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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황 Aug 10. 2022

아픈 아기를 대하는 남편의 자세

아기보단 아내 먼저

대한민국 남편들 중에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는 남편이 있겠냐마는, 우리집 남편(바로 나)은 그중에서도 많이 보는 축에 속한다. 밖에서는 비교적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이웨이를 가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남편이지만,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가정의 화목을 지키기 위해 분위기부터 살피는 남편이기 때문이다.


30개월이 넘는 생전에 한번 아프지 않았던 아기가 밤새 기침을 했다. 남편은 아기가 조금 나아진다 싶을 즈음에 더워하는 아기를 위해 에어컨을 틀었고, 결국 그 에어컨이 처음 겪는 무거운 공기를 집 안에 불어넣고 말았다.


찬 바람에 몸이 시린 아기는 바로 다음날부터 열이 나고, 가래가 섞인 기침을 시작했다. 반쯤 열린 수도꼭지마냥 줄줄 흐르던, 마르지 않는 맑은 콧물은 덤이다. 그렇게 우리집 작은인간의 31개월 차 인생은 감기, 흔히 말하는 냉방병으로 가득 채워졌다. 처음 아파하는 아기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눈치만 보던 남편이었다


코시국(바야흐로 코로나시대)에 아프면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린이집에 감기가 걸려 가정보육을 하겠다 하면, 다음 등원 때 병원에서 발급하는 PCR 검사결과와 단체활동이 가능하다는 등원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3, 4일에 한 번씩 약을 타기 위해 병원을 갔던 우리집 작은인간은 병원이 체질인 마냥 모든 진료를 씩씩하게 잘 해냈다지만, 작디작은 아기의 콧구멍을 쑤시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남편은 이 모든 과정을 이모님을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말 만으로도 충분히 안쓰러움이 동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화평하던 우리집에는 투정과 짜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기는 불편한 몸 상태에 대한 표현을 투정과 떼쓰기로 일관했고, 이를 보다 지친 아내는 30개월간 잘 참아오던 짜증을 두어 번 표출했다. 고작 한두 번의 짜증이었다지만 를 처음 접한 남편은 놀란 마음을 추스리기 바빴다. 그만큼 아내는 평상시에 화도 안 내고, 짜증을 내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물론, 아기도 적잖이 놀랐을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아기에게 조금이라도 미운말을 하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던 아내였다. 눈빛만으로 핀잔을 강력하게 쏘아대던 아내였다. 우리집 작은인간의 생모로서 좋은 목소리와 좋은 단어만 들려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던 아내가 두 손, 두 발을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지칠 대로 지쳤음을 암시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남편 역할의 우선순위는 정해진 것이라고 남편은 생각했다.


알에서 갓 깨어난 거북이가 바다로 전력질주를 하는 것과 아내의 짜증 앞에서 아내의 기분 회복이 최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살기 위한 본능이라는 점에서 닮아있다고 느끼는 남편이었다.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잠이 부족해져 갔다. 기침을 하다 잠이 깬 아기는 엄마를 찾았고, 아내는 별 수 없이 아기 옆으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또다시 기침을 하고 아기가 깨면, 이번엔 남편 차례였다.


"아빠 가! 멀리 가! 밖으로 가!"


남편은 주로 방 밖으로 쫓겨났다. 남편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아기는 한동안 짜증과 울음을 지속했지만, 이미 쫓겨난 남편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시간은 오롯이 아내가 감당했고, 그래서 아내는 더욱 잠이 부족해져 갔다.


부족한 잠은 예민함을 키웠다. 아내의 예민함은 편에겐 절망과 같았다. 말 한마디를 조심할 시점이었고, 퇴근 후 앉아 티비를 보는 호사는 누리면 안 되었으며, 투정부리는 아기에게 먼저 다가가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물론 아기는 남편을 배척하고 아내를 찾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내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눈치 보는 생활은 계속되었고, 어찌 보면 그래서 남편이 아기의 회복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을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내가 남편의 부모, 시엄마와 사이가 좋다는 것이었다. 시엄마에게 아기를 맡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우리집은 아픈 아기를 부모님께 맡김으로써 각자의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에어컨 사태에 이은 남편의 두 번째 실수가 있었다.


남편은 아내와 아기만 남편의 부모님 집에 맡기는 실수를 저질렀다. 출근길이 멀어지는 것이 걱정되어 남편 혼자 결정한 사안이었고, 이는 잘못된 결정이었다.


아내는 부모님 댁에 혼자만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난 남편에게 서운했다. 남편은 뒤늦게 서운함을 표현해준 아내에게 미안해 잠이 오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상함은 눈치를 챘지만, 언어로 표현해주기 전까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던 둔한 남편이었다. 그동안 눈치를 보아가며 착실히 쌓았던 남편포인트가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남편은 이전보다 더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순간 편하자고, 생활 속 불편함을 장기간 갈아 넣게 되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아기는 회복되었고, 바닥을 친 아내와 남편의 체력도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다. 생전(그래봐야 30여 개월) 아픈 적 없던 아기가 기침으로 하루를 채우던 기간은 유래 없던 긴장감을 만들어냈고, 온 가족이 합심하여 그 짧은 기간을 견뎌냈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순간순간이 참 쉽지 않았다고 회상하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딱 두가지는 기억하고 넘어가자 생각했다. 첫째는 아무리 남편의 엄마와 아내가 사이가 좋은 고부 화합의 장이 열리더라도, 이를 남편의 자유시간으로 연결 지으면 안 된다는 . 둘째는 아기는 아내가 잘 챙길 이라 믿고, 남편 본인은 아내를 먼저 챙기자는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아빠이기 이전에 남편으로서, 아기보다는 아내를 먼저 생각하는 남편으로서, 우리집의 숨은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겠다 결심했다.



https://brunch.co.kr/magazine/babysitter

남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육아에 대해 적고 있습니다. 출산과정을 지나 육아에 돌입한 남편의 일상 속 생각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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