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인사! 아니 그냥 하이파이브 하자! 와, 근데 손에 땀이 엄청 많구나.“
<인사이드 아웃2>에서 기쁨이가 당황이를 처음 만나 악수를 청하려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건넨 대사다. 사람들에겐 그냥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씬이었는데,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손에 땀이 많았다. 글씨를 쓸 때면 종이가 젖었고, 바느질이라도 할라치면 천이 축축해졌다. 색종이를 접다 보면 종이가 젖어 누더기가 됐고, 시험시간 OMR카드에 찍은 검은 점들은 내 손과 맞닿으면 수묵화처럼 번지기 일쑤였다. 누군가와 갑자기 손을 잡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당황스러울 때가 잦았다. 가끔 버스 안에서 기둥을 꽉 잡고 있으면 표면을 따라 물방울들이 주루룩 타고 내려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내 마음은 굵은 소나기 빗금이 죽죽 그어지곤 했다.
학창 시절 통학길에는 늘 앞문과 뒷문의 계단까지 사람들로 꽉 차 서로 밀치고 밀리는 버스를 탔다. 그런 참에 손잡이나 기둥이라도 잡지 않으면 여기저기 휩쓸리거나 넘어지기 마련이었다.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여러 손과 손들이 테트리스를 하듯 기둥을 잡아야만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기둥의 가장 아래쪽을 잡으려 애썼다. 내 손 바로 아래 있는 사람의 손에 내 손에서 흐르는 땀이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너무나 많은 손들이 얽혀있어 잡을 곳이 도통 없을 땐 할 수 없이 버스 위쪽 기둥을 잡을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떤 날은 내 손 아래쪽에 있던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버스에서 물이 새는 줄 알고 천장을 자꾸 올려다보았던 것도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열일곱 살 성손땀은 손잡이고 기둥이고 뭐고 내가 뭘 하겠다고 이걸 꽉 부여잡았나, 버스 창문 밖 저 세상 밖으로 확 고꾸라져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성당 미사 중에는 가장 곤혹스럽던 순간이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양 옆의 사람들과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었다. 서로 주변의 옆 사람들과 평화를 빌어주기 직전 기도문을 성가로 부르는 시간. 에고 죄송해요 제가 손에 땀이 좀 많이 나서, 하고 손잡기를 거절하기도 하고. 때로 땀이 조금이라도 덜 나는 것 같으면 얼른 손을 잡아보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그런 한 때의 바싹 마르고 건조한 손은 금방 실패로 돌아갔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평화를 빌기 직전 손에 손을 잡고 부르는 성스러운 시간에, 내 마음속엔 오직 ‘손, 손, 손’ 그저 제발 손으로만 가득 찼다.
언젠가는 내 옆에, 내가 좋아하던 오빠가 바로 옆에 서서 미사를 드리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오빠 옆에 있으면 좋긴 한데, 손 잡는 것도 좋은데, 손 잡고 노래 부르는 그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가슴이 더욱더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이 땀은 참으로 더 모진 게 땀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물방울이 더 송글송글 더 많이 맺힌다. 긴장되거나 떨리는 순간에는 아주 폭포수처럼 마구 쏟아진다. 아 안 되는데, 어린 마음에 손을 잡지 말자고 하면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것으로 알까 봐, 그럴 때마다 번번이 그 오빠한테 한 손가락만 걸고 부르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 짓던 그이의 갸우뚱한 표정도.
아아,
손에 땀이 자주,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무진장 난다는 것은 살면서 참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피곤하게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손으로 하는 섬세한 일들은 대부분 싫었다. 물론 지금도 내켜하지 않는다. 색종이 접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기, 구슬을 세밀히 꿰는 비즈 공예, 바싹 말라 보송보송해진 빨랫감 개키기, 로션류 손바닥에 바르고 문지르기, 제한 시간 안에 빠르게 논술 쓰기 등.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에는 필수적으로 늘 약간 도톰한 손수건을 꼭 챙겨야만 했다. 손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싫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한 자리에서 축축한 손을 보이는 것도 가리고 싶을 적이 많았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는 순간이나 손과 손이 맞닿는 그런 아름다운 시간에 나는 자주 쩔쩔매거나, 겸연쩍어하거나, 미안해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거나 관심도 없을 수 있는 ‘손’이 내 마음속에서는 아주 커다랗고 커다란 왕손으로 차지했달까. 한때는 신경을 절제하는 수술에 대해 찾아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받아들여야 했다. 유전적으로 나는 ‘다한증’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엄마는 발에 땀이, 이모할머니는 등에 땀이, 그리고 나에겐 주로 손이었다. 나이가 들며 좀 더 나아지기도 하고, 더 많은 신체 부위로 번지기 시작하기도 한다 했다. 어쨌든 손땀과 나는 함께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어느 날은 TV프로그램에서 겨드랑이에 땀이 나는 사람을 웃음 소재로 삼고 사람들이 와하하하하 웃을 때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웃겨? 땀이 웃기냐고? 때로는 현재 내 안의 메인 감정으로 여겨지는 버럭이를 앞세워, 그런 사람들에게 김장 담글 때 쓰는 커다란 새빨간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끼얹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소리 지르고 싶었다. 아니 진짜 저게 웃기냐고.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서 안 그래도 기쁨이의 머릿속 가득한 꽃밭 상태나 다른 감정들을 대하는 여러 태도들이 아주 무례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저 대사까지 약간 찡그리며 면박을 주듯 빙글거리는 비언어적 표현과 함께, 그것도 손을 탁탁 털어대며 하니 화가 났다. 그 말을 들은 당황이가 으아아앙 후드를 뒤집어쓰고 뒤돌아 웅크리는 것으로 그 씬은 아주 짧게 지나갔다. 그러나 때로 어떤 찰나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지나가지 않고 아주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다.
