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우리 주변의 I-dealers

―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시 말하게 된 순간

by 크네이트

25. 우리 주변의 I-dealers

―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시 말하게 된 순간


▶ 침묵의 한가운데, 그들은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거기 있었다. 회의실에도 있었고, 팀 채팅방에도 있었고, 보고서 맨 아래에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출근했고, 지시를 따랐으며, 일정을 맞췄다. 지각은 드물었고, 결과는 무난했다. 그러나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할 수 없었다. 말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고, 한 번 꺼낸 말은 되려 자신의 평판을 해치는 부메랑처럼 돌아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감정을 꺼내지 않았고,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그들은 조직의 침묵에 침묵으로 응답했다. 회의 시간엔 의견 대신 수긍이 있었고, 피드백 대신 묵인이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일에 자신을 묻었다. 감정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질문은 기능으로 대체되었다. 그들의 하루는 성실했지만, 그 속엔 자신이 없었다.


“이 일이 나를 설명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구성원이 그렇게 회상한다. 처음에는 일이 곧 나였고, 내가 쓰는 기획서 한 줄, 고객과의 대화 한 마디에도 내 언어가 묻어 있었다. 보고서에 내 손글씨를 얹고, 회의에서 내 생각을 보탰고, 퇴근길에는 ‘오늘도 잘 살아냈다’는 기분이 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일은 숫자로 환산되었고, 대화는 결과 중심으로 정리되었으며, ‘왜 이 일을 하는가?’는 사라지고, ‘언제까지 해낼 수 있는가?’만 남았다. 정체성은 서서히 업무의 그늘 속에 가라앉았다. 몰입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로 바뀌었고, 그들은 몸은 있었지만 마음은 떠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지도 않았고, 이직을 고민하는 티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는 멈췄다.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고, 설명하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심리적 사직자가 되었다. 책상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업무 밖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 조직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조직은 말이 없는 사람을 편하다 여겼다. 갈등을 만들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며, 늘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 그들은 조직 안에서 '관리하기 쉬운 사람', 혹은 '성실한 인재'로 불렸다. 성과는 안정적이고, 평가에는 늘 ‘조용한 성실함’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조직은 알지 못했다. 그 침묵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포기와 체념이 눌려 있는지.

∙ ‘의욕을 접은 마음’

∙ ‘요청을 삼킨 태도


그리고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지우며 적응한 하루들. 그들은 단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한두 번이었다. 제안하려다 말았고, 회의 중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를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말하는 자신이 낯설어졌다. 조직은 수치로 보이는 문제만 대응하고, 제기된 요청에만 반응한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건, 문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말해지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진짜 신호는, 말하지 않는 사람의 침묵 안에 들어 있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받고 싶은 마음보다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졌고,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감정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조차 스스로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 "지금 이 역할이 힘들다고 해도 바뀌지 않겠지."

∙ "말하면 귀찮은 사람 될 거야."

∙ "그냥 참고 지나가자.“


그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반복되며, 감정은 곁을 잃고, 정체성은 흐려졌다. 이 침묵이 길어질수록, 조직은 살아 있는 사람을 잃는다. 보고서는 올라오지만, 제안은 사라지고, 성과는 남지만, 감정은 없다. 동료는 함께 있지만,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조직은 움직이는 기계처럼 돌아간다. 정해진 시간에 회의가 열리고, KPI는 보고서에 찍힌다. 하지만 그 안엔 의미도, 에너지 흐름도, 사람 사이의 온기도 없다. 조직은 그렇게 살아 있는 공간에서 반응하는 시스템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건, 항상 가장 조용한 사람들이다.


▶ 다시 말을 시작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 조용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다. 회의 시간에 손을 들지도 않았고, 인사팀에 장문의 메일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잠깐의 대화 틈에서 작게 내뱉은 한 문장.

∙ “요즘 이 역할이 저한테 좀 벅찬 것 같아요.”

∙ “이 프로젝트보다는, 저 일 쪽이 저다운 느낌이에요.”

