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라디오를 듣는 시간

by 성지연

시작은 라디오였다.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 라디오를 즐겨 들었었다. 특히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는 라디오들은 때론 잠을 미루면서까지 듣게 됐다. 그땐 라디오를 정말 ‘라디오’로 들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나 자동차 스피커를 통해서가 아닌. 지지직거리며 주파수를 맞추고 나면 항상 늘, 그 시간에 기다려주듯, 그 자리에서 반겨주듯, 언제나 매일 들을 수 있는 그 안정감이란. 아주 어릴 적엔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도 했었는데, 광고가 들어가지 않게 버튼을 찰칵 찰칵 누르는 건 꽤 기술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매일 자주 듣던 라디오를 한동안은 멀리 했었다. 이유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퇴근 후까지도 듣고 싶지 않은 게 주 요인이었다. 사람이 말하는 목소리가 언젠가부터 소음으로 느껴졌다. 그저 아무 소리도 안 들린 채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자극이 없는 상태로 고요히 있고 싶었다. 그러다가 작년 연말부터 라디오를 다시 듣게 된 건 내가 사랑하는 윤상느님 덕분이다.

아니 다시 들으니 너ㅡ무 너무 좋잖아! 오랜만에 라디오를 듣는 행복을 찾았다.



아쉽게도 매일은 듣지 못한다. <오늘 아침 윤상입니다>는 매일 아침 9시에 시작하는데 그 시간은 이미 일을 시작한 시간이라 듣지 못하고, 주말에는 일어나자마자 꼭 꼭 챙겨 듣는다. 언젠가 청취자 사연 중에 나같이 주말에만 듣는 분의 이야기를, 윤상님이 괜찮다고 전해주셔서 그것도 참 반갑고 감사했다. 윤상님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선곡도 물론 크! 소리가 절로 나게 너무나 좋고, 어쩐지 찌뿌둥한 주말 아침을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라디오를 다시 듣게 되면서 오후에도 종종 듣기 시작했는데, 저녁 무렵에는 <완벽한 하루 이상순입니다>를 듣는다. 이상순님의 라디오도 역시나 목소리가 편안하고 선곡도 좋아서 듣다가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도 찬찬히 담게 된다. 이처럼 라디오를 다시 듣게 된 행복은 오랜만에 유희열님과 이소라님이 라디오 스페셜 DJ를 진행하는 것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지난봄에는 유희열님이, 추석연휴에는 이소라님이 몇 년 만에 DJ를 해주셔서 정말이지 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건 정말 <라디오천국>의 라천민들과 <음악도시>의 꽃돌이 꽃순이들이 매일매일 아 행복해 행복해 시간 가는 게 아까워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 그렇지만 진짜 행복해 !!! 하며 각자 꺄 소리 지르고도 남을 일이었다.



라디오는 배울 점들도 많다. 가끔 택시기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깊이 있고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며 놀랄 때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어쩌면 항상 그분들이 라디오를 들어서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전에 즐겨 들었던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는 이동진 평론가님이 나와서 영화 이야기도 해줬었고, 임경선 작가님이 나와서 연애 상담도 해주었었다. 게다가 라디오 작가님들이 전해주는 책 이야기들은 물론이고, 들을 일이 잘 없는 지구 반대편 제3세계의 음악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전해지는 음악적 취향들은 다 라디오가 만들어준 것들이 많다. 유머코드도 그렇다. 때론 친한 게스트들이 나와서 레전드로 웃겨주기도 했으며, 청취자와 직접 전화로 소통하는 것은 가끔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게 될 때가 많았다.



게다가 라디오는 작가, 연출, DJ와 청취자들이 모두 함께 실시간으로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청취자들이 보내주는 사연들은 너무 귀엽고 재미있을 때가 많다. 정말 사소하고 일상적이어서 누군가에게는 TMI일 수도 있을, 그럼에도 전혀 남 일 같지가 않고 공감가고 그래서 쿡 웃음이 나게 되기도 하는. 때로는 가슴이 아파지거나 마음 한 켠이 소복이 따숩게 데워지기도 하는 그런 사연들. 게다가 영상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의 ‘목소리’로만 그 마음들이 착착 전해지는 것은 참 왜 이렇게 더 가깝게 애틋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가만히 더 귀 기울이게 된다.



같은 시간에 같은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엄청난 유대감이 생기는 일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생각을 나누고, 행간에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나누고, 좋은 음악을 나눈다. 그래서일까,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을 반짝이게 된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들을 줄 아는 사람들. 혼자이면서도 함께일 수 있는 시간의 힘을 아는 사람들. 그러다 때론 밤하늘의 별처럼 멋진 말과 아름다운 음악들을 쏟아낼 줄도 아는 사람들이라는, 그런 편견을 오래도록 갖고 있다.



