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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Apr 30. 2017

내 삶 = 내 월급 + 엄마 월급(下)

어느 큐브세대의 미래 03

(上편에 이어)


예더만: 그렇지만 정말 시간이 별로 없어요.
어머니: 내 아들아, 너를 봐서 기쁘다. 이 모든 세속적인 업무들 때문에 나를 위해서 거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시간 추적자들, 341쪽(부유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극 中)


3.


비록 내가 망상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재무 플랜을 짜놓고 거기에 맞춰 앞으로 2년간 한 달에 저금해야 할 돈의 액수를 산출해냈다고 할지라도, 나는 비로소 내가 받는 월급의 ‘진짜 크기’를 알게 되었고, ‘땅 파서 100원짜리 동전 찾기도 힘들다’는 어른들의 인색한 격언이 엄살이 아니었음을 간단하게 깨닫게 되었다. 집을 사기 위해선 목돈이 필요하고 그 목돈을 모으는 일은 결국 나의 한 달 급여(혹은 자영업자에게는 한 달 순수익)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는 일이라는 세상의 법칙을 깨닫고 만 것이다. 나는 메모지에 이 어설픈 숫자들을 빼곡히 채운 뒤 씀씀이가 약간 줄었다. 아마도 앞으로 좀 더 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빼놓은 것이 있다. 나는 임대 아파트에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엄마는 평일에 나와 같이 일을 하는데, 나는 아침에 김포에서 파주로 출근을 하고 엄마는 김포와 인천 사시에 위치한 검단에 있는 해병대 부대에 출근한다. 부대 안 편의점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월정제 근로자(즉 알바)인 엄마의 월급은 나보다 조금 더 많다. 이 자리는 내가 해당 부대에 근무할 때 ‘군 가족 아르바이트 우선 채용 계획’을 보고서 재빨리 엄마를 추천함으로써 그 후 약 5년간 유지된 오랜 전통을 지닌 자리였다. 여러 고초가 있었지만 엄마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정규직 매니저들도 쩔쩔매는 존재감을 과시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평일 출근을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을 하지만 엄니가 매일 일터로 향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다.


4.


2년 뒤 우리가 집을 사기 위해 매달 빠짐없이 모아야 하는 돈 200만 원. 그리고 그 금액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나의 월급. 당연한 계산이지만, 월급을 통째로 저축해도 2년 뒤엔 집을 사지 못한다(7할 이상의 현금을 대출로 메운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러나 이런 ‘공상’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의 엄마 덕분이다. 아니, 우리 엄마의 월급 때문이다. 어쩌면 당장 이번 달부터는 아들의 돈은 미래 주택자금을 위한 저축으로, 엄마의 돈은 한 달 생활비로 지출하는 계획을 짤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조건, 즉 우리 집의 가계의 절반 이상을 나의 엄마가 담당하고 있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명백한 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모르는 척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앞으로 최소 3년은 더 지속할 것이다. 우리 집은 나의 월급과 엄마의 월급, 두 개 월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바퀴 중 하나라도 축에서 빠져나간다면 우리 가정을 길 위에 주저앉아 버릴 것이다.


나는 무능한 아들의 넋두리를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던 사실을 고백하기 위해, 그리고 이렇게 글로나마 남겨 잊지 않기 위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내 인생에 엄마의 월급이 기여하고 있는 바를 생각하지 못 했다. 반대로 나는 한 번도 내 인생에서 엄마의 월급이 사라질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약 1년 전부터 도시노동자의 평균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소한 돈을 벌고 있었지만, 나는 늘 우리 집의 가계소득이 중산층 어느 가정의 가장이 벌어들이는 소득액 이상이라는 착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것은 내 돈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5.


그리고 내가 몰랐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셋째 이모의 영향으로 급하게 휘갈긴 메모장을 토대로 한 나의 재무 플랜을 그날 저녁 당장 엄마에게 보고했다. 마치 인생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듯이 온갖 폼을 다 잡고서 통장과 가계부 따위를 대동한 채 식탁에 엄마를 앉힌 나는 천천히 나의 플랜을 설명해줬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우리에겐 얼마의 돈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은 이 정도야. 그러니까 앞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서 돈을 이만큼 모아서 나머지는 대출이나 전세금 등등으로 충당해서 집을 사면 되. 단지 지난 3년간의 우리 가계의 월평균 지출과 소득의 비율을 감안했을 때 전보다 약 10% 정도 지출액을 절약해야 하고 지출과 소득의 비율을 5:5 수준으로 맞춰야 해. 어때? 이해했지?”


나는 의기양양하게 엄마의 얼굴을 쳐다봤다. 칭찬을 바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연로한 엄마가 아들의 듬직한 재무 플랜을 잘 따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엄마는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당연한 소리를 무어 그리 길고 복잡하게 하냐. 븅신아.” 엄마는 내게 이미 다 알고 있는 걸 참 복잡하게도 설명한다고 핀잔했다.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상상한 그 ‘숫자’가 아니라, ‘지금보다 덜 쓰고 더 모으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리 삶을 구성하는 가장 결정적인 자원 요소가 돈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살아야 하고 벌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연봉을 깎아 이직한 아들은 그런 엄마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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