∙ “지금 하는 방식보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 말은 요청이자 설명이었다. 하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다시 이 일 안에 넣고 싶다는 신호였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이 일을 단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일’로 만들고 싶다”는 아주 조심스럽고도 절박한 이야기다. 그들은 회사를 떠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일과 다시 연결되고 싶었던 것이다. 정해진 조건을 뒤엎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일 안에 다시 의미 있게 존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의 말은 거래가 아니라, 존재를 다시 묻는 감정의 제안이었다. 조건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일 안에 다시 존재하고 싶다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을 시작하려면, 단지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이 다시 나오기 위해선, 말할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그것은 거창한 제도도, 대단한 보상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작지만 중요한 관계의 틈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이 말을 꺼냈을 때 거절당해도 견딜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때로 그것은, '꼭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 즉 심리적 BATNA다. 또 하나의 조건은 이 관계를 계속 가꾸고 싶다는 의지다. 나도 이 조직 안에 머물고 싶고, 조직도 나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으로 본다는, 그 최소한의 신호, 이 믿음은 단발적 거래가 아닌 함께 살아가려는 장기적 태도 위에서 가능하다. 말을 꺼내려면 그 과정이 공정하다는 확신도 필요하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원칙과 기준이 있고, 적어도 나의 말이 '과정 안에 포함된다'는 믿음. 그런 공정한 절차의 느낌이 없다면, 말은 시작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낼 때,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감정이 전달되어야 한다. 아무리 정당한 설명이라도,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여겨지면 그 순간부터 말은 감정의 상처로 돌아온다. 말을 말로만 듣는 게 아니라, 감정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는 상호작용의 품격이 필요하다. 또한, 말은 설명으로 이어져야 한다. 안 된다는 말을 들어도, 왜 안 되는지, 왜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설명력’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관계의 연속성이 된다. 설명없는 거절은 단절이고, 설명이 있는 거절은 협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말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거라는 조용한 믿음, 즉 심리적 안전감이 있어야 한다. 그건 말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로부터 만들어진다. 그것이 바로 협상의 진짜 전제다.


▶ 협상의 본질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다

우리는 종종 ‘협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성과와 보상, 책임과 권한 같은 교환을 떠올린다. 그래서 협상은 ‘거래’의 언어, ‘계약’의 기술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진짜 협상은, 관계를 복원하는 언어다. I-deals는 그런 협상을 가능하게 하는 틈이다. 그 틈은 구조의 구멍이 아니라, 사람이 말을 걸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 사람은 다시 묻는다.

∙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나는 여전히 이 안에서 살아 있는 존재인가요?”

∙ “이 역할 안에 내 감정과 가능성은 남아 있나요?”


이 질문들은 성과와 효율을 측정하는 조직 시스템에서는 불편한 문장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디지 않으면, 조직은 어느 순간 ‘감정 없는 효율’과, ‘사람 없는 성과’로 채워지게 된다. I-deals는 구조를 바꾸는 대혁신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의 유연성이고, 조직이 사람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약속의 언어다. 협상이 조건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일일 때, 조직은 살아 있는 생태계가 된다.


▶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려 한다

누군가는 목소리로,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침묵 속 선언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이 장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계약 조건을 유리하게 바꾼 사람들, 성과 협상을 잘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정체성과 감정을 다시 꺼내려 했던 사람들이다. 남겨진 자리에서 자신을 다시 말하고, 묻혀 있던 언어를 꺼내어 일과 삶 사이의 끊어진 연결을 복원하려 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세 명의 사람을 통해 이 이야기를 따라가려 한다.

∙ 안중근 의사: 나를 말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 그는 어떤 제도도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던 시대에 살았다. 그는 감정과 철학, 존재와 행동을 통합한 언어로 일과 정체성을 가장 고결하게 연결한 인물이었다. 그의 I-deals는 조건이 아닌 존재 전체의 선언이었다.

∙ 《머니볼》의 빌리 빈: 규칙을 다시 쓴 사람. 그는 실패한 선수였고, 외면받는 방식의 지휘자였다. 그러나 그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기는 방식이 틀렸다면, 우리가 게임의 룰을 바꾸자.” 그의 선택은 전통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구조의 전환이었다. 그는 조직과의 협상을 통해 일의 방식을 바꿨고, 결국 몰입과 존재감을 회복했다.

∙ 우리가 목격한 작은 요청들: 우리는 조직 안에서 수많은 요청들을 보아왔다. 누군가는 아이 돌봄을 이유로 재택을 요청했고, 또 누군가는 감정 소진으로 인해 프로젝트 전환을 원했다. 그들은 한 번도 제도를 바꾸려 한 적이 없었다. 단지 자신을 다시 설명할 기회를 요청했을 뿐이었다. 그 장면들은 우리 모두가 목격한, 말하고 싶었던 이들의 풍경이다.


