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노동, 목소리> 외
요즘 다시 팟캐스트를 꾸준히 듣고 있다. 저녁 산책 때면 꼭 30분씩, 한 시간씩 귀에 이어폰을 꽂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질 좋은 콘텐츠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정지우의 ‘뼈가 있는 책’도 빠짐없이 들어야 하고, 얼마 전에 근 3개월 만에 복귀한 ‘뫼비우스의 띠지’도 들어야 한다. ‘벙커1’에 올라오는 강연 중 놓칠 수 없는 흥미로운 강연도 많다. ‘지대넓얕’ 역시 채사장이 메인이 되는 에피소드는 무조건 듣는다.
하지만 요즘 가장 애정 하는 팟캐스트는 단연 ‘빨책’. 즉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다. 나는 원래 이 팟캐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책과 독서 관련 팟캐스트 중 단연 1위라는 그 명성이 뭔가 배가 아프고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고, 둘째, 위즈덤하우스라는 출판계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굳이 나까지 들어줘야겠느냐는 심보 때문이었다. 사실 둘 모두 각각 독자로서, 출판 노동자로서 남 잘 되는 꼴 보기 싫다는 못된 자격지심이었다.
그런 내가 이 팟캐스트에 열광하며 지난 에피소드를 조금씩 찾아 듣게 된 이유는 순전히 이기호 때문이다. 아니, 그의 책 <김 박사는 누구인가?> 때문이다. 우연히 빨책 팟캐스트 지난 에피소드를 뒤적거리다가 이기호 작가가 게스트로 나온 특집 방송(모든 에피소드가 특집이긴 하지만)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의 ‘최애캐(최고로 애정 하는 캐릭터)’ 이기호 작가가 게스트로 나왔다니! 즉시 다운로드해 그 에피소드의 1편부터 듣기 시작했다.
진행자 이동진은 원래 영화평론가지만, 영화와 책(특히 소설)은 사실 동류 아니던가. 스토리와 인물 그리고 몇 가지 우발적인 사고 모이면 영화 혹은 책이 되는 것이니까. 이 에피소드를 들으며 내가 느낀 것은 이동진이라는 진행자는 책과 저자의 숨소리만으로도, 혹은 찰나의 방귀소리만으로도 능히 한 시간을 ‘이빨’을 털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뭐 이런 것이었다. 거기에 옆에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하는 김중혁 작가의 드립력이란. 혼자 낄낄 거리면서 세 남자(이기호, 이동진, 김중혁)의 만담을 느긋하게 들었다. 온 우주가 가만히 멈춘 채 이런 나의 하릴없음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이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에피소드, <비행운> 에피소드 그리고 황인찬 시인 편까지 전부 다운로드해 스마트폰에 저장해두었다. 그저께 산책 때는 황인찬 시인이 게스트로 나온 에피소드를 들었다. 총 2부작이었고 1부를 다 듣고 나머지 2부의 절반 정도를 들었다. 역시 재밌었다. 시인의 이력은 특이한데, 내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그가 아이돌, 그것도 남자 아이돌(정확히 말하자면 엑소라는 그룹의 디오라는 멤버)을 덕질 하는 시인이라는 점이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을 덕질 하는 20대 후반의 젊디젊은 남자 시인이라니. 조금 충격적이었고 몹시 신선했다. 왜냐하면 29살의 나 역시 엑소, BTS 등등 남아돌을 덕질 하는 덕후였으니까! 물론 엑소 디오 역시 나의 최애캐 중 1인(고로 황인찬과 나는 사랑의 경쟁자).
약 두 시간 동안 귀 기울여 들은 황인찬 시인(과 이동진, 김중혁)의 육성에는 충분히 나를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시와 작품과 책과 글을 대하는 태도 등에 공감했다. 시인은 생계를 위해 작품 활동 외에도 누군가들에게 시창작론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의 유일한 교육관이 있다면 그것은 ‘일단 쓰시라’라는 것이라고 한다. 시든 소설이든 무슨 글이든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 작품론을 세우는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줄여나가는 것, 이것이 작품 쓰기의 기본 전략이고 심화 전략이라고 했다. 전부 동의한다.