어떤 이는 그럴 수 있다. 땀이 많은 것을 있는 그대로 땀이 많다 하는 게 뭐 어떠냐고. 땀이 많은 손에 내 손이 닿는 게 싫다는 데 뭐 어쩌라고. 땀이 많이 나는 것을 보고 웃겨서 하하하하 웃었는데 그건 또 뭐 별거 아니지 않냐고. 아니, 똑같은 말을 해도 중요한 건 그 뉘앙스와 태도다. 다른 사람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 태어나서부터 이미 그렇게 존재해 버린 것에 대해, 그렇게 싫다고 표현하는 게, 그렇게 비웃어대는 게, 그게 언어적으로 하든 비언어적으로 하든 그 자체가 이미 “차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가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 없애고 싶어도 네가 도저히 없앨 수 없는 것, 그 누구보다 네 자체가 이미 마음속에 가득 도사리고 있는 것을, 싫다고 말해줄까, 인상을 찌그려줄까? 아니면 웃기다고 대놓고 웃어줄까? 무엇보다 인간이란 참 뭐에 대해 웃는가, 그리고 웃지 않는가가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간혹 그런 사람들도 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성가를 불러야 하는 시간에, 아 또 이 시간이네 세상 송구한 얼굴로 에구 죄송하지만 제가 손에 땀이 좀 많이 나서요, 하면은 ’에이 뭘, 괜찮아요.’ 하며 손을 활짝 더 내미는 사람. ‘저도 가끔 땀 잘 나는걸요‘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순간을 지나가게 해주는 사람. 손을 잡아야만 하는 순간에 또 손가락 하나만 겨우 걸자고 내민 내게, 씨익 웃으며 손 전체를 확 잡아버리는 사람. 그리고 ‘전 손이 건조한 편이라 촉촉한 손이 훨씬 좋아요,’ 라고까지 말해주며 되려 손을 더 꽉 세게 잡기까지 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정녕 어떤 것들을 해주었는지, 그들은 아마 영영 모를 것이다.
손과 손에서 그 이상으로 가슴까지 지리릿 저며드는 것. 마음속 아주 아주 가장 깊은 곳 어딘가에 있는 습기 가득한 축축한 땅바닥을 가만히 다독다독 다독여주는 것. 그 땅 위로 무언가 갓 피어난 샛연두잎마저 쏙 올라올 듯한 것. 울컥 차올라온 표면 위로 아무렇지 않은 듯, 다 괜찮다는 듯 시원하게 선선히 말려주는 바람까지 불어다 주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런 손이라도 손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젖어있든 말라있든 축축하든 버석하든 쭈굴하든 반듯하든 어떤 모양이든 그냥 손 자체가 있는 것이 꽤 괜찮은, 아니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구나’ 라고까지 느껴지게 하는 그런 것.
이 글을 쓰기까지도 그랬다. 자꾸만 예기치 않게 축축해지며 사람을 당황시키는 이 손에 대해 언젠가 한 번은 꼭 쓰고 싶었는데, 또 정말 끝까지 내 스스로에게 손사래 치며 쓰기 싫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쩌면 이 남루하고 쪼그라져있는 한 구석탱이의 마음을 담은 글을 진심으로 읽어줄 사람들은, 적어도 이 글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무어라도 말해 줄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일 것임을.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그런 사람들 덕에 세상이 아직은 이렇게 굴러가고 있음을 나는 믿기에. 그래서 써봤다. 썼다. 그리고 다 쓰고 난 지금은, 쓰길 잘했다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문득 깨달았다. 이 글을 쓰게 한 것도 나의 ‘손’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만나게 해주는 것, 깊게 알아보게 해 주고, 조금이라도 더 가닿게 해주는 것도 고맙게도 ‘손’이다. 그러니,
손이 있어 나는 좋다.
글 ㅣ 성지연, 2024.10.22
그림 ㅣ 이수지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