이제 우리는 이 세가지의 이야기 속에서 "협상의 본질은 조건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일은 조건이 아니다. 일은 관계다.” 그리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연결될 수 있다.


1. 나를 말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 ― 안중근, 존재론적 I-dealer

그는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신념을 말하는 것이 생명을 위협하던 시절이었다. 누구도 정체성을 묻지 않았고, 일은 명령으로 주어졌으며, 침묵은 미덕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조건을 넘어서, 오히려 그 부재의 한복판에서 스스로를 말하기 시작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이토 히로부미가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저격 사건이라 불렀다. 하지만 안중근에게 그것은 단지 한 인물을 쓰러뜨린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침묵을 깨뜨리고,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정체성을 '행동'이라는 방식으로 말해낸, 하나의 존재 선언이었다. 그는 총을 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졌다.

∙ "나는 누구인가?"

∙ "이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가?"


그는 말로 답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삶 전체를 문장 삼아 조직과 국가, 역사를 향해 던졌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협상이나 타협이 아닌, 정체성을 지우려 했던 구조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이자 재정의였다. 그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이토를 죽였다." 그리고 유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한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단순한 복수나 격정의 표출이 아닌, 삶의 정체성과 사명의 진술로 이해했다. 그의 말과 행위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말하겠다.”


1.1 존재론적 I-dealer로서 안중근 ― 여섯 조건의 관점에서


안중근은 협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협상의 본질, 즉 “존재를 다시 묻는 감정의 요청”을 자신의 삶 전체로 실현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I-deals(개별적 근무조건)는 단순한 업무 조정이나 혜택 협상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일이 나를 말해주지 못할 때, 나는 이 일을 통해 다시 나를 말하고자 한다”는 존재의 선언이다. 그리고 이 선언이 조직 안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서적·관계적 기반이 반드시 함께 작동해야 한다. 바로 다음의 여섯 조건이다:


“BATNA(협상의 대안), 장기지향성(지속적 관점), 절차공정성,

상호작용공정성, 설명력(요청의 타당성), 심리적 안전감”


이 여섯 조건은 단순한 협상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말할 수 있는 정서적 발판이자, 감정이 침묵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 조건이다. 이 조건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요청은 제도로 전환되지 못하고, 감정은 다시 침묵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 여섯 조건을, 개별적 근무조건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위한 심리적·관계적 기반으로 다시 주목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사례로, 우리는 협상이라는 말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삶으로 그것을 실현해낸 존재 ― 안중근을 만난다.


안중근은 협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협상의 본질, 즉 “존재를 다시 묻는 감정의 요청”을 자신의 삶 전체로 실현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I-deals(개별적 근무조건)는 단순한 업무 조정이나 혜택 협상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일이 나를 말해주지 못할 때, 나는 이 일을 통해 다시 나를 말하고자 한다”는 존재의 선언이다.

안중근은 ‘협상’이라는 언어조차 금기되던 시대에, 존재를 말하기 위한 행위 그 자체로 감정의 요청을 완수했다. 그것은 어떤 조건과 절차 없이, 삶 전체로 말하는 실존적 협상이었다. 그리고 이 선언이 조직 안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심리적·관계적 조건이 반드시 함께 작동해야 한다. BATNA, 장기지향성, 절차공정성, 상호작용공정성, 설명력, 심리적 안전감


∙ BATNA ― 그는 대안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존재를 올려놓았다

협상의 출발은 “이게 안 되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안중근에게는 그런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이토를 저격하기 전 이미 죽음을 각오했고, 실제로 유서도 준비해두었다. 그에게 ‘실패’는 곧 ‘죽음’이었고, 살아남아 다른 길을 찾는 BATNA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공백을 존재로 채웠다. 살아남기 위한 계산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오히려 자기를 증명하는 명제를 세운 것이다. 그가 택한 것은 살아남는 협상이 아니라, 존재를 걸고 말하는 실존적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테이블 위에, 그는 자신의 신념, 철학, 그리고 목숨을 올려놓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협상의 본질 ― ‘자신을 걸고 무언가를 말하는 것’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 장기지향성 ― 그는 개인의 죽음을 공동체의 미래로 연결했다

그의 총성이 울렸던 그날은 격정적인 분노의 순간이 아니었다. 그는 오랜 시간 준비했고, 전략을 세웠고, 행동의 결과를 모두 예상했다. 중요한 건, 그가 죽음을 미래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그는 유언에서 말했다.


