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해보는 (칼질만으로 완성하는) 공예
오랜만에 키보드와 마우스가 아닌, 칼과 자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
최근에 회사 일로 짧은 출장을 자주 다녀와서, 힘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이미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사용중이었지만, 힘든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주문했다.
기존의 보조배터리는 예전에 샀던 소가죽을 덧대어 한땀한땀 바느질을 했었다. 질감이 참 좋았지만, 두께가 두꺼운 것이 흠이었다. 샤오미 배터리의 재질은 맥북과 아이폰을 닮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제품의 기능과 보관형태에는 맞지 않는다(좋은 점은 뭔가 덧대기 좋다는 것). 보조배터리는 가방에 보관하게 되고, 가방에는 스크래치가 날만한 물건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샤오미 보조배터리도 무언가 덧대기로 했다.
내 방에는 쓸데없이 모아둔 물건들이 참 많은데, 이번에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소가죽은 두꺼웠고, 여러 두께와 재질의 종이는 내구성이 부족했다. 얇은 천은 질감과 마감이 아쉬울 것 같았고, 캔버스천으로 쓸만한 것은 색이 몇 개 없었다. 한 5분 정도 방을 뒤적거린 뒤, 다 쓴 몰스킨 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하, 몰스킨 노트를 집었을 때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좋겠군.
뭐, 그렇다고 몰스킨 노트의 커버 재질이 아주 고급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느끼는 그 감촉을 계속 느끼는 것은 좋은 기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방에서 쉽게 바로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니까.
스타트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는데, 사실 그 동안 노트에 필기한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는 몰스킨 노트를 사용하여 필기하고 아이디어를 그리던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집에는 예전에 썼던 여러 몰스킨 노트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손을 많이 타서, 세월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적당한 녀석을 하나 골라서, 슥삭슥삭 자르고 붙여서 완성을 했다.
그렇게 멋들어지지 않아도 나만을 위한 감촉을 지닌 물건이니까 마음에 든다.
기능적으로는, 가방 안에서 다른 물건들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특히 양쪽 끝 부분을 한번씩 접어서 약간의 내구성을 가지게 한 뒤, 배터리보다 1mm 정도 더 길게 재단을 해서 끝부분이 스크래치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차갑지 않고 부드러운 질감.
몰스킨 노트는 빳빳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커버의 질감, 그리고 종이의 색감, 종이의 질감, 그리고 왠만한 노트보다는 나은 종이의 기능적 품질, 그리고 마지막을 완성하는 고무밴드가 마음에 드는 점인데, 보조배터리도 여러 측면에서 몰스킨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직업이 직업인지라, 언제나 13인치, 24인치 모니터를 바라보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고, 회의만 하며 만져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가끔씩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손에 잡히는 도구를 사용하고, 내 손의 정확성을 느껴보고 여러 질감의 물건을 다루게 되면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 아니, 이건 공예에 가까운 것일까. 배운 뿌리를 못잊는 것일까. 실제로는 다른 것인데 나는 '디자이너'라는 틀을 너무 광범위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뭐! 디자이너라는 틀에 끼워맞추지 않더라도, 이런 생활공예는 누구나 해볼만 하다. 우리 조상들은 다들 공예가 아니었나.
마지막으로, 양털 깎인 양처럼 되어버린 나의 몰스킨 노트. 그래도 의미있게 재활용 되어서 주인의 손을 더 오래 타게 되었으니까 좋게 생각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