요즘 듣는 이상순 라디오에서는 수요일마다 <젠지의 음악>이라는 코너를 한다. 거기에는 무려 매주 토마스 쿡이 나온다. 토마스 쿡은 마이엔트메리라는 그룹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정순용이다. 그리고 마이엔트메리는 또 내가 오래도록 좋아하고 즐겨 듣는 밴드이기도 하다. 작년에도 소규모로 했던 스탠드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큰 감동을 했었다. 아니 그 마이엔트메리의! 토마스 쿡이! 그러니까 정순용이!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에 매주 수요일에 나와서 음악을 소개해준다니. 미쳤다. 선곡들은 어쩜 그렇게 기깔나게 좋은지 매주 감탄하며 듣고 있었다. 그러다 왜인걸, 이상순님 라디오에서 지나가는 말로, 정순용님이 <싱어게인4>에 출연하셨다는 것이 아닌가.



으잉? 토마스 쿡이 무명가수전이라니. 거기 나올 분이 아닌데, 하고 <싱어게인4>를 찾아봤다. 아, 마이엔트메리의 음악은 라이브로 들어야 하는데. 마이엔트메리의 팬분들은 다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보는데 본인을 ‘곁들이는 51호 가수’라고 소개하는 것도 슬펐고, 다 보고나서는 더더욱 매우 속상했다. 김이나 작사가님이 “계속 동어반복이 되는 코뿔소를 표현하는데, 단 한 마리도 같은 코뿔소가 없었어요.“ 라는 말씀에 임재범님이 끄덕거리는데, 그 말에는 잠시 안도가 되고 위로가 되었었다. 그럼에도 ”mz세대에 쉬운 음악 장르는 아니다“는 말은 또 퍽 슬펐다. 전혀 아닌데요, 한번 들어보면, 진짜, 전혀 아닐 텐데요. 흑흑



거기에다 대망은 이영훈님이었다. 내가 이영훈님을 알게 된 것도 언젠가의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아니 이영훈이라니요, 감히 이영훈이라니요! 이영훈님도 공연가서 라이브로 들어야 찐인데.. 전진희님 피아노 반주와 이영훈님 기타소리에 노랫말을 그 목소리로 직접 들으면 그냥 눈물 주룩주룩인데,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영훈님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봤다. 대싱어송라이터이신 이영훈님이 스스로 또 자신은 “자극이 없는 사람이고, 제가 하는 음악도 자극이 없는 음악인데, 큰 자극 없는 저도 일종의 가수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미어졌다. 아니 자극이 없다니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천재만재영재로부터 느껴지는 엄청난 자극인데요! 그리곤 결국엔 들려주신 <일종의 고백>은 들으면서 가슴을 쥐어짜고 엉엉 울고 말았다. 영훈님… 이런 노랫말에 이런 연주에 이런 노래를 부르시면 어떡하나요 정말…그러면서도 최근 무기력에 빠지셨다고 하여 너무 걱정도 되고 그랬다.



물론 아주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이 분들이 마치 흘러간, 잊힌 옛가수처럼 덧입혀져 나오는 것도 좀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마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 분들이라 더 그랬겠지, 그리고 어쩌면 나 또한 이미 옛날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라디오라는 매체를 듣는다는 사람들의 세대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 그런데 나도 이 분들도 아직 다 살아있는데, 옛날 사람이라는 말이 뭐가 맞는 걸까. 모든 사람에겐 각자가 현재고 현대다. 위대한 예술은 시대와 상관 없이 지금을 함께 한다. 게다가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최근 연구에는 과학자들이 죽음 이후의 생명 상태까지 발견했다고 하니, 모든 생명은 현재일 뿐이지 옛날이라는 말과는 영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라디오로 시작한 여정은 마이엔트메리 정순용님과 이영훈님의 노래를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했고 또 앞으로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쩐지 운명처럼, 인연처럼, 행운처럼 ‘이어져있다는 감각’을 또다시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다는 것. 이곳저곳 흩어져있는 사람들은 같은 주파수로 이어져있다. 당신의 웃음이 나의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남 일 같았던 그들의 고통이 내 일이 되기도 한다. 오랜 전통이 현대에 이르고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하듯, 오래전 일이 훗날에야 이해가 되기도 한다. 왜 거기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점점이 찍힌 별들을 연결해 나중에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별자리가 되어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라디오를 듣고있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끝나는 게 아쉽고, 그래도 내일 또 만나고싶고, 혹시 내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순간 순간 너무도 소중한 ‘이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그토록 아까운 시간은 결국에 더더욱 내가 사랑하고 의미있고 애정하고 가치있다고 여기는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라디오를 듣는 시간.







글 | 성지연 2025.10.23

표지그림 | 이영훈, 정규 2집 <내가 부른 그림 2>

매거진의 이전글이천이십사년 유월의 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