“한국이 독립되거든 내 유해를 고국에 묻어달라.”


이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그의 행위가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니라, 미래의 시작이어야 한다는 설계였다. 안중근은 지금 이 한 걸음이,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생각했다. 그는 단순히 누군가를 제거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좌표 위에 자기 존재를 새기려 했고, 그 자리가 후대에게 정체성과 신념의 방향이 되기를 원했다. 개인의 죽음을 공동체의 내일로 확장한 장기지향적 실천, 이것이 그를 단순한 행동가가 아닌 사상가로 남게 했다.


∙ 절차공정성 ― 불가능한 절차 속에서도 그는 ‘정당함’을 요청했다

그가 받았던 재판은 진정한 법적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제가 만든 정치적 형식과 공개 처벌의 무대였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도 싸웠다. 통역을 요구하고, 진술서를 작성하고, 증거 제시를 요구했다. 그가 진짜 원한 것은 무죄가 아니라 정당하게 말할 권리였다. 그는 그 재판이 왜곡되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 안에서조차 절차라는 틀을 파괴하지 않고, 정당성의 최소 조건을 요구했다. 이것은 "네가 만든 무대라 해도, 나는 내 이야기를 여기서 끝까지 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절차공정성은 형식이 아니라 말할 기회의 존재다. 안중근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법정에서조차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 상호작용공정성 ― 아무도 그를 존중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존중했다

그는 피고석에 섰지만,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심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법정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강단처럼 사용했다.


“이토는 동양 평화를 깨뜨린 자이며, 조선의 자주권을 유린한 자다.”

“나는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토를 죽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누구도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을 스스로 지켜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철학을 말로 지켜냈다. 이것은 단지 ‘강한 사람’의 표현이 아니다. 상호작용공정성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감정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실천이었다. 그는 우리가 오늘 조직에서 말하는 ‘감정노동의 역설’을 미리 보여준 인물이었다. 존중받지 못해도, 내 감정은 나의 것이다라는 태도. 그는 그 감정을 조직(식민체제)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 설명력 ― 그는 말을 넘어서 삶 전체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왜 이토를 죽였는가?” 그는 말로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한 논리나 계획이 아니었다. 그의 언어는 ‘정의’, ‘자주’, ‘평화’, ‘동양공영’ 같은 철학의 언어였다. 그가 남긴 『동양평화론』은 단순한 정당화 문서가 아니다. 그는 이 한 번의 사건을 넘어서, 삶 전체의 철학을 글로 번역하려 한 사람이었다. 그는 명분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해석을 남겼다. 이 차이는 크다. 해석은 설명보다 오래간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이 삶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I-deals를 협상이라 말할 때, 단순한 타당성 이상의 ‘정체성 서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그는 100년 전 이미 제기했다.


∙ 심리적 안전감 ― 없었기에, 그는 존재 전체로 말해야 했다

말하면 죽는 시대였다. 생각을 표현하면 고문당하고, 이름을 드러내면 사형당했다. 그런 시대에 그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했다. 그리고 글을 썼다. 그리고 총을 들었다. 그에게 심리적 안전감은 한 줄기도 없었다. 그 공간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지만, 그는 그 부재의 자리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통해 확보된 공간이었다. 그것은 말로 요청하는 협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존재를 통해 요청하는 침묵의 반역이었다. 그는 안전함이 없는 시대에, 말이 아닌 존재 자체로 감정을 지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늘 우리가 조직 안에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할 때, 그는 그 자유조차 없는 곳에서 만들어낸 최초의 협상자였다.


1.2 학문적 성찰 ― 존재로 협상을 시도한 사람, 조직심리학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안중근은 조직도 없고 직무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해 생을 건 선택을 했다. 어떤 외적 보상도, 절차적 정당성도, 안전한 공간도 부재한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요청’ 그 자체로 만든 사람이다. 이러한 실존적 협상은 오늘날의 조직심리학 이론을 통해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하며, 오히려 이론의 경계를 확장하는 사례가 된다.


