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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 Sung Dec 27. 2017

영화 <1987> 감상평

1983년생이 영화 <1987>에게...

 


 1987년, 난 5살이었다. 그렇다. 난 1983년생이다. 87년에 대한민국은 민주화 운동이 대단했다고 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6월 민주항쟁, 직선제 개헌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90년대 중반이 돼서야 알았다. 사실 지금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 역사 공부할 때 책에서 몇 줄 본 게 전부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도 이런 사건들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해주신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편하게 살고 있다. 민주주의가 일상에 젖어들었기에 민주화, 자유화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그냥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그런 무심한 1983년생이 영화 <1987>을 봤다. 교과서에서 무미건조한 몇 줄의 글로 보다가 2시간짜리 영화로 보니 느낌이 확 온다. 그래,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이렇게 노력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고, 헌법에 의해 죄가 있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것이다. 산소가 너무 흔해서 산소의 소중함을 모르듯, 1983년생에게 민주주의는 산소와 같아서 그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 민주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 것을 1983년생인 나는 몰랐던 것이다.


  박종철이 내 아들이었으면 어땠을까?  박종철 아버지가 아들의 뼈가루를 강에 뿌리고 절규하는데 눈물이 났다. 30살 넘어 자식을 낳고 기르다 보니 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장면이 나오면 여지없이 눈물이 흐른다. 이렇듯 ‘가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이고 지켜야 되는 존재다.  

  박종철을 고문으로 죽인 조반장도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같이 고문한 동료들을 자백하려고 하지만 ‘가족’을 위협하겠다는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식)의 협박에 굴복한다. 그렇듯 ‘가족’은 소중하기에 사람을 협박해서 회유할 때 자주 이용된다. ‘빨갱이’를 만들어내는 박처장도 자기 눈앞에서 가족이 죽는 걸 목격한다. 그는 그렇게 빨갱이를 잡는 괴물이 되었고, 죄 없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만들어 간다.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이 조카 연희(김태리)에게 김정남(설경구)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는 걸 부탁하자 연희가 이런 말을 한다.

  “삼촌은 왜 그렇게 잘났어. 가족들 생각은 안 해요?”

  인간은 대의를 앞두고 가족 앞에서 무너진다. 가족이 소중한 사람일수록 잃을게 많아지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진리인데 새삼 다시 깨닫는다. 그렇게 마음속으로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욕하기도 어렵다.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의 앞에서 가족을 버릴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


  지난 8월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을 때나 이번 <1987>이나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보다 더 1980년대 있었던 민주화 항쟁의 퍼즐이 맞춰지며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화를 위해 분노한 시민들을 국가 권력이 막을 수 없다. 영화 말미에 연희가 버스 위에서 시청 앞에 운집한 시민들을 바라보는데 마음속이 벅차올랐다. 그러면서 작년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촛불집회도 정말 민주화를 위한 혁명이었다.


  1983년생에게 1987년은 기억나지도 않는 시절이었다. 이렇게 30대 중반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1987년에 있었던 사건들이 마음에 확 와 닿는다. 나는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내 자식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민주주의를 지켜가며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길 꿈꾼다. 민주화에 대해 무지한 1983년생이 영화 <1987>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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