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리 주변의 Job Crafter들

작지만 진심 어린 실천

by 크네이트

21. 우리 주변의 Job Crafter들 ― 작지만 진심 어린 실천


단절의 징후, 그리고 회복의 실마리


우리는 이 책에서 하나의 명제를 따라왔다.


“유지적 몰입 = 심리적 사직 = 정체성 소외”


이것은 단지 개념의 나열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 수많은 직장인이 겪고 있는 내면의 침묵, 감정의 단절, 의미의 상실을 세 개의 언어로 설명한 것이다.

∙ 유지적 몰입은 감정은 떠났지만, 조건 때문에 머물러야 하는 상태다.

∙ 그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떠나 있는 심리적 사직에 이르게 된다.

∙ 그리고 그 깊은 내면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해석이 끊긴다. 그것이 바로 정체성의 소외다.


이 단절은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조직은 이를 ‘성과저하’로만 읽고, 어떤 리더는 이를 ‘근성부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감정과 의미, 정체성의 단절로부터 비롯된 심리적 경보임을 말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회복 전략을 제안했다:

∙ 감정과 관계의 회복에는 서번트 리더십이,

∙ 의미와 정체성의 회복에는 Job Crafting이 필요하다고.

∙ 그리고 이 장은 그 Job Crafting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이다.


즉, 이론이나 제도 이전에, 한 사람이 자기의 일을 다시 받아들이고 재구성했던 이야기, 그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 회복의 순간을 따라가보려 한다. 이제 우리는 세 명의 Job Crafter를 소개하려 한다.

∙ 성직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사람을 먼저 선택한 한 신앙인

∙ 위계와 시스템 속에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몰입을 회복해낸 한 CEO

∙ 절망의 공간에서조차 일의 의미를 재설계한 한 영화 속 인물


이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는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질문을 스스로 다시 답해나갔다. 누구도 그들에게 ‘일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일과 자기 자신 사이의 끊어진 연결을 다시 이어냈다. 이 장은 그 연결의 실천, Job Crafting의 살아 있는 얼굴을 담는다.


1. 신부가 아니라 ‘사람’이 되고자 했던 Job Crafter ― 김수환 추기경


“고통받는 이의 곁에 있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는 사제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단지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직이라는 제도적 정체성을 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과업을 끊임없이 재정의했던 Job Crafter였다. 그의 사목은 성당 안에서 머물지 않았다. 거리의 노숙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 광장의 민주화 운동을 조용히 지켜보며 고개를 숙였으며, 때로는 비판을 감수하고도 “가난한 이들이 먼저”라는 메시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신부의 일이 기도와 설교, 성사의 집행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일은 결국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으로 바꾸었다. 그의 선택은 단지 역할의 확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일을 다시 해석하고, 다시 구성한 실천적 감각이었다.


“그의 이런 행보는 단지 개인적 성품이나 신앙적 헌신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정의하고, 다듬고, 확장해나간 실천가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Job Crafting의 관점에서 보면, 김수환 추기경은 일과 존재 사이의 경계를 다시 설계한 대표적 인물이다.”


√ 김수환 추기경의 Job Crafting ― 세 가지 경계의 재설계


서울 명동성당, 어느 추운 겨울 저녁이었다.장례를 치르기 위해 성당을 찾은 이들 틈에, 한 노신부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장례미사를 주재하기 전, 하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고 악수를 건넸다.어느 가족의 조손(祖孫) 관계를 묻기도 하고, 돌아가신 분의 생전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그리고 마침내 관 앞에 섰을 때, 그는 짧게 한 마디를 건넸다.


“하느님보다 먼저, 당신 곁에 있던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는 추기경이었다. 한국 가톨릭의 최고 성직자였고, 수많은 종교인이 존경하던 인물이었지만, 그는 ‘신부’로 불리기보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직무를, 직책이나 규율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로 정의하려 했다. 그가 보여준 삶은 전형적인 Job Crafting의 실천이었다.그는 스스로의 직무를 해석했고, 관계의 경계를 다시 정했으며,성직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다.


과업(Task) Crafting:

단순한 미사 집전이나 교회 행정이 아닌, ‘고통받는 이와 함께 있는 것’을 주요 실천으로 삼았다. 성당 밖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식사하고, 노동자 현장을 방문하며종교 행위를 ‘삶의 행위’로 확장시켰다.