∙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 Deci와 Ryan(1985)이 정립한 자기결정이론은 인간의 동기를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에 기반해 설명한다. 대부분의 직무환경에서는 외적보상이나 조건이 동기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안중근에게는 그 어떤 보상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외적조건이 생명을 위협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했다. 이는 SDT가 말하는 내적 동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그는 자기 행위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았고, 그것을 멈출 수 없는 자율적 행위로 실천했다. 그의 몰입은 조직이 제공한 것도, 타인의 인정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근거를 자기 안에서 찾은 내적 자기결정의 상징적 사례였다. 오늘날 조직에서 구성원이 자율성을 느끼지 못하면 동기는 쉽게 소진된다. 반대로, 안중근의 삶은 자율성 그 자체가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 정체성 작업(identity work) – Alvesson과 Sveningsson(2003)은 ‘정체성 작업’을 단순한 자기 인식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하고 구성하는 ‘심리적·행위적 실천’으로 본다.

조직에서는 이 정체성 작업이 직무, 직위, 평가, 타인의 피드백 등을 통해 형성되곤 한다. 그러나 안중근은 그 어떤 제도적 직무도 부여받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계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구성했다. 그는 자신을 '의사(義士)'라 불렀고, '평화운동가'로 인식했으며, '정의의 전달자'로 존재를 실현했다. 그것은 단지 선언이 아니라, 수많은 글과 행동, 유언과 철학으로 구현된 능동적 정체성 구성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정체성 작업은 오늘날 조직 구성원이 “나는 이 일을 통해 누구인가?”, “이 직무는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고민할 때 매우 유사한 심리 메커니즘을 따른다. 안중근은 조직의 틀 없이도 자신의 일과 존재를 직접 연결했던 대표적 ‘정체성 노동자’였다고 볼 수 있다.


∙ 심리적 계약 이론(Psychological Contract Theory) – Rousseau(1989)에 의해 발전된 심리적 계약이론은, 구성원과 조직 사이의 비공식적 기대와 의무의 상호인식을 설명한다. 조직은 때로 명문화되지 않은 약속을 통해 구성원의 몰입을 유도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질 때 구성원은 실망, 배신감,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안중근에게는 그러한 계약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는 스스로 조국과의 심리적 계약을 설정한 인물이었다. 나라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그는 말한다:


“나는 나라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이것은 ‘국가가 나에게 해주었는가’라는 기준이 아닌, ‘내가 나와 맺은 약속에 충실했는가’라는 기준에서 스스로를 규정한 것이다. 즉, 그는 조직(국가)에 대한 배신감이 아니라, 그 배신을 넘어선 새로운 계약을 제안하는 존재였다. 그의 총성과 유서는 단절의 표현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의 제안이었다. 이는 오늘날 조직에서도, 심리적 계약이 무너졌을 때 구성원이 단순히 이직하거나 분노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관계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1.3 안중근이 남긴 질문,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안중근은 존재론적 I-dealer였다. 그는 조직이 정체성을 지워가던 시대에, 자신의 존재와 일을 하나로 묶어낸 사람이다. 그에게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에게 감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었다. 그에게 '일'은 선언이었다. 그에게 '감정'은 실천이었다. 조직과 제도가 침묵을 미덕으로 만들던 시대, 그는 자기 존재를 말하는 방식으로 침묵을 부수었고,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나’를 창조해냈다. 그가 남긴 총성과 언어는 폭력이 아니라 정체성의 외침이었다. 그의 행위는 복수도, 영웅주의도 아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세상에 던지는 실존적 언어였다. 그리고 그는 100년 전, 역사라는 법정 한가운데에서 지금 우리의 일터를 향해 묻고 있다:

∙ 나는 지금, 이 일을 통해 나를 말하고 있는가?

∙ 조직은 나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가?

∙ 내가 감정을 담은 요청이, 존재의 협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그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고, 삶 전체를 걸고 그 질문에 답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 정체성이 소외되고, 감정이 평가되고, 침묵이 살아남는 방식이 되어버린 오늘, 우리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지금, 이 일을 통해 나를 말하고 있는가?”


그는 100년 전의 일터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우리가 그 물음에 응답할 수 있다면, 그의 삶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일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철학이 될 것이다.


2. 규칙을 다시 쓰다 ― 《머니볼》의 빌리 빈, 시스템 전환형 I-dealer


‘빌리 빈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룰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I-deals, 즉 개별적 근무조건은 단지 ‘협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해서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이 실제로 조직 안에서 제도처럼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감정이 지워지지 않는 설계의 의도, 그리고 또 하나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고도, 그 안에 균열을 만드는 전략의 언어다. 안중근이 존재를 말하기 위해 협상의 언어를 초월했다면, 빌리 빈은 기존 제도의 문법 안에서 새로운 말을 만들었다. 그는 협상의 구조를 깨지 않았다. 오히려 그 구조 안에 숨겨진 불균형을 드러내고, 기존의 숫자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다시 발명해냈다.

