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민 Jan 27. 2019

나의 오디오북 4개월 체험기

아마존 Audible을 4개월째 이용하면서 든 생각들

어쩌면 가장 원초적인 책 읽기


최근에 우연한 기회에 영어 오디오북(내가 쓰는 서비스는 아마존의 Audible이다) 서비스를 접하고 이용하게 되었는데, 나에겐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 이었다.


오디오북은 앞으로 내가 책을 읽는 유일한 소스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미 나에게 끊기 힘든 하나의 즐거운 독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윌라나 네이버 오디오 클립과도 같은 한글 오디오북도 많이 나오는 추세니, 어떤 행태로든 오디오북을 한번 시도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어떻게 보면, 오디오북은 대단히 새로운 매체라고는 보기 힘들다.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접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이 아닐까.


책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 많은 정보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인도의 수많은 경전들과 성경 등 많은 종교의 경전들도 거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다가 활자화된 것이다. 불경에 많이 언급되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표현 자체도 부처의 제자 아난다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이다.


TTS(Text to speech) 기술은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인간 내레이터의 진정성


솔직히 말하자면 오디오북에 들어가는 기술은 ‘(디지털) 녹음-재생’이라는 단순한 기술밖에 없다.

아마존 킨들의 초창기 시절인 2009년, 비싼 돈을 주고 직구를 했던 킨들 2 모델에는 TTS(Text to speech) 기능이 탑재되어 나왔었는데,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TTS는 말 그대로 활자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읽어 주는 기술이었는데, 생각보다는 끊김이나 어색함이 덜했기에 더더욱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마존 킨들이 진화 함에 따라 TTS 기능은 빠졌다. 그리고 사람이 책을 읽어 주는 Audible이라는 회사를 아마존이 인수해 자신의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시키면서 오디오북의 부흥에 불을 댕기기 시작했고, 알렉사와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의 보급은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왜 TTS 기능이 빠졌을까? 왜 사람이 읽어줘야 할까?


나는 내가 읽었던 첫 번째 오디오북에서 본의 아니게 답을 찾았다.


내가 오디오북으로 읽은 첫 번째 책은 Mo Gawdat이라는 사람이 쓴 Solve for Happiness라는 책인데,

우리나라에 ‘행복을 풀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고, 나는 이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영어 오디오 북으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세세한 부분을 다 못 알아듣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모 가댓, '행복을 풀다'


이 오디오북은 저자 자신의 음성으로 직접 읽어 주는 책인데, 저자가 이집트 출신이라, 영어 발음이 표준적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가령 어떤 단어가 ‘r’로 끝날 때 ‘~르’라는 식으로 발음하는 등, 인도/아랍인들의 영어 발음이 묻어났다) 하지만 오히려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자연스럽게 읽었기 때문에 알아듣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초반에 나는 예상치 못했던 경험을 했는데, 아들의 죽음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이 책의 저자는 아들을 의료 사고로 잃는 시련 속에서 이 책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자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흐느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저자가 (실제로든, 마음속으로든) 눈물을 흘리면서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슬픔은 나에게도 즉각적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저자의 감정이 실린 음성은 책의 내용만큼이나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것은 절대 기계가  할 수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기계에게 학습시킬 수 있는 세상이 오기나 할까?


미셸 오바마가 직접 읽어 주는 ‘비커밍’


내가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은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인 비커밍’이라는 책인데, 이 책 또한 미셸 오바마의 육성으로 녹음되어 있다. 미셸의 경우에는 목소리에도 에너지가 느껴지고 발음이 아주 깔끔하고, 무엇보다도 알아듣기 쉽게 잘 전달하는 타입이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 중간에는 미셸 오바마가 버락 오바마와 결혼할 때 축가로 불려졌던 스티비 원더의 곡 ‘You & I’를 언급하면서 짧게나마 노래를 따라 부르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러한 것들도 오디오 북 만이 줄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한다. (내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참 좋은 책이니 추천 드린다)


미셸 오바마가 직접 읽어 주는 자신의 자서전, '비커밍'


