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후조리원에서의 남편
이방인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말하시곤 한다.
"산후조리원이라니, 요즘은 이상한 문화가 생겼네? 애기를 왜 남의 손에 맡기니?"
언제부터인가 임신임이 확인되면 재빨리 산후조리원부터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되었다. 일찍 예약할수록 가격 할인 폭이 커지는 시스템은 망설이는 예비부모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진짜로 꼭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내 주변 모두가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우리 부부도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기로 했다.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기로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조리원마다 다양한 특징이 있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가 없었다. 결혼 준비나, 출산준비나 매한가지로 너무나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므로 고민에 고민을 더해 마음만 바쁘게 하는 것 같았다. 한번 고민을 시작하니 가성비, 가심비, 블로그 후기, 사고사례, 간호사 상주 여부, 병원 인접 여부, 집과의 거리, 관리 시스템, 마사지 회수, 지인의 추천, 할인 프로모션 등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항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디 그뿐일까? 친정집만 면회가 되는 곳, 남편만 면회가 되는 곳, 남편이 함께 잘 수 있는 곳, 혹은 아내만 입장할 수 있는 곳, 모자동실을 꼭 해야 하는 곳 등 산모의 안정과 빠른 회복을 위한 전략들 또한 제각각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인위적인 제도를 선호하지 않았기에 제한사항이 많은 곳은 피하고 싶어 했고, 이는 남편과 의견이 통하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조리원 비용을 생각하니 쉬이 선택하지 못했다. 조리원은 특히나 산모를 위한 장소이기 때문에 남편에게 의견을 묻기도 애매했고, 홀로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제 몸을 챙겨야 할 시점에 고민이 깊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웠고, 혹시나 스트레스가 될까 걱정되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비싸서 더 비쌀지, 덜 비쌀지의 차이야."
처음 아이를 맞이하는 남편은 나름대로의 큰 결단을 내렸다. 우선순위에서 가격 부분은 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에게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양가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기가 보고 싶을 부모님들을 위해 자유로운 면회가 가능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을 최우선 순위로 정하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아내의 희망사항을 듬뿍 담아 남편이 함께 잘 수 있는 곳, 마지막으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강요하지 않는 곳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가격에 대한 고민을 접으니 마음에 드는 조리원을 금방 추려낼 수 있었고, 최종 예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아내와 남편은 이미 결혼 준비를 통해 서비스가 우리 마음에 든다면 더 고민해봐야 큰 차이가 없다는 것, 모든 서비스는 제 값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가격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필요한 서비스 중 일부는 포기해야 할 것이 분명했기에 철저히 원하는 서비스 위주로 결정했다.
산부인과에서 퇴원하고 찾아간 조리원은 생명을 맞이한 기쁨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곁들여 있었고, 고개를 까딱하며 나누는 눈인사도 자연스러웠다. 신생아들의 날숨으로 향긋했고, 그로 인해 기쁨의 에너지가 충만했다. 언제든지 창을 통해 나를 닮은 아기를 확인할 수 있었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방으로 데려와 가슴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내뿜는 내 아이를 지켜볼 수도 있었다.
일주일간 병원에서 창을 통해 바라만 봐야 했던 아기를 직접 안아보고, 체온을 나누며, 분유를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매일 뽀송뽀송한 침구류로 교체되는 널찍한 침대와 특급 호텔에 버금가는 룸서비스를 경험하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기를 보고자 조리원에 방문하는 가족들이 창문 너머의 아기를 향해 오구오구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장면들도 우리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조리원에서 남편은 배정받은 침실과 아기를 볼 수 있는 신생아실 창 앞 복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산모들의 통행에 방해가 될까 싶어 복도보다는 침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조리원에 머무르는 2주간 다른 남편들의 얼굴을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다들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아내들은 수유실에서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가끔 복도에 모여 간식과 수다를 나누곤 했지만, 출근길에 어쩌다 마주하는 남편들의 얼굴에선 어색한 미소가 함께할 뿐이었다.
침실만 허락된 남편은 본인이 신생아가 된 마냥 뜨끈한 방에서 실컷 잠을 잤다. 병원에서의 불편했던 잠자리를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틈만 나면 눈을 감았고, 이내 코를 골았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꿈속에서 보냈던 남편이었다. 혹자들은 ‘조리원에서의 시간이 마지막 자유시간이다’라고 주장하곤 한다. 남편은 자유시간이라기보다는 반 강제적 휴식을 취해야 하는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침실 외의 공간은 남편이 있을 곳이 아니었고, 침실에서는 잠을 자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집안 청소 및 정리정돈을 위해 홀로 집에 머물렀던 하룻밤이 오히려 가장 개운했던 점을 돌이켜보면, 남편은 사실 침실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산후조리원, 그곳은 말 그대로 산모를 위한 공간이다. 산모를 위한 행복이 가득한 공간이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남편의 역할이 보호자에 한정되듯, 조리원에서의 남편은 산모의 남편일 뿐이었다. 산모들의 공간에서 산모의 남편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훌륭한 베딩과 친절한 미소, 매일 세탁되어 나오는 실내복이 지급되는 것으로 보아 불청객은 아니었는 모양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산후조리가 필요했고, 남편은 아내가 산후조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걱정거리를 덜어줌으로써 역할을 다했다. 또 아내가 식사를 거르지 않을까 신경 썼고, 덥지만 방 온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관리했고, 이방인으로서 보내는 시간이 불편해 보이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숙면을 취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최고의 솔루션이었다. 물론, 통장이 텅장이 되어도 개의치 않는 듯한 애티튜드의 유지는 덤이다.
아내의 출산 이후 모든 시간, 마주하는 사람, 먹는 음식, 머릿속의 사고까지 아내에게 맞춰져 버린 남편이었다. 모든 것이 변했기에 자신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은 신경 쓸 겨를 조차 없던 남편이었다. 특급호텔에 버금가는 비용지출, 또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편치 않았던 남편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회복에 보탬이 되고자 이 모든 것을 마음속 한 켠으로 묻어두고 생활했었다.
세상 모든 새내기 아빠이자 아내의 남편인 남자들은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고, 또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산부인과에서는 조연으로, 산후조리원에서는 이방인으로, 그렇게 남편은 출산의 모든 순간들을 다양한 역할로서 영광의 주인공인 아내 뒤에서 함께 했다. 100점짜리 남편은 아니더라도 최선만은 다하고 싶었던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