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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된 노래는 인정하지 않는 너와 나에게

너드커넥션의 ‘그대만 있다면’을 들으며..

by 창원마술사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는 항상 운전은 내 몫, 음악 선곡은 아내 몫이다. 음악 선곡 또한 조수석에 앉은 조수의 의무이기 때문에, 아내는 늘 고심해야 한다. 본인이 듣고 싶은 음악을 틀고 싶지만 운전자의 취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운행의 조수석'이 아닌, '선곡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아내의 두뇌와 손가락은 운전 시에 나만큼 바쁘다.


깊은 고민에 따른 선곡에 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 '너드커넥션'의 '그대만 있다면'이라는 노래란다. 전주를 듣고 들었던 반가운 마음도 잠시, 예상치 못 한 보컬 음성에 누가 마치 깜빡이도 키지 않고 끼어든 것처럼 운전에 집중하던 나는 눈살을 찌푸린다.


"이거 뭐야, 누구야"

"너드 커넥션"

"걔들이 누군데"

"이거 부른 애들"

"아닌데, 이거 부른 애들은 얘들이 아닌데"


내가 알던 멜로디를 부른 가수들은 너드 어쩌고가 아닌 러브홀릭이란 말이다.

부드러운 멜로디에 어울리던 청량한 여성 보컬의 목소리가 아닌, 기교를 부린듯한 익숙하지 않은 외간 남자의 목소리가 멜로디에 얹어질 때마다 언짢은 눈가 주름이 늘어났다.

"OO아, 이건 원곡이 아니야. 오리지널을 들어야지"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외간 남자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러브홀릭'의 원곡을 틀자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후 TV로 유튜브를 서칭 하던 어느 날, 또 다른 외간 남자들이 나만의 명곡 '그대만 있다면'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쟤들은 또 누군가라는 생각으로 재생시키자 화면에 뜬 사람들은 평면 TV가 아닌 브라운관에 있을 법한 남자 둘이었다. '일기예보'라는 그들이 부르는 '그대만 있다면'은 내가 알던 청량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아닌 좀 더 투박하고 진솔한 노래였다.


‘내가 생각하던 오리지널도 오리지널이 아니었구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노래가 '근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나를 마치 혼내는 듯 들렸다.

투박한 창법에 배경 연주도 제법 단조로운 '진짜 원곡'을 반복해서 듣던 나는 나 자신을 가스라이팅 했다.


'역시 오리지널이 좋구먼'


내 마음속 원래 원곡이었던 '러브홀릭 Ver_그대만 있다면'의 자리는 진짜 원곡인 '일기예보 Ver_그대만 있다면'이 차지했다. 투박한 창법도 진솔되게 느껴졌고, 단순한 배경 연주도 담백하게 느껴졌다. 자글자글한 원곡의 음질 또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일기예보 버전의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러브홀릭 버전의 노래가 듣고 싶어질 때마다, '아니, 러브홀릭 버전도 리메이크야. 이게 근본이야' 하면서 일부러 듣고 싶은 마음을 멀리하던 중, 그래도 내 인생 제일 처음 들었던 원곡은 러브홀릭 버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하며 들었던,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틀었던, 직장인이 되어 운전하며 흥얼거렸던 그 노래는 일기예보가 아니라 러브홀릭이 부른 노래였다.


러브홀릭이 부른 버전을 틀었다.

호소력 짙은 청량한 목소리, 웅장한 배경 연주, 감정이 듬뿍 들어가 있는!

바로 내가 듣던 그 노래였다.


오리지널도 중요하지만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은 나다.

내가 생각하는 오리지널이 원래 오리지널이 아니었다면 어떠리.

리메이크였더라도 '오로지 날' 위한 음악이었다면 오리지널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래서 러브홀릭 버전과 일기예보 버전을 번갈아가며 듣곤 한다.

(너드커넥션 버전은 미안하지만 아직 용인하지 않았다.)



_근본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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