나는 조만간 그의 두 시집 <구관조 씻기기>와 <희지의 세계>를 사서 읽을 작정이다. 전자의 책은 나와는 구면이었다. 실물을 본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나는 황인찬 시인 공저라로 참여한 <22세기 사어 수집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 적혀 있는 황인찬 시인의 프로필에 <구관조 씻기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이렇게 젊은 사람이 시인이라고?’ 하고 질투 어린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시집 제목도 요상하군’ 뭐 이런 근거 없는 시비를 걸었다는 것은 적지 않겠다. <희지의 세계>라는 시집은 원래 ‘미지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뻔했다. ‘미지의 세계’는 원래 만화 제목인데 그 만화를 너무 재밌게 읽은 시인이 아예 자신의 시집까지 그 제목을 붙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제목을 잘못 기억해서 ‘희지의 세계’라는 엉뚱한 제목의 시집이 탄생했다. 시인다운 독창적인 실수다. 하도 궁금해서 그 문제의 <희지의 세계>라는 만화를 잠깐 봤는데 가히 걸작이다.
‘출판문화상’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일보에 매년 ‘좋은 책’을 분야별로 선정해 상을 주는 행사인데, 벌써 올해가 56회라고 한다. 내가 출판계에 입문한 지 올해가 3년인데, 그동안 출판노동자로서 접했던 출판문화상에 관한 소식은 재작년의 것과 작년의 것이 전부였다. 그때만 해도(지금도 마찬가지임) 조그만 출판사의 직원으로서 남의 책이 선정된 소식을 들으며 질투와 부러움만 느꼈지만, 사실 독자로서는 어떤 책일지 무슨 내용일지 궁금함과 기대감이 더 먼저 차오른다. 2015년도 출판문화상 분야별 최종 후보작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약간의 기대감(혹시 내가 편집한 책도?)을 품고 기사를 클릭했다. 역시 없었지만, 아무튼 쟁쟁한 후보작들이었다.
편집 부문
1961(새봄출판사),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내가 제일 잘한 일(샨티), 다이버, 제주 바다를 걷다(지성사), 서울 속 건축(안그라픽스), 새 도감(보리),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돌베개), 우주 레시피(오르트), 자기록(나의 시간),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한티재)
학술 부문
남자의 품격(책세상), 동아시아의 부엌(눌와),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푸른역사), 빈곤의 연대기(갈라파고스),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천년의상상),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 이론 강의,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 한글 활자의 탄생(홍시), 헌 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
교양 부문
1970, 박정희 모더니즘(천년의상상), 검색되지 않을 자유(알마), 김대식의 빅퀘스천(동아시아), 노동여지도(알마), 뼈가 들려준 이야기(푸른숲), 세상 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 사이언스 칵테일(MID)(현암사),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우리 역사는 깊다(푸른역사)
<1961>은 매우 독특한 실험적인 책이다. 이 책은 내가 지난 와우북페스티벌 때 새봄출판사 부스에서 우연히 접한 책이었는데, 제목은 같은 표지가 다른 책들이 몇 권 놓여 있어서 조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부스 담당자가 친절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줬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무튼 하나의 책에 여러 종류의 표지를 달아 독자에 선택권을 줬다. 그리고 책이 대본 형식인가 그랬는데, 그런 형식적인 특성을 활용해 성우를 섭외해 오디오북도 만들었다. 이런 후보작들을 보면, 일단 독자로서 뿌듯하고 어서 서가에서 저 책들을 찾아 읽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철없는 질투 때문일까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 출판사 책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까? 한 부문에 같은 출판사의 책이 두 종이나 후보로 올랐네? 혹시 이미 상의 그 출판사의 이름값만으로 정해진 것이 아닐까? 이런 찌질한 투정을 뒤로 하고, 올해 후보작을 찾아보면서 내친김에 지난 후보작, 수상작 들도 찾아봤다. 그중 내 관심도서 목록에 오른 책들은 다음과 같다.
현산어보를 찾아서 1~5, 빈 서판, 우주의 구조,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 마을로 간 한국전쟁, 한국의 전통색, 밀양을 살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 외면하지 않을 권리, 기획된 가족, 온도계의 철학, 간도특설대, 욕망의 코카콜라,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시민의 탄생.
요즘 브런치를 열심히 하고 있다. 언젠가 작가가 되겠다, 라는 가소로운 욕심이 가장 큰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말 그대로 작가를 찾기 위함이다. 책으로 내도 좋을 멋진 글을 꾸준히 쓰는 작가들. 꽤 있다. 좀 더 찾아보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재밌는 그림(혹은 한 컷 만화, 또는 일상만평)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유저 네임은 ‘윤직원’. 채만식의 <태평천하>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노인 이름이다. 혹시 이 대사를 기억하시는지? “우리 가족 빼고 다 망해라!” 바로 이 망언의 주인공 되시겠다.
