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직장인의 고백
24년을 작년이라고 말하기엔 느낌이 이상합니다.
왜냐면 아직도 나는 2024년을 사는 것 같거든요.
2025년은 그저 숫자일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 변한 게 있긴 한 것 같긴 합니다. 1월 1일에 거울을 보고 놀랐어요.
칙칙하고 건조한 피부가 환한 등 아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거든요.
이 말을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했다면, 나이도 어리면서 무슨 소리냐는 면박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 얼굴을 깊게 들여다 볼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내 1년 전의 젊음을 알고, 2년 전의 젊을을 알고, 10년 전의 젊음을 오롯이 기억하는 사람이니까요. 거울을 응시했던 찰나의 1초 동안 많이 슬퍼했습니다.
생각해보니, 2024년의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잘 되지 않을 때 슬펐고
사람을 사랑할수록, 누가 일자라도 박아놓은 마냥 이별의 날과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슬펐고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지구에서 밀려나는 듯한 무력감이 들면서 슬펐습니다.
물론 웃기도 많이 웃었습니다. 당장 핸드폰 사진만 뒤져보아도, 친구들과 나눈 카톡메시지만 보더라도 깔깔 거리며 웃지 않고서는 지나치지 못할 에피소드들 천지이지요. 그러나 그 웃음은 증거가 있어야만 떠오르는 웃음들입니다. 사진을 보며 복기하고 텍스트를 다시 읽어야만 그 순간이 떠오른다는 뜻입니다.
슬픔은 다르더라고요. 뚜렷한 정황과 증거가 없어도 슬픔은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그걸 느낀게 2024년이었어요. 쓰다보니 정리가 되네요. 2024년을 한줄로 정리하자면, 슬픔이 습기와도 같다는 걸 깨달은 해였어요. 사진을 삭제하거나 텍스트를 지운다고 해결할 순 없는, 어떤 공기에서 느껴지는 감정.
10년지기 친구 둘이 있습니다. 한명은 봄, 한명은 바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제 막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그렇다고 옷을 너무 두껍게 입으면 걷다 땀이나는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한달 차이를 두고 친구 둘 각각 외조모상, 조부상을 치렀습니다.
20대에 처음 가보는 지인의 가족 관련 장례식이었습니다.
모두 평일이었으므로,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한 뒤 퇴근하자마자 빈소로 향했습니다.
외조모상 연락을 받을 당시, 바람과 나는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었는데 신촌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퇴근길도 함께하게 됐습니다.
바람과 떨리는 마음으로 빈소에 다다랐을 때, 봄이 검은 상복을 입고 서 있었습니다.
원래도 큰 키는 아니었지만 검은 옷을 입어서인지 그날따라 너무 왜소해보였습니다.
바람이 울자 봄도 울었고 저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슬픔은 전염된다는 말이 참 상투적이라고 느껴졌었는데, 전염되는 게 맞더라고요.
그녀와 닮은 친척들의 얼굴을 보고, 그녀의 지인들도 보았습니다. 얼굴이 닮았다는 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인연이 세대를 걸쳐 내려오면서 봄이라는 사람이 태어났고, 그 인연에서 파생된 또 다른 인연들이 검은 옷을 입고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이. 뭐랄까, 삶을 압축시켜놓은 느낌이었어요. 이 모습은 나의 가족에게도 있고, 바람의 가족에게도 있고, 지나가는 얼굴 모를 사람의 가족에게도 있는 모습일테지요. 그래, 삶은 이런거지.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이런거야-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봄이 내어준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달 뒤, 바람의 조부상은 봄과 일정이 맞지 않아 따로 빈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회사 퇴근길에 들린 것은 한달 전과 똑같지만, 수액을 맞고 방문한 것이 한달 전과 달랐습니다.
가을의 나는 일을 너무나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그래서 야근하며 늦은 저녁을 챙겨먹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던 계절이었습니다. 일도, 연애도, 가족도, 친구도, 내 취미도. 그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기에 내 시간은 더 잘게 쪼개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피곤해'라는 말보다 '피로가 쌓인 것 같아'라는 말을 하게 된 시점이었지요. 이대론 안될 것 같아 입사 후 처음으로 수액을 맞았습니다. 물론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요. 피로하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을 가지 않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습니다. 시간이 없어 밝은 옷을 입고 허둥지둥 달려가는 친구의 역할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되고 싶은 것도 있고, 되고 싶지 않은 것도 많았던 가을이었네요. 이런 내 삶의 몸부림들은 장례식 안에서는 무효하긴 했지만요. 현실에 붙어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내 마음이 그곳에서는 힘을 잃고 흩어졌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바람과 닮은 가족을 보았고, 친척을 보았고, 신발장 부근 거울에서 검은 옷을 입고 더 야위어 보이는 내 몰골을 봤습니다.
바람과 바람의 가족과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찬 가을 공기에 붙어있는 습기 한 숨을 그때부터 느꼈던 것 같습니다.
12월에도 야근을 했습니다.
