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by 성지연


ㅡ여긴 땅의 기운이 좋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뭔 풍수지리나 지관 같은 소리냐며 늘 끌끌 대며 웃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음? 도통 왜 웃지?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은 어딜까. 사실 이건 느낌적인 느낌이라,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렵긴 하다. 땅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느낌을 분명 알 것이다. 그것은 모름지기, 그곳에 당도하면 온몸으로 체감되는 것이다. 그 기세에 압도되는 것이다. 기운이 마구마구 넘쳐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그게 매우 힘차고 거세게 좋아서 아무리 꾹 참아보려 해도 복화술로라도 ’좋..다’ 라고 말하게 되는 곳들이다.



내가 다녔던 첫 번째 대학은 지리를 전공하는 곳이었다. 고등학생 때 선택과목으로 한국지리를 하면서, 지리가 너무 재미있어 자연스레 학과까지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리는 자연지리만 있는 줄 알았지. 그렇게 다양하게 잡스럽고 폭넓고 온갖 세상만라 인간군상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이 지리인 줄은 차마 몰랐다. 인간들의 생활공간인 자연적, 인문적 모든 지표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지리라는데, 나는 오로지 ‘자연지리’에만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그래도 지리교육과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 한 가지는 한 학기에 한 번 이상, 그리고 방학 때마다 꼭 답사라는 걸 간다는 거였다. 어떤 장소들은 사진으로 보거나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곳에 가서 정말 내 두 발을 딛고, 내 두 눈으로 담고, 모든 감각을 총 동원하여, 온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아, 땅의 기운이라는 게 진짜 있구나.



특히 보통 2학기에 가는 추계답사는 전 학년이 2박 3일로 가기 마련이었는데, 과 사람들과의 과 생활이 지겹도록 많았던 지교과인들에게 답사날 밤은 또 아주 편하게 술을 먹기가 딱이었다. 술은 왜 그렇게들 많이들 마셨는지. 한 번은 밤늦게까지 대부분의 모든 과사람들이 술을 먹고 난 다음 날 아침, 화왕산이란 곳에 오른 적이 있었다.

ㅡ아오, 사전답사팀 누구야. 코스 왜 이렇게 짰냐!

ㅡ아으, 지금 나오는 땀이 땀인지, 술인지 도통 모르겠다. 개힘드네.

그렇게 높은 산도 아니었는데도 다들 술병들이 났는지 아무 말이나 씨부리는 것인지 엄청 왁자지껄 궁시렁 궁시렁들 거리며 산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제야 도착한 화왕산의 높은 곳. 그곳은 믿을 수 없게 드넓은 억새밭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억새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을 맞는 사람들은 누구든 분명 순식간에 호기로와질 것이다. 기세등등하게 뭐든 해낼 수 있을 마음이 들 게 분명하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그 억새밭에서 동기고 후배고 선배고 너나 할 것 없이 그 어떤 미운 마음도 그 어떤 분개하는 마음도 없이 말갛게 환히 웃던 얼굴들을 기억한다. 각자 얼굴은 땀으로 송골송골하고 볼따꾸들은 홍조를 띠고선,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대며 너나 할 것 없이 참 즐거워했다.



땅의 기운이 단연코 좋은 곳이 또 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절’이나 ‘서원’이다. 그것들은 아주 정말 기가 맥히게 기운이 좋은 곳에만 들어서있다. 조상님들은 참 현명하고 지혜롭기도 하시지, 병산서원의 마루에 앉아 병풍처럼 늘어져있는 산들과 그 기둥 액자 사이로 사진과 같은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온갖 좋은 에너지들은 다 이곳에 몰려드는 것만 같다. 여기서 제대로 마음잡고 공부하면 장원급제는 따놓은 당상이었겠다, 아니다 맨날 이 풍경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으려나. 절들 중에서도 의외로 해인사 장경판전. 그곳이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국가 유산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그 역사를 잘 모르고 가더라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장엄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절들은 무조건 엄청나게 좋은 곳에만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은영은 충전을 하기 위해 주말마다 명승지 관광을 하며, 오래된 절에 가서 정말 질적으로 다른 충전을 했다 했는데 그걸 읽고 나는 맞아 맞아 정말 이건 진정 맞는 일이지 무한 끄덕끄덕을 했다. 후에 나의 사랑 정세랑 작가님이 역사교육 전공이시라는 것을 알고, 흠 역시나 답사 좀 다니셨겠네, 뭘 좀 또 잘 아시는구만 했던 것도. 안은영 씨는 탑에 손가락을 대어 충전을 했다면, 나는 보통 오래된 절이나 서원, 향교 등에 있는 나무들에게서 감히 충전을 하는 편이다. 100년이 훌쩍 넘어 기둥이 굵은 나무들은 아주 잠시만 손을 대고 있어도 한낱 인간으로서 겸허해지며 가슴에 맺힌 몇 개의 매듭들이 스르륵 풀어지게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전주 남천교 주변에 오래도록 아름답게 드리워져있었음에도 굳이 불필요하게 잘라져 간 버드나무들, 인간들이 팔을 벌려도 안을 수 없을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가득했던 가리왕산, 도로를 2차로에서 4차로로 늘리겠다며 굳이 나무 수백 그루를 자른 제주 비자림로. 최근에는 서울 남산에 뜬금없이 갑자기 짓겠다는 곤돌라까지. 남산의 환경을 망치는 곤돌라 사업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생태환경 회복에 투입하겠다는 아주 어처구니없는 발언까지도. 그것이 개발이라는 이유로 어떤 무한의 기운과 가늠할 수 없는 가치를 영영 앗아가는지 모를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인간들은 참 잠시 빌려 쓰고 받아쓰기만 하는 주제에, 경우가 없고, 무례하며 뻔뻔스럽기가 그지없고, 참으로 이 땅에 아무짝에 도움이 안 된다.