관계(Relational) Crafting

성직자-신도 관계를 넘어,사회적 약자, 시민, 심지어 타종교인과도 수평적 관계를 만들었다.


“나는 그들의 신부가 아니라,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 그가 관계를 재정의했던 대표적 발언이다.


인지(Cognitive) Crafting

‘신앙의 지도자’라는 정체성보다, ‘존엄한 인간을 위한 사람’이라는 존재 의미로 직무를 재해석했다.


“하느님의 뜻은 교리 이전에, 인간의 고통 속에서 들려온다”는 인식은 일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


정체성과 의미의 재설계

이는 Wrzesniewski & Dutton(2001)이 말한 Job Crafting의 세 가지 경계를 모두 실천한 대표적 사례다. 그는 단순히 일을 ‘잘’ 수행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의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사제란, 성사(聖事)를 집전하는 직책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 곁에 있어주는 존재 방식이었다. 그는 직무의 틀을 바꾸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존재의 철학을 재구성했다. 이러한 실천은 단순한 역할 확장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내가 하는 이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은 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성찰로 전환하고, 직무의 경계를 스스로 새로이 긋는 Job Crafting으로 구체화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이 속한 제도와 직책 안에서 한 개인이 감정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틀에 머물지 않고, 자율적 의미 구성(Self-Determination)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감정적・철학적 응답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성직자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003년,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강연 중)


이 말은 직무와 존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 해석의 과정을, 직무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셈이다. 즉, 그의 Job Crafting은 정체성 소외로부터의 자기 회복 과정이자, 존재의 몰입을 다시 회복하는 감정적 실천이었다. 그가 해낸 것은 단지 과업의 변화가 아니라, 직무를 통해 정체성을 다시 세운 사람의 이야기였다.


일은 직책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직책으로서의 ‘추기경’보다, 사람으로서의 ‘김수환’을 먼저 고민했던 Job Crafter였다. 그는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테두리를 넓히고, 경계를 다시 긋고, ‘신부의 일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존재적 해석을 일의 구조로 바꾸었다. 그가 보여준 Job Crafting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일을 바꾸는 것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다시 묻는 과정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Job Crafting은 단지 개인적 실천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만든 방식은 곧 문화가 되었고, 그가 맺은 관계는 공동체의 감정 자산으로 축적되었다. 그가 삶으로 보여준 재설계는 후배 성직자들이 사람 곁으로 다가가는 방식이 되었고,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는 신자들의 감정적 기억으로 남아 “일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조직적 기준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를 바꾼 것이 아니라, 그 직무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바꿨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영적 지도자였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함께 밥을 먹어준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 방식은 일하는 방식이 되었고, 그 방식은 곧 조직 전체의 기준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Job Crafting의 힘이다.


2. 자원을 스스로 확장한 현장의 CEO ― 배기문 대표이사


“누가 주지 않으면, 스스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 10월, 직원 45명, 연매출 180억.


그가 입사할 당시, 지금의 아이에스동서는 규모도 영향력도 크지 않은 지역 건설사였다. 그러나 2024년, 이 조직은 매출 1조 5천억, 1,2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종합 디벨로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설계해온 사람이 있다. 배기문 대표이사다.

그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은 아니었다. 부산상고 졸업 후 바로 입사해 실무부터 배워야 했고, 회사는 그에게 풍부한 자원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원을 찾아냈고, 스스로 만들었다. 밤마다 회계 서적과 세법 교재를 펴들었고, 낮에는 현장을 뛰며 문제를 익혔다. 부산대학교, 건국대 MBA 과정에 진학해 구조적 자원을 넓혔고, 반복되는 세무조사조차 실무 학습의 기회로 바꾸었다.


“세무조사는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하지 않고 배우면 됩니다.”


그는 ‘문제’보다 ‘학습 기회’에 더 주목한 사람이었다. 그가 보여준 이 태도는 단순한 성실함을 넘어, 명백한 Job Crafting의 실천이었다. 그는 자원이 부족한 구조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요구를 분석하고, 자원을 발굴하며, 직무의 의미를 재구성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더 많은 것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방해적 직무 요구를 제거하기 위해 탁상보고 체계를 없앴고, 장시간 회의를 줄였으며, 결과 중심의 단순 보고체계를 도입했다. 직무 스트레스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한 리디자인이었다.