우리가 이 장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I-dealer는 특정인을 위한 예외 조건을 넘어, 조직 전체의 룰과 문법을 ‘공정하게 전환’하는 설계자다. 이러한 시스템 전환형 I-dealer는 단순한 실행자나 피해자의 목소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조직의 자원을 다시 배치하고, 기준을 다시 서술하고, 감정이 묻히지 않는 룰을 다시 제안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다. 설계의 전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의 원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작은 구단을 이끌던 한 단장은 자원도, 명성도, 전통도 없이 기존의 룰을 해체하지 않고도 새로운 언어로 조직을 다시 설계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가 어떻게 이 전환을 실천해갔는지를 여섯 가지 심리적·관계적 조건의 관점에서 따라가보려 한다. 빌리 빈. 그는 단지 팀을 운영한 것이 아니라, 감정과 공정성이 묻히지 않는 시스템을 다시 설계한 사람이다.


2.1 시스템 전환형 I-dealer로서 빌리 빈 ― 여섯 조건의 관점에서


∙ BATNA ― 그는 남는 것보다, 남을 바꾸는 길을 택했다

빌리 빈에게는 분명한 대안이 있었다. 그는 더 큰 구단으로 이적할 수도 있었고, 기존의 전통적인 스카우팅 방식에 다시 편입될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 체계의 한계와 불합리를 감지한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이탈할 명분과 여건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남았다. 머무르되, 남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는 구단주의 제안을 거절했고, 승률이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 개혁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는 협상 테이블에 자신이 가진 안전한 미래를 올리는 대신, 리그 전체의 질서를 뒤흔드는 대안을 꺼내들었다. 그의 BATNA는 회피가 아니라, 변화를 직접 설계하는 도전이었다.


안정 대신 변화, 생존 대신 재구성 ― 그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 장기지향성 ― 그는 시즌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려 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지만, 당시의 기록은 감각과 직관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었다. “스윙이 예쁘다”, “자세가 좋다”, “눈빛이 살아 있다.” 빌리 빈은 이 흐릿한 언어를 거부했다. 그리고 수치를 언어로 바꿔 다시 야구를 해석했다. 그의 실험은 느렸다. 초반의 성적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었고, 내부조차 불신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한 시즌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는 한 구단의 미래가 아니라, 야구 전체의 룰을 다시 쓰는 것을 꿈꿨다.


“우리는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식을 바꾸려는 것이다.”


그의 눈은 늘 시즌 이후를 보고 있었다. 단기성과를 위한 조급한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이기는 구조를 설계하는 장기지향성 ― 그것이 빌리 빈의 진짜 승부였다.


∙ 절차공정성 ― 그는 시스템의 껍질은 유지하되, 내용을 다시 썼다

그는 리그의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계약 양식도, 로스터 구성 방식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작동하는 공정성의 기준을 완전히 뒤집었다. 기존 스카우터들이 말하던 추상적 평가 기준을 걷어내고, ‘출루율’, ‘점수 기여도’ 같은 수치 기반의 합리적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즉, 외형이나 배경, 선수 출신 같은 ‘주관적 스펙’이 아닌 데이터라는 객관 기준을 통해 기회를 배분했다. 그는 절차의 형식은 지키되, 내용을 분석과 근거의 언어로 교체함으로써, 스스로 절차공정성을 회복한 혁신 설계자였다.


∙ 상호작용공정성 ― 그는 존중받지 못했지만,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치진은 그의 방식에 반발했고, 언론은 그를 냉소적으로 비꼬았으며, 프런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회피하거나 고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숫자와 설명, 그리고 반복된 설득으로 대응했다. 그는 감정의 언어를 지우지 않으면서, 감정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상대방의 세계관을 무시하지 않되, 그 너머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동의를 강요하지 않았고, 지지를 강매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고, 존중받지 못하는 자리에서조차 타인을 존중하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설득을 지속했다. 이것은 단지 전략이 아니라, 공정한 상호작용에 대한 끈질긴 태도였다.