단순히 배산임수라고 모든 땅이 좋은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물의 흐름이나 바람결들을 봐야 하는데, 치고 들어가는 곳과 무언가 쌓이는 곳은 기운이 각각 다르다. 지형적으로 튀어나와 있거나 물, 바람 등에 세차게 부딪치는 곳들은 그곳에 당도한 사람까지도 격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극적이거나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들을 벼랑, 절벽, 파도가 세게 치는 바닷가 등에서 촬영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그곳에 직접 가서 연기를 한 배우분들에게 느껴졌을 영향과, 이를 관람하는 관객에게도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영상으로만 봐도 그럴진데, 실제로 그곳에 가면 또 얼마나 그럴까.



고요하게 차분하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차곡차곡 쌓여지거나 슬며시 흘려보내고 싶은 기분이라면, 철원의 용암대지나 순천만 습지 같은 곳에 가야 한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시공간의 영겁들이 그곳에 쌓여서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다. 순천은 특히 내가 애정하는 장소로, 퇴적되어 있는 갯벌과 그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바닷물의 곡선들. 오목하게 살짝 솟아올라 펼쳐져있는 둥그런 원들, 여러 색들이 가득한 하늘로 날아오르는 철새들이 아주 장관인 곳이다. 그리고 순천은 꼭 운동화를 신고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좋다. 몇 번을 가도 어떤 날씨에도 어느 시간대에 가도 그런 곳에 가서는 동그라미와 유려한 곡선들이 뿜어져 내는 음악 같은 파장에 맞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럼 서울에서 땅이 기운이 가장 좋은 곳은 어디냐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도, 늘 생각하는 주제이기에 바로 아주 신나서 당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광화문이다. 인왕선과 북악산, 멀리서는 북한산에서까지 너울대며 호랑이처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 호쾌하게 느껴지는 곳. 멋들어진 산자락의 선들과 한옥 지붕선이 장엄하게 느껴지는 곳. 광화문 광장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표정을 봐도 알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그곳만의 기운이 느껴진다. 당연지사, 나는 답답하고 힘들거나 가슴이 미어질 때면 낮이고 밤이고 광화문에 자주 간다. 서울러들에게는 아니겠지만, 경기도민에게 광화문은 꽤 마음을 먹고 가야만 하는 곳이다. 빨간 좌석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멀고, 너르고, 광활한 곳. 그곳에 가서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산자락을 보고 오거나, 시간이 된다면 경복궁을 두어 바퀴 돌고 오는 것만도 충전은 금세 된다.



ㅡ지연아 너 또 광화문이냐? 너처럼 광화문에 미친 자들이 좀 있더라.

어느 날 광화문을 걷는데 통화를 하던 친구가 말해줬다.

ㅡ화의 기운이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을 좋아한대.

친구는 놀리듯 반진심인 듯 웃으며 말했지만, 화의 기운이고 뭐고, 아니 내가 실제로 화가 많기도 하지만 광화문은 진짜로 기운이 좋다. 미국대사관이 그 금싸라기 땅에 딱 들어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지 않나. 과학이라니까.

ㅡ땅의 기운이라는 게 진짜 있다니까…



이 글을 쓰다 보니 땅의 기운이 좋은 곳에 간지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수묵화 같은 선들이 그려내는 산자락을 오래도록 보다 오고 싶다. 헉헉 거리며 오른 곳에서 바람이 내 몸을 관통해서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를 좀 느끼고 오고 싶다. 와다다다 자전거 바퀴를 굴려 섬 한 바퀴를 돌고 벼랑 끝에 서서 그 너머를 내려다보다 오고 싶다. 파도가 거세고 바람이 나부끼는 곳에 가서 목청껏 소리를 좀 지르고 와도 좋겠다. 어느 서원 마루 끄트머리에 앉아 멍을 좀 때리거나 깊은 절의 구석구석을 사부작사부작 걸어 다니다, 오래된 나무에 손을 얹고선 이제야 숨이 좀 쉬어지는 듯하고선 아이구 아이구 감사합니다 하고 싶다.



그렇게 내가 넘치도록 얻은 기운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수백 장의 사진에 담는 것이 아니라 내 온몸 가득 온 맘 가득 담아 오고 싶다. 하루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그곳이 높은 곳이든 깊은 곳이든 어느 끝자락이든 한가운데든 내 발로 딛고 서있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다니고, 더 힘껏 느끼고 싶다. 그래서 역시 또 와도 땅의 기운이 역시나 좋은 곳, 새롭게 발견한 땅의 기운이 좋은 곳 리스트에 목록이 얹어지며 애정하는 이들에게 추천도 해주고 싶다. 진지하게 진심으로 진실되게.

ㅡ와.. 여기 땅의 기운이 진짜 좋다. 이 기운 좀 한가득 잡솨봐, 느껴봐.






글, 사진 | 성지연 2024.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