이 덜컥 나서, 걸어 들어가려다가 그냥 얌전하게 차 끌고 들어갔습니다.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토리이 안쪽부터 시작이거든요.

계단을 걸어 올라갑니다. 

다행히도 차는 두고 왔고, 말은 너무 비쌉니다. 낚시 몰라요. 그리고 기름보일러 써요.

또 계단입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이런 참배 시설이 나옵니다. 제법 근사합니다. 동네에서 보던 신사와는 격이 다릅니다. 누구를 모시는 신사일까요?


나름 대단하구나

신사를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내려오니 올라갈 때는 못 봤던 안내문이 보여서 읽어보았습니다. 그제야 이 신사가 왜 그렇게 삐까뻔쩍한지 알겠더군요. 이 신사는 니니기(ニニギ, Ninigi)를 모시는 신사였습니다.

니니기는 일본 신화에서, 천상의 신인 아마테라스(アマテラス, Amaterasu)의 손자입니다. 천상에서 살던 니니기는 아마테라스의 명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이를 일본에서는 천손강림(天孫降臨, Tenson kourin)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니니기는 볍씨와 칼, 거울, 그리고 곡옥을 들고 내려옵니다. 그 후 산의 신인 오오야마츠미(オオヤマツミ)는 자신의 두 딸인 이와나가히메(イワナガヒメ)와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コノハナノサクヤヒメ)를 둘 다(!!) 니니기에게 시집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니니기는 외모가 아름다운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만 부인으로 맞이하고, 못생긴 이와나가히메는 다시 장인어른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러자 오오야마츠미는 화를 냅니다. 자기가 딸 둘을 동시에 니니기에게 보낸 것은 이와나가히메(암석)와 결혼시킴으로써 니니기의 후손(이하 천손)들이 암석과 같이 영원한 수명을 가지게 하려 함이고,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꽃)와 결혼시킴으로써는 천손들이 나무의 꽃들처럼 번성케 하려고 한 건데, 꽃만 부인으로 맞았으니 천손들은 꽃처럼 덧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천손들은 일본에서 덴노가 되긴 했지만인간으로서의 짧은 수명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덴노가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신화입니다.


이렇게 신화 속의 주인공을 모신 신사이니만큼 당대의 권력자들에게도 중요한 곳이었던 모양입니다. 참배길을 걸어가다 보면 비석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아래에 시마즈(島津, Shimadu)로 시작하는 이름들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시마즈라는 성은 옛날의 사츠마(薩摩, Satsuma), 지금의 가고시마(鹿児島, Kagoshima) 서부를 지배하던 가문의 성씨입니다.

저 멀리 사쿠라 섬(桜島, Sakurajima)이 보입니다.


참고자료

키리시마 신궁 http://www.kirishimajingu.or.jp/contents/goyuish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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