물론 나는 윤직원의 저 바람을 단순한 망언이라고는 생가하지 않는다. 아무튼 채만식이라는 오래된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을 모티브로 삼아 자신의 유저 네임을 지은 윤직원이라는 작가가 무척 흥미로웠다. 그의 한 줄 소개에도 ‘태평천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 채만식의 작품에서 자신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온 것 같다. 아무튼 그 덕분에 나는 윤직원이라는 노인의 멋진 대사(어쩌면 지금의 내 심리를 정확히 대변해주는 대사)와 <태평천하>라는 몹시 흥미로운 소설을 알게 되었다. 나의 ‘도서목록’에 겟.
지난주에는 소설 두 권을 완독 했다.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와 장강명의 <호모도미난스>. 뿌듯하긴 하지만 참으로 대책 없이 시작한 독서였다. 당장 이번에 돌아오는 토요일에 독서회에서 다룰 두 권의 책 <눈먼 자들의 도시>, <음식의 언어>는 내버려두고 뜬금없이 두 편의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이기호가 게스트로 나온 팟캐스트를 들으면 안 되는 거였다. 이동진의 기가 막히는 소개와 분석 덕분에 과연 그의 추리가 맞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김 박사는 누구인가>를 서가에서 찾아내 읽기 시작했다. <호모도미난스>는 순전히 장강명이라는 저자의 이름값만으로 충동적으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전자의 책을 읽으면서는 단편소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소설은 단편집이었는데, 나처럼 이해력이 낮고 문학적 감수성이 바닥인 독자에게는 오히려 장편소설보다 이런 단편소설 하나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복기하고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아내 접점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훨씬 더 재밌고 유익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장편소설을 읽으면서, 그 장대한 서사를 긴 호흡으로 따라가며 이야기의 매력에 심취한 적이 많았지만, 정작 종반부에 갈수록 전반부의 내용이나 감정 등이 몸에서 휘발되는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제길 내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책 제목만 보고 알아맞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차라리 나 같은(?) 독자는 그냥 단편을 읽고 상대적으로 짧은 서사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훨씬 집중도 높은 독서가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조만 이기호나 김애란의 단편을 통해 그 실험을 해볼 참이다.
<호모도미난스>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청소년을 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를 꿈꾸는 고등학생이 써도 그보단 잘 썼을 것이다. 주인공의 절박한 사명감에는 도무지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고, 극 중 중요 인물들의 극단적인 선택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이야기의 개연성 역시 단순하고 조악했다. ‘정신조종능력’이라는 과감하고 정치적인 소재를 갖고도 원 재료의 충분한 맛을 살려주기는커녕 이상한 잡탕 같은 요리를 만들어냈다. 참, 먹을 수 없는 요리이니 요리라고도 부를 수 없으려나? 내가 이런 악랄한 비난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는 저자가 장강명이니까, 그가 <표백>을 지은 작가였으니까. <표백>에 비하면 정말 이 소설은, 파리의 똥만도 못한 소설이다. 어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나머지 소설도 <호모도미난스>와 같다면, <표백>은 그의 일생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매우 거대한 예외일 것이다.
약 한 달 전쯤 주문해 받은 책 <출판, 노동, 목소리>를 그저께부터 읽고 있다. 총 8명의 저자가 각각 자신이 거쳐 온, 그리고 지금 처한 출판노동의 현실을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다. 출판사 입사를 준비하면서, 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나름 출판과 편집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물론 이 책도 그런 책 읽기의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출판’이나 ‘편집’만을 다룬 이전의 고상한 책들과는 완전히 다른 궤를 달린다. 이 책은 출판의 ‘노동’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첫 책이다.
소위 편집자의 교과서라고 뻗대지도 않고(편집자란 무엇인가), 출판은 아름답고 그 안에서 분투하는 편집자는 더 아름답다고 허언을 늘어놓지도 않고 있으며(편집자 분투기),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소통할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다는 빛 좋은 개살구 식의 거짓말을 늘어놓지도 않는다(‘책으로~’ 시리즈). 출판편집자들이 ‘출판 노동’에 대해선 쏙 빼놓고 말하는 출판편집의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출판편집자가 말하는 출판편집의 세계).
지금 내가 대놓고 ‘깐’ 앞의 책들은 지금의 나(편집자로서의 나)를 만든, 혹은 그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고마운 책들이지만, 그래도 그 책들의 숱한 저자 분들께서 출판을 그렇게 미화하고 책과 독서는 그렇게 사모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출판의 노동, 그리고 그 안의 노동자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꺼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리라. 아무튼 이 책을 다 읽으면 간단하게나마 리뷰를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