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by 성지연


지난겨울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를 다시 봤다. 대본은 말할 것도 없이 좋고, 배우분들은 또 어찌나 신들린 듯이 연기를 하시는지! 두 번째 보는 작품은 새롭게 느껴지는 면들이 많았다.

ㅡ 엄마, 디마프 다시 봐봐!

엄마도 예전에 이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추천해 드렸다. 중간중간 드라마 내용에 대해 웃겼던 장면, 슬펐던 장면을 엄마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갑자기 어느 날 엄마가 통화를 하다 나에게 물으셨다.

ㅡ 엄마는 어떤 엄마랑 가장 비슷해?

사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김혜자선생님이 연기한 희자였다. 그런데 희자는 극에 나오는 엄마들 중 가장 예민하고 히스테릭하며 극 후반에는 치매에 걸리는 역할이라, 엄마께 엄마는 희자지! 라고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ㅡ 음, 내 생각에 엄마는 고두심 씨가 연기한 장난희!

ㅡ 그래? 희자이모 아니고?

ㅡ 아냐 아냐, 굳이 따지면 엄만 고현정 배우님 엄마랑 가장 비슷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그 사이에 103세까지 사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시가로부터 상처가 많으셨던 엄마는 장례를 치르며 더더욱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가끔 엄마랑 이야기를 하면, 늘 과거의 망령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로부터 나도 한층 머리가 아파왔다. 지난 일은 좀 잊으면 안 되나?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고. 어떤 날은 엄마가 네가 아니면 누구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겠니, 하며 토로하던 날은 유독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가 좀 이상했다.

분명히 전 날 이야기를 했었는데,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화를 냈다. 또 어느 날은 요일을 착각하고 너 이거 하기로 하지 않았니? 하며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근무 중에는 생전 전화를 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은 한참 수업을 하는데 전화가 울려 깜짝 놀랐다. 어떤 날은 우스갯소리로 수영 가는 요일을 착각하고 물속에까지 들어가 있었지 뭐니, 사람들한테 왜 오리발을 안 갖고 왔냐고 말했다가 내가 잘못 왔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 창피했어. 하는데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 점점 갸우뚱해질 때가 많아서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봤다. 그랬더니 동생도 안 그래도 저번에 엄마가 조카에게 책을 읽어주시는데, 동화책을 너무 이상하게 읽어주더란 말을 했다. 글을 안 읽고 상상해서 읽어주신 거 아냐? 했더니 아냐, 언니 진짜 이상하게 읽었어.



안 되겠다 싶어서 [치매]로 검색을 했다. 각 지역마다 치매안심센터라는 게 있어서 60세 이상은 무료 검사도 해준다고 했다. 센터에 전화를 해서, 예약이 가능한지 물었다. 너무나 친절하신 목소리로 아무 때나 오라고 하셨다. 내 문자로 안내메시지도 넣어주신다고 했다. 엄마한테 한 번 거기 가보자, 라고 말을 꺼내는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했다. 심각하게 말하면 엄마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것 같았다. 엄마는 처음에는 내가 무슨, 이러다가 안 갈래, 하다가 그래 알겠어 하셨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자꾸만 극 중 희자이모가 생각났다. 자꾸만 잠옷을 입고 밤마다 밖으로 나가던 희자. 혼자 있는 집에서 끼니를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챙겨 먹던 희자. 거실에서 테레비를 보다가 그대로 누워 잠들던, 다른 사람이 그냥 한 말 한마디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며 계속 전화를 하던, 그리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생리현상을 참지 못했던 희자. 그냥 드라마를 작품으로 봤을 때는 가슴이 아플 정도였는데, 몇 주간은 자꾸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난주에는 엄마랑 강아지랑 셋이서 꽃구경을 다녀왔다. 꽃은 너무 찬란하고 야호도 행복하고 엄마도 즐거워 보였는데, 너무 아름다운데 너무 슬펐다. 강아지랑 일부러 더 산책을 많이 하고, 엄마 이야기도 일부러 더 많이 들어드렸다. 엄마는 또 과거 한탄을 자주 시작하셨는데, 맞장구도 치고, 나도 같이 엄마처럼 화도 내고, 질문도 하면서 유독 적극적 경청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치매안심센터 예약일, 조퇴를 하고 엄마를 데리러 갔다. 어느덧 꽃이 지고 연두잎이 피어난 곳 사이를 엄마와 둘이서 걸었다. 엄마는 생각보다 해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수영장에서 만난 회원들 이야기, 야호 이야기, 얼마 전에 산 바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 엄마가 심각하실 것 같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나는 내심 지난밤에 또 악몽을 꿔서 불안한 마음이었다.



센터에 들어서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어느 정도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이어 박미란 님 들어오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엄마 차례라 나도 같이 들어가려고 하니 어머니만 들어가시면 된다고 했다. 진료실 밖에 앉아있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니 혹시라도? 아니야. 아닐 거야. 디어마이프렌즈에서 고현정 씨가 엄마가 아파도 결국에 가장 먼저 한 걱정은 내 걱정이었다며 스스로 자기 뺨을 때리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맞다, 나도 결국 내 걱정이었다.



ㅡ보호자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갑자기 왜 나보고 들어오라고 하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로 불리는 것도 이상했는데, 그런 이상한 마음보다 앞서 심장이 쿵쾅댔다. 진료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엄마가 울기 직전 아이 얼굴로 앉아계셨다. 아까 걸어오며 엄마가 일부러 더 농담 섞인 다른 이야기를 하셨던 거구나, 나보다 엄마 본인이 더 걱정을 많이 하셨을 수도 있겠다, 더 이상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입을 떼시는 데 내 귀에 글자가 자음과 모음으로 하나 하나 떨어져 들려왔다.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내 눈을 보며 지금 인지적으로는 아직까지 괜찮으시다면서, 다만 심리적인 치료가 반드시 60-70대에 필요하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괜찮다, 는 이야기가 어찌나 반갑고 위로가 되었는지!



엄마와 나는 센터를 나섰다. 웃으며 걸어가며 후련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검사 후기를 들려주셨다.



ㅡ있지, 나한테 갑자기 채소와 과일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하는데 몇 개 이야기하고 생각이 안 나서 눈물 날 뻔했어.

ㅡ나도 생각 안 날 것 같은데? 너무 어렵다.

ㅡ엄만 다른 엄마들처럼 요리도 안 해서 더 말을 못 한 것 같아. 너도 한 번 해봐.

ㅡ으하하하 좋았어 그럼 일단 채소부터. 당근. 오이. 양파… 음 또 뭐 있지… 갑자기 생각하려니까 어렵네.

ㅡ그래그래 어렵지? 어렵다니까!

ㅡ아이 참 진짜 어렵네 엄마 애썼네!



그제야 활짝 핀 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진짜, 봄이다.





2024.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