그의 일하는 방식은 종종 ‘워커홀릭’으로 불렸지만, 그것은 단순한 과로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직무 환경을 구성하고 변화시켜간 능동적 실천가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곧 정체성의 변화로 이어졌다.


"나는 이 조직을 통해 성장했고, 이 조직은 나를 통해 달라졌다."


이 인식은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라, 일을 통한 자아 실현의 결과였다. 그 정체성은 조직에 대한 몰입으로 연결되었고, 몰입은 결국 조직의 실질적 성과로 귀결되었다.


√ 배기문 대표이사의 Job Crafting ― JD-R 기반 직무 요구·자원 구조의 설계


구조적 Job Resources의 확장

- 지식 자산 구축: 부산대・건국대 MBA, 회계/세무 독학

- 업무 시스템 혁신: 보고 간소화, 문제 중심 실무 프로세스 구축

- 경영 리터러시 강화: 실무-중간관리-최고경영자까지 자력 성장 구조 형성


사회적 Job Resources의 확장

- 심리적 안정 제공: “결정은 당신이, 책임은 내가”라는 권한 위임

- 소통 기반 문화 조성: 보고 대신 피드백, 단절 대신 신뢰

- 학습 공유 환경: 내부 회계・세무 교육 시스템 직접 설계


도전적 Job Demands의 수용

- 세무조사・내부감사 대응: 반복적 위기를 성장 기회로 전환

- 사업 확장과 인수합병 주도: 경영자로서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

- 대표 승진의 책임 수용: 단순한 승진이 아닌 조직 미래에 대한 수용


방해적 Job Demands의 감소

- 보고 체계 축소: 장시간 회의, 불필요한 보고서 제거

- 불확실성 제거: 평가 기준, 업무 기준의 명확화

- 스트레스 원인 구조적 제거: 실적 중심 부담이 아닌 과정 중심 격려


정체성을 품은 직무 재설계, 그리고 전이되는 문화

배기문 대표이사는 단순히 일을 잘한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정의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Job Crafting은 ‘조직에 맞추기’가 아니라, ‘조직을 통해 나를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 그가 설계한 일은 곧 그의 정체성이 되었고, 그 정체성은 조직의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의 Job Crafting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가 구축한 방식은 점차 조직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자원을 찾아내며, 업무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태도는 그의 팀원들에게, 관리자들에게, 그리고 후배 직원들에게 서서히 전이되었다. 이제 그는 혼자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실천은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그 기준은 조직 전체가 ‘자율과 책임’ 속에서 성장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조용히 Job Crafting을 시작하고 있다.


3. “자유는 마음 안에서 시작됩니다” ―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의 Job Crafting


“벽 안에 갇혀 있어도, 내 안의 자유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한순간에 삶을 빼앗긴 인물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는, 냉혹한 감옥 ‘쇼생크’에서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생존 방식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었다. 앤디는 감옥이라는 제한된 환경 안에서 스스로 ‘일의 의미를 재정의하고(Task Crafting), 관계를 새로 맺으며(Relational Crafting), 존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Cognitive Crafting)’, 더 나아가 도서관 운영을 위한 자원 확보, 교육 활동 등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적극적으로 확장해나갔다(JD-R 기반 자원 Crafting). 때로는 감정적 소진과 무력감을 줄이기 위해 ‘일상의 부담을 조절하고, 불합리한 요구에 거리를 두는 방식(Job Demands 조절)’으로 생존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탈옥 이전에 이미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단지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다. 정체성 소외 속에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Crafting 해낸 사람,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자원과 요구를 재구성한 복합형 Job Crafter의 이야기다.


√ 앤디 듀프레인의 Job Crafting ― 두 가지 모델의 통합 실천


앤디는 Wrzesniewski & Dutton(2001)의 관점에서 보면 과업(Task), 관계(Relational), 인지(Cognitive)의 경계를 모두 바꾼 사람이다. 동시에 Tims & Bakker(2010)의 JD-R 모델 관점에서도 스스로 자원을 창출하고, 도전적 요구를 재구성하며, 감정적 에너지를 회복해낸 인물이다. 즉, 그는 Job Crafting의 두 가지 모델을 통합적으로 실천한 복합형 Job Crafter였다.


