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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윤슬 Oct 27. 2024

행복은 늘 눕는 침대맡에

책, 행복의 기원

뭉크의 <키스> 액자를 머리맡에 두고 잔다. 바라보기만해도 조금은 행복하다. 


지인의 집에 집들이를 갔다가, '행복'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 한 명은 행복에 대한 역치가 낮다고 했는데, 그녀에게 행복이란 시각적인 심상이 대부분을 이룬다. 


"하루종일 초과 근무하고 낮에 퇴근을 했는데.. 하늘이 너무 파란거야. 너무 행복했어. 그리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 기둥 색깔이 너무 예쁜 파란색이라 또 기분이 좋아졌어. 나는 자연광이나 자연의 색깔, 질감을 발견하면 쉽게 행복해지는 것 같아."


나는 내 기분을 좋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해본 적은 없다. 행복의 역치가 높아서 일수도 있는데, 초대한 집주인장의 말처럼 애초에 DNA 자체가 행복을 덜 느끼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행복을 잘 느끼는 것도 어느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읽은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을 이렇게 설명한다고 했다. 


인간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산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적으로는, 인간은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을 뿐이다.


잘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나 수단 중 하나로 '행복'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니 역치가 높아지기 쉬운 요즘의 세상과 견주어보면 누구나 행복하기 어려워보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근래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대화 막바지에 '서울'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고갔는데, 친구가 나는 어떤 장소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생각보다 긴 고민할 필요 없이 광화문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무언가에 치이고, 힘이 들 때, 광화문이나 안국을 가면 힘을 얻는다고. 

한국이 싫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주 하면서도 서울의 중심지로 가면 긍지라는 게 몰려와서. 

서울을 배경으로 한 모든 역사적 사건들, 시간이 압축되어 그곳에 스며들었고 나는 그 공간에 서 있다. 

경복궁이 있고, 빌딩이 있고, 이순신이 있고, 시장이 있고, 교보문고가 있고, 찻집이 있고, 천이 흐르고, 빈티지 호텔이 있는. 낡았지만 낡음을 그대로 보존한 채 운영되는 곳이 많은 신비한 공간. 



생각보다 사소한 것, 가끔 지나갔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인정하진 않았던 장소와 순간이 조금씩 떠올랐고. 잊지 않기 위해 혼자 적어보기로 했다. 


일단 가장 최근의 작으면서도 잦은 행복을 꼽으라면,
퇴근 후 샤워한 몸으로 침대와 스탠드 불만 켜놓고 누워 책 읽다 잠들기.

오늘의 행복을 업데이트 하자면,
카페에서 얼그레이 티 하나, 따끈한 베이글 하나 시켜놓고
그녀에게 추천받은 <행복의 기원>을 음미했다는 것. 







1.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2.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막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생존.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3.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물은 오래 살 수 없다. 다리에 박힌 못이 아프지 않으면 치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작은 불씨를 미리 끄는, 일종의 호루라기 소리가 고통이다.






4.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서는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다.






5.

핀란드는 인테리어 소품 등을 디자인했던 알바 알토의 얼굴을 화폐에 새긴 나라다. 일상의 작은 경험의 가치를 아는 나라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행복한 사회의 특성 중 하나다.






6.

짜릿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일도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지만, 기쁨도 시간에 의해 퇴색된다.






7.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행복에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런 초기화 과정이 있어야 그 쾌감을 유발한 그 무엇을 다시 찾는다.

창을 들고 동굴 밖으로 다시 사냥을 나서는 이유는 사실 잃어버린 쾌감을 다시 잡아오기 위함이다. 이 무한반복의 생존 사이클이 지속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쾌감의 소멸이다. 소멸되지 않으면 동굴에 마냥 누워 있을 것이고, 계속 누워 있다 보면 결국 영원히 잠들게 된다. 






9.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략)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10.

행복이나 감정은 신비한 정신적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과학적인 시각은 감정의 출발지인 외부 변화에 두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행복을 유발하는 구체적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고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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