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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기 Aug 20. 2021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에세이 중 두 번째.

영어의 원제는 'Useless' Knowledge 이다. 여기에 왜 '유용한 지식'이 추가되었는지는 정확한 모르겠지만, 아무튼 원제는 이렇게 되어있다. 혹시 옮긴이는 그 무용한 지식이라는 것도 결국 유용한 지식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맞는 말일 지도 모르겠지만 작가가 말하는 '무용한 지식'의 의미를 한 단계 낮게 희석시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전개한 것은 그저 나의 생각이니 틀릴 확률이 높다.


아무튼 이 '무용한 지식'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마찬가지로, 나의 비어있는 시간을 무언가로 꽉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의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었나를 떠올려보면, 편도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출퇴근길에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투브를 보지 않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출퇴근길이 길어진건 벌써 2년이 넘었는데, 도로 위의 그 3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식과 정보를 전하는 팟캐스트나 유튜브(과학하고 앉아있네, 카오스 사이언스, 일당백...)를 보고 듣거나, 뉴스공장이나 다스뵈이다 같은 내 색깔에 맞는 뉴스, 정치, 문화 전달 채널을 보거나, 슈카월드나 조승연의 탐구생활같은 어떤 주제를 파고들어 정리해 전달해주는 채널같은 것을 보았다. 그래야 이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얕은 나의 무용한 지식들이 될테지만, 사실 그런 무용한 지식들을 떠올릴 시간이나 일들은 거의 없었다. 뭐,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 그럴 일들이 있겠지. 그리고 오늘 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 퇴근하는 길에 잡다한 생각을 하며 무용하다 할만한 지식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가 다른 주제로 휙 넘어가거나 이어지고 했다. 오늘은 출근길의 하늘도 멋졌고, 퇴근길의 하늘도 멋졌다. 퇴근길의 하늘을 보며 (어제 읽었던 이 글에서 작가도 예로 들었듯) 우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뜬금없이 수소로 시작된 우주, 그리고 그 수소들이 모였다 별이 되고 폭발하고 다시 모이고 폭발하며 만들어진 수소 외의 원자들, 그리고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그 원자들은 모두 그런 초신성의 폭발로 만들어진 원자들이라는 것.  stardust라는 것, 별먼지라는 것, 우리도 결국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거라는 것, 그러다가 갑자기 스타워즈에서 stardust를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며 '별모래'라고 바꾼게 떠올랐고 의미가 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예쁜 번역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리고서는 잡다한 오늘의 스트레스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창백한 이 푸른 점에서 뭐 그리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사실 이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 가끔 떠올리는 레파토리이긴 하다).


어쨌든 최근 몇 년간에는 과학 팟캐스트를 많이 듣고 교양 과학책을 조금씩 들춰보다보니 이런 것들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다른 분야의 얕은 지식들을 더 많이 알게 된다면 글에서 이야기하듯 삶에 도움이 되고 행복하게 지내는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대신, 오늘의 출퇴근길에서 그랬듯 이런 무용한 지식을 깔아놓고 잡다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에세이 중 첫 번째.

18세기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폭넓고 실용적인 지식 개념으로 나아가고 있던 변화가 갑작스럽게 가속화되기 시작한 것은 세기말에 일어난 프랑스혁명과 기계의 발달이 원인이었다. 프랑스혁명이 신사 문화에 일격을 가하는 한편, 기계의 발달은 비신사적인 기능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롭고도 놀라운 영역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그 후 백오십 년을 거쳐오는 동안 사람들은 '무용한' 지식의 가치에 대해 점점 더 의문을 제기하였고, 반면에 공동체의 경제적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지식이라는 믿음이 점차 확산되었다. p.40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옛 전통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러시아나 미국보다 현대적인 나라들에서는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예를 들어 미국 교육위원회에서는 업무상의 통신문에 사용하는 어휘는 1천5백 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학교 교육 과정에서 그 외의 단어들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영국에서 내놓은 기초 영어는 한술 더 떠서 필수 어휘를 8백 개로 줄여 놓았다. 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것으로서의 말의 개념은 사라져 가고 실제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말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p.41
이제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폭넓고 인간적인 인생관을 세우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전문적 기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과학 기술과 군사적 필요에 의해 야기된 사회 통합의 일부일 뿐이다. 정치와 경제 간의 상호 의존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짐에 따라 사람들로 하여금 내 이웃들이 유용하다고 여기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p.41-42
현대의 도시인들은 점점 더 수동적이고 집단적인 여흥, 즉 다른 사람들의 능란한 활동을 피동적으로 구경하는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물론 그런 여흥도 전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교육을 통해 일과 관계없는 부분에서 폭넓은 지적 관심사들을 가지게 된 사람들의 여흥에 비하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기계의 생산력으로 인류에게 혜택을 준 발전된 경제 조직이 여가를 파격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으로 이어져야 마땅하지만 여가가 많아지면 상당한 지적 활동과 관심사들을 보유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루해하기 십상이다. 여가를 가진 인구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육받은 인구이며, 또한 그 교육은 직접적 유용성을 가진 과학, 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정신적 기쁨도 목표로 했음이 틀림없다. p.45
'무용한' 지식의 가장 중요한 이점은 아마도 숙고하는 습관을 조성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세상에는 사전에 적절히 숙고해 보지도 않고 하는 행동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지 말라고 충고했음직한 류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은 성급함이 존재한다. p.47
행동보다 사고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습관은 어리석음을 막아주고 과도하게 힘을 추종하는 현상을 방지해 주는 보호막이며 불행할 때 평온을, 근심에 싸였을 때 마음의 평화를 유지시켜 주는 수단이다. p.48
숙고하는 습관의 이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가장 심오한 것에 이르기까지에 폭넓게 걸쳐 있다. 우선 벼룩 때문에 괴롭다든지, 기차를 놓쳤다든지, 함께 사업을 하는데 걸핏하면 싸움이 일어난다든지 하는 작은 번민들부터 생각해 보자. 이런 고민거리들은 영웅적 행위의 뛰어남이나 모든 인간적 불행의 덧없음에 비하면 별로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들로 보이기 쉽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일들에서 생겨나는 짜증들이 많은 사람의 좋은 성격과 즐거운 인생을 망쳐 놓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순간의 문젯거리와 약간의 연관이 있을 뿐인 동떨어진 지식(실제로 연관이 있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든 간에)에서 의외로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설사 그 문제와 아무 연관이 없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현재의 골칫거리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p.48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는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의 인생 접하기, 우주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한심할 정도로 우연적이고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 특유의 것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해하고 아는 힘, 도량 있게 느끼는 힘, 올바르게 사고하는 힘을 키워준다. 비개인적인 감정과 결합된 폭넓은 인식으로부터 비로소 지혜가 솟아나는 것이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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