과업(Task) Crafting

앤디는 처음엔 교도소 도서관에서 먼지를 털고 책 정리를 하는 단순 작업을 맡는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단순한 노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회계 능력을 살려 교도소장의 자금 관리를 도왔고, 이를 통해 조직 내 영향력을 확보했다. 나아가 그는 도서관을 재정비하고, 수년간 편지를 써 외부로부터 책과 기금을 유치해 ‘감옥 안의 교육 공간’을 스스로 창출했다.


관계(Relational) Crafting

앤디는 수감자들과의 관계도 바꿔나갔다. 처음엔 말이 없고 냉담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다양한 재능을 통해 동료들과 신뢰를 쌓는다. 수감자 레드와의 우정, 법률 상담, 음악 공유(‘피가로의 결혼’ 방송)는 그가 감옥 안에서 ‘희망을 전파하는 존재’로 변모하게 만든 결정적 관계 변화였다.


인지(Cognitive) Crafting

앤디는 감옥을 단순한 형벌의 장소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곳을 오히려 ‘자기 해석의 공간’으로 바꾸었다. “여긴 돌을 조각하기에 좋은 곳이야”, “지금도 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 이러한 말들은 그가 감옥이라는 구조 안에서도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재구성해낸 철학적 해석의 결과였다.


자원·요구 재구성 (JD-R 기반)

앤디는 초기에는 도서관도, 우정도, 심지어 연필 한 자루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원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냈다.

• 매주 편지를 보내 책을 확보하고,

• 시간 외 노역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기회로 전환했고,

• 음악 방송 사건처럼, 한순간의 여유를 공동 감정 자원으로 확장시켰다.


그의 실천은 단지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높은 스트레스 요구(감금, 위협, 반복노동)를 ‘희망과 연결된 활동’으로 전환하는 감정 노동을 실행했고, 그 결과 감정적 소진 없이 오히려 몰입과 생존의 활로를 찾아냈다.


정체성 소외의 구조를 재해석하다

앤디는 극단적 정체성 소외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무기수’, ‘살인범’, ‘번호로 불리는 존재’라는 낙인은 그의 과거를 지우고, 현재를 고정하며, 미래를 막는 이름이었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단지 물리적 구속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부정당하는 심리적 감옥이었다. 그러나 앤디는 그 주어진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 일의 의미를 재정의하고(Task Crafting), 동료들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며(Relational Crafting), 자신에 대한 관점을 전환(Cognitive Crafting)’했다. 동시에 그는 단지 마음을 바꾼 것만이 아니라, 도서관 운영, 교육 확대, 외부 자원 확보 등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일에 필요한 자원을 스스로 만들어냈다(Job Resources 확대). 또한 감옥 내의 부당한 요구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자신을 보호하고 요구 수준을 조절하는 전략(Job Demands 조정)’도 병행했다.

이러한 경계 조정형 Job Crafting과 JD-R 기반 구조 조정형 Job Crafting의 복합적 활용은 앤디가 단지 심리적으로 버텨낸 것이 아니라, 존재를 재구성하며 정체성을 회복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선택적 자기계발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기구원의 방식이었다.


희망을 Crafting한 사람


앤디는 말했다.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그의 Job Crafting은 말이 아니라 행동의 언어였다. 그는 희망을 말로 외치지 않았다. 매일 한 통의 편지를 쓰고, 낡은 책을 정리하고, 동료 수감자에게 지식을 나누는 소소한 실천 속에, 그는 희망을 담았다. 그리고 이 희망은 도서관이라는 공간 안에, 정체성이 숨 쉬는 장소로 구체화되었다.

그의 변화는 주변에도 전염되었다. 학습이 시작되었고, 공동체가 살아났고, 감정이 회복되었다. 앤디의 Job Crafting은 단지 정체성을 지킨 것이 아니라, 감옥 안의 ‘조직’ 전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의 실천은 Wrzesniewski & Dutton의 경계 변화 접근과 Tims & Bakker의 JD-R 구조 조정 접근이 어떻게 하나로 결합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과업과 관계, 인지의 변화를 주도하면서도 자원을 스스로 창출하고, 요구 수준을 능동적으로 조정한 앤디의 방식은, 지시가 아닌 자율과 주도성에 기반한 복합형 Job Crafting의 전형이다.