∙ 설명력 ― 그는 논리로 이기려 하지 않았고, 룰을 다시 제안했다

“그는 못생겼어요.”, “눈이 작아요.”, “폼이 이상해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외면받던 선수들, 그러나 빌리 빈의 세계 안에서는 그들이 합리적 평가 기준 안에서 가치를 획득한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기존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았다. 기존의 언어로는 말할 수 없던 존재들을 위해, 기준 자체를 재정의한 새로운 해석의 언어를 만든 것이다. 그의 설명은 단순한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기회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철학적 선언이었다. 그는 “왜 이 선수가 좋은가”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이 선수가 왜 지금껏 평가받지 못했는가”를 해석하고자 했다.


∙ 심리적 안전감 ― 그는 안락함이 아닌, 불확실성의 한가운데를 선택했다

그의 방식은 보장된 미래가 아니었다. 실패하면 모두의 조롱을 떠안아야 했고, 이 실험이 틀리면 그는 다시는 리그에서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기존 시스템에서 마음 편히 머무는 것보다, 작동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의 자리를 택했다. 그 선택은 용기가 아니라, 설계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고, 타인의 저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리적 안전감이 없는 구조에서 ‘기준의 안전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해나갔다.


2.2 학문적 성찰 ― 그는 무엇을 설계했는가, 조직심리학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빌리 빈은 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제도 안의 의미 체계를 바꾸었고, 그 결과 조직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평가하는 기준, 기회를 배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는 조직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체성, 동기, 계약, 자원 설계, 신뢰의 원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전환형 사례다.


∙ 심리적 계약이론(Psychological Contract Theory) – 전통적 야구 조직은 외모, 관습, 학력, ‘감’ 같은 비공식적 기준에 따라 선수를 평가했다. 빌리 빈은 이러한 기울어진 기대와 관성의 계약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성과 중심 계약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어떤 선수가 어떤 기준으로 대우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대 구조 자체를 전환한 인물이다.


∙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 그는 외부의 인정보다, 자신이 설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움직였다. 스카우터의 말보다 출루율을, 전통보다 데이터를 믿었다. 이는 자율성에 기반한 내적 동기 실현의 전형적 사례이며, 결정권자 스스로가 자기설계자로 행동한 SDT의 응용형이라 할 수 있다.


∙ JD-R 모형(Job Demands–Resources Model) – 자금과 자원이 부족한 구단에서, 그는 기존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치하고 해석함으로써 직무성과를 극대화했다.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직무설계를 실현한 사례로 읽을 수 있다.


∙ 정체성 작업(Identity Work) – 그는 ‘야구선수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의 정의를 바꾸었다. 기존의 프레임에서 소외되었던 선수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고, 그들의 자존감, 팀에 대한 의미감, 몰입의 기반을 함께 재구성했다.


∙ 사회교환이론(Social Exchange Theory) – 기존에는 관계와 감각으로 결정되던 야구선수의 평가에, 그는 명확한 기여와 성과에 기반한 거래 규칙을 도입했다. 이로써 조직 내 신뢰 관계는 불확실한 감정 거래에서 예측 가능한 공정한 교환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는 구성원에게 심리적 명료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기반이 되었다.


빌리 빈은 단지 데이터를 활용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숫자를 통해 룰을 재정의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룰은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 즉 기회와 존엄의 언어를 다시 쓰게 만든 도전이었다.


2.3 시스템을 다시 묻는 질문 ― 빌리 빈이 남긴 조건


빌리 빈은 시스템 전환형 I-dealer였다. 그는 누구나 따라야 한다고 믿었던 룰을 다시 읽었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기준을 다시 해석했다.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그 질서 안에 있던 왜곡을 수정하려 했다. 그에게 협상이란 단지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한 절차가 아니었다. 공정하지 않았던 조직의 문법을 다시 설계하는 감정적 실천이었다.

그는 숫자라는 언어를 빌렸지만, 사실은 사람을 위한 기준을 만들고자 했던 리더였다. 그의 방식은 격렬하지 않았고, 선언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조용한 재설계는 사람이 보이지 않던 조직 안에 사람을 다시 드러나게 한 실천이었다. 이제 그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 나는 지금, 내 조직의 기준을 납득하고 있는가?

∙ 우리가 따르고 있는 룰은 누구의 감정과 기준을 반영하고 있는가?

∙ 지금의 시스템은 공정한가, 아니면 그저 익숙한가?


그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이 방식이 정말 최선이라고, 당신은 확신하는가?" 그리고 우리 역시,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조직의 문법 안에서 나를 설계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든 룰 안에 내 감정을 숨긴 채 따라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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