이때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유효했습니다. 잘하겠다는 마음은 곧 욕심이 됐고 그 욕심이 내 이른 퇴근을 말렸습니다. 평일엔 일했으니 주말엔 어떻게든 치열하게 놀겠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월 초,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근을 끝내고 짐을 챙겨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눈을 뜨고 있어 건조한 눈에는 습기가 다소 필요한 상태였지만, 이러한 삶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습기에 젖어가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엄마에게 연락이 왔고, 엄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네이버 뉴스를 켰습니다.
밤 시간대 지하철은 평소와 같았고, 지하철에 서 있고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 평소처럼 두 부류로 나뉘어져있었습니다. 피곤에 찌들어서 지쳐있거나, 술에 찌들어서 지쳐있거나.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옷깃을 부여잡고 지하철을 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 갔습니다. 내가 샤워를 제대로 하고 침대에 누웠는지, 귀찮아서 하지 않고 누웠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침대에 누워, 뉴스와 유튜브를 번갈아 보면서 올 뻔했던 잠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에는 새벽까지 밤을 샜고, 다음날 평소와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야 했기에 나는 더 피곤한 몰골로 회의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신과 몸이 피로에 찌든 것은 평상시와 동일했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습니다. 야근과 성과, 일상과 건강. 이것들을 정신없는 밤을 보내고 떠올려보니, 가을의 장례식장에서 느꼈던 '무효'라는 눈덩어리가 더 커져있었습니다.
그 눈덩이가 데굴데굴 굴러와 잘하고 싶은 마음, 지금 이게 아니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조금 금을 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고자 했던 것은, 앞으로를 위했던 것이었지. 오늘을 위한, 지금을 위한 행동은 아니었더라고요. 오히려 무효하다는 걸 내 마음속에 들이고나니, 습기가 곰팡이로 더는 번지지 않았습니다.
12월 연말 해외여행. 그 날을 위해 내가 열심히 야근한 이유도 있긴 했습니다.
따뜻한 온천, 맛있는 음식, 걸어다닐 때마다 들리는 외국어들. 주변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한국에 도착해서까지 한동안 여행의 기분에 심취해있었습니다.
강도높은 일과 강도높은 여행 끝에 주어지는 것은 강도 높은 수면이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은 나는 보복수면이라도 하듯 긴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깨서 휴대폰을 확인했고, 더는 긴 잠에 취해있을 수 없어 곧장 일어났습니다.
뉴스는 하루종일 사고 현장을 보도했고 나는 하루종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내가 만약 이라는 가정법으로 상상한 머릿속에는, 내가 있었고 내 가족이 있었고 내 친구가 있었고 내 회사동료가 있었습니다. 더는 상상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무효와 습기가 내 마음에 공존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가수 이찬혁의 <파노라마> 공연 영상이 떴습니다. 영상 후반부에 그가 관에 들어가 눕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입관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 아마 내 표정도 그들과 똑같았을 것입니다. 영상만 봐서는 그가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따로 <파노라마>의 노래를 틀어봤습니다.
죽은 사람의 관점으로 쓰인 가사. 이렇게 죽을 순 없다며 버킷리스트는 다 해봐야 한다는 가사. 습기는 느껴졌지만 그다지 크진 않았고, 중독적이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간만에 찾았다랄까요.
1월. 연휴가 끝나고 나는 회사로 복귀했고, 회사는 늘 그렇듯 똑같았습니다.
일을 하다 졸리거나 반짝 집중이 필요할때, 늘 그렇듯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음악을 틀었습니다. 맨날 듣던 재생목록에 귀를 내어주기를 못마땅해하던 와중, 그날 저녁 들었던 노래가 떠올라 <파노라마>를 플레이리스트 추가했습니다.
분명 나는 일을 잘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으면, 어느새 나는 이렇게 죽을 순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더군요.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이 두 문장의 반복이었습니다. 모순되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내가 습기를 어느정도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내 몸을 갈면서, 내가 나에게 슬픔을 일부로 던져주면서까지 일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언젠가 다가올 다른 사람들과의 이별, 내 삶과의 이별에 느껴지는 습기를 그냥 안기로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그냥 그대로 안으려고 했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가 뭐라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뭐라도 이루어낸 게 없으면 이 땅에 살아갈 이유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이런 것들이 두려웠나 봅니다.
일과 성과가 주는 달콤함을 포기할 순 없으니 지금 나는 그 길을 가고 있지만,
일상과 건강이 다치게 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테지만, 이 약속을 지키고 싶어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요즘 일합니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입관 퍼포먼스를 보며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노래는 <파노라마>가 아닌 <장례희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여기서 다시 볼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그 가사가 좋았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들을 수 없는, 생을 떠난 이들의 언어로 '확신이 있다'고 말해주는 그 확신이 좋아서. 야근하면서도 문득 듣습니다.
설이 끝나고 회사에 복귀하면, 아마 저는 또 다시 <장례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낼 것 같습니다. 습기와 무효를 적당히 느끼며 2025년을 시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