이 두 가지 접근의 혼합은 단지 영화 속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는다. 지속적인 과업 요구와 낮은 자율성, 관계 중심의 문화가 혼재된 한국 조직에서, 내면의 정체성과 외부의 구조를 동시에 Crafting하는 복합형 실천은 더욱 절실하다. 앤디 듀프레인의 Job Crafting은 한국적 조직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의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그는 감옥을 탈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감옥 안에서 지켜낸 사람이다.그리고 그 실천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일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4. 살아 있는 사람의 일, 살아 있는 조직의 가능성


“그냥… 하고 있어요.”


그 말은 단순한 무기력함이 아니라,

자기 일이 더 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을 때 나오는 절망의 언어다. 우리는 이 책 전반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반복해서 이야기해왔다. 바로 “유지적 몰입 = 심리적 사직 = 정체성 소외”라는 조직심리의 등식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개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감정적·존재론적 이탈의 한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유지적 몰입은 조직에 남긴 했지만, 더 이상 정서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상태다. 이직은 하지 않지만, 그저 남아 있는 이유가 ‘외부의 손실’이나 ‘리스크 회피’에 기반할 때,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이나 가치로 일하지 않는다. 그 상태가 길어지면 심리적 사직으로 이행된다. 말은 줄고, 질문은 사라지고, 아이디어는 멈춘다. 업무는 계속되지만, 더 이상 조직에 감정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내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정체성 소외가 자리 잡는다.


• ‘이 일은 더 이상 나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감각.

• 과거에는 자부심을 느꼈던 일이 이제는 자신을 지우는 도구가 된 느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적어도 이 일은 아니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상태다. 이 흐름은 단순한 직무 불만이나 태도 저하가 아니다. 그것은 몰입이 해체되는 과정이며, 무엇보다 일과 존재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심리적 해체 과정이다.


“Job Crafting은 정체성 소외에 대한 감정적 응답이다.“


이 책은 단순히 몰입을 회복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우리가 말한 Job Crafting은 단순한 직무 조정 기술도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 소외라는 감정적 위기에 대한 존재적 해석이자 실천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직무를 ‘성직’이 아닌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 재해석했다. 앤디 듀프레인은 감옥이라는 가장 제한된 구조 속에서, 관계와 해석을 바꾸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끝까지 응답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을 새롭게 다시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조직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Job Crafting은 이렇다:


과업을 바꿨기 때문에 살아난 게 아니다.

관계를 새로 맺었기 때문에 감정이 복원된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일의 의미’를 자기 존재로 다시 연결했기 때문에, 몰입이 다시 살아났고, 정체성이 복원되었으며, 무너졌던 감정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유지적 몰입의 탈출구는 ‘의미 회복’이다. 유지적 몰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 상태가 길어지면, 감정은 사라지고, 관계는 단절되며, 결국 조직은 살아 있지만 죽은 존재들로 채워진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적 개입 이전에 ‘의미의 복원’이다.

Job Crafting은 그 복원의 시작점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감정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누구의 일인가?”

“이 일이 나를 설명해주는가, 아니면 지워버리고 있는가?”

“나는 이 안에서 살아 있는가, 아니면 버티고 있는가?”


조직은 누가 살아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Job Crafting은 혼자서는 끝까지 갈 수 없다. 누군가가 그 시도를 기억해주고, 해석해주고, 지지해줄 때, 그 실천은 조직 안에서 지속 가능한 감정이 된다. 그래서 리더십이 필요하고, 제도가 필요하고, 문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작은 결국 한 사람의 작은 질문이다.

•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기다리는 것,

• 그 질문이 조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믿어주는 것,


바로 이것이 살아 있는 조직의 조건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Job Crafting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회복 장치다. 그것은 “일을 잘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다시 살아 있게 하는 실천”이다.


우리는 이 책의 시작에서 물었다.


“왜 우리는 정서적 몰입에서 유지적 몰입으로,

그리고 결국 심리적 사직에 이르게 되는가?”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그 단절은 회복될 수 있다.

그 회복은 의미의 재구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회복의 실천이 바로 Job Craft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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