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하고 숨이 막히는 뜨거운 공기.
수완나품 공항에 내려 그랩을 타러 가는 길 처음 마신 방콕 공기 느낌이다. 우기의 끝물인 10월 말 방콕의 더위는 땀이 많은 나에게는 아주 매운맛이었다.
대부분의 관광 일정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커피를 멀리하던 내가 방콕에서 만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고 살았다,
걸어야만 하는 일정 중간 한줄기 세븐일레븐은 더위를 잠깐 가시게 하는 크나큰 은총이었다.
그렇게 더위와 싸우며 '방콕에 왔으니 여기는 가야지'라고 간 명소들은 기대와는 달랐다.
유명하다던 방콕의 야시장은 한국의 플리마켓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더위를 피해 들렀던 여러 쇼핑몰은 한국에서 자주 가던 IFC몰과 비슷했다. 꼭 가봐야 한다던 왕궁의 모습은 비가 와서였던지 회색 건물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나마 기대만큼 좋았던 건 왓 아룬의 야경 정도다.
'내가 이 고생을 하려고 방콕에 왔나'
하루에도 몇 번씩 했던 생각이다.
아주 더운 여름, 더운 여름, 여름.
정도만 다르지 1년 내내 더운 방콕에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방콕의 즐거움은 꽤 여러 가지다.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깔끔한 고급 호텔도 방콕에서는 제법 저렴해 도전할 만했고, 여러 샵을 돌아다니며 마사지사의 스킬을 비교해 보던 재미가 있는 마사지는 여행의 꽃이었다.
저렴한 곳을 찾아 들어간 음식점의 메뉴가 입맛에 딱 맞을 때의 즐거움도 있었으며, 카오산 로드의 무서운 분위기를 피해 들어갔던 람부뜨리 로드의 분위기 있는 맥주집도 기억에 남는다.
이 모든 즐거움이 더위 뒤에 숨어있던 것이다.
방콕에서의 마지막 날, 현재 기온 32도.
방콕의 온도는 소주의 도수와 같아 보인다.
독한 소주를 한 잔 하고 먹는 안주가 더욱 맛있듯이,
방콕의 더위는 방콕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한다.
독한 더위 뒤에 숨은 맛있는 즐거움
떠나기 전 그 매력을 알아 다행이다.
그래서 더움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또 올 거냐고?
마사지에 물러진 발바닥이 굳어갈 때 즘 잠깐 생각 정도는 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