저자가 직접 읽어 주지 않더라도 책의 내용에 맞는 성우를 섭외하려는 노력


오디오북으로 접한 나머지 세 권의 책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Shoe Dog)', 나심 리콜라스 탈레브의 ‘안티프래질(Antifragile)’,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인데 이 세 책 모두 이미 한 번씩 책으로 접했던 내용이지만 오디오북으로 한번 더 읽고 싶어서 구매했다. 필 나이트의 책의 경우에는 50대 정도로 추정되는 성우가 책을 읽어 주는데, 이 책의 정서와 딱 맞는 섭외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의 경우에는 날카로움, 유머러스함과 시니컬한 독설이 살아 있는 책의 내용을 잘 살리는 성우가 읽어 준다. ‘노인과 바다’의 경우, 헤밍웨이가 직접 읽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책의 내용에 적합한 노년의 성우가 책을 읽어 준다.  

노년의 성우가 읽어 주는 '노인과 바다'


이런 식으로, 책의 저자가 직접 읽어 주지 않고 성우를 섭외하는 경우, Audible은 책의 톤 앤 매너(Tone & Manner)를 최대한 살리는 성우를 섭외하는 것 같다.


다음은 아마존 Audible 서비스를 접하려고 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드리는 몇 가지 팁이다. 


1. 어차피 다 못 알아듣는다.

내 영어 실력이 원어를 다 알아들을 정도로 훌륭하지 않다. 솔직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책의 경우에는 너무 어려워서 그냥 이해하지 못하고 넘기는 부분도 많았고, 중간중간에 멈추고 휴대폰으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기도 했다. 오디오북을 들을 때는 다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전제로 일단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한 달에 한 권씩 듣되, 너무 벅차면 언제든지 해지하면 된다 

아마존 Audible의 경우, 한 달에 $14.95를 내면 1 크레딧을 주는데, 1 크레딧을 주면 어떤 책이든 한 권에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오디오 북의 정가가 25불이라고 할지라도 1 크레딧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한 권을 사더라도 구독을 하길 추천한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를 읽는 독자에게 이러한 구독은 정말 좋은 옵션이다. 혹시나 사놓고 한 달에 한 권을 다 듣지 못할 것 같으면, 언제든지 구독 정지나 해지를 해도 된다.


* 미셸 오바마의 책의 경우 19시간, 모 가댓의 '행복을 풀다'는 11시간가량, 필 나이트의 '슈독'은 13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는 보통 속도로 들었다. 목소리를 더 빠르거나 느리게 재생하는 기능도 있다)

미셸 오바마의 책의 경우 출퇴근하면서 들으니 딱 한 달이 걸렸다.

내가 최근에 읽고 있는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The Better Angles of Our Nature)'의 경우 다 읽는데 장장 37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한 달 안에 다 읽지 못할 것 같아 일단 구독 해지를 해 놓은 상태이다.


3. 책의 목차나 내용 요약을 프린트 해 같이 보거나 대략적인 개념을 잡고 듣는 것도 좋다 

유명한 책의 경우, 책의 내용과 목차, 논쟁에 대한 사항 등 여러 가지 정보가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위키피디아의 페이지를 인쇄해서 대략의 내용의 흐름을 잡고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4. 이미 한글로 읽었던 좋았던 책을 영어 오디오북으로 다시 읽는 것도 좋다

한글로 이미 내용을 다 숙지한 책을 영어 오디오북으로 읽는 다면 영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5. 저자가 직접 읽어 주는 책이 의외로 많다

저자만큼 책을 잘 전달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저자가 직접 느낀 감정과 생각을 저자가 직접 읽어 주는 것이 가장 진정성 있지 않을까? 찾아보면 저자가 직접 읽어 주는 오디오북들이 많이 눈에 띈다


결국 오디오북은 진정성 비즈니스


오디오북을 4개월 정도 꾸준히 접하다 보니, 결국 오디오북은 진정성 비즈니스 (Authenticity Business)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아마존이 TTS(Text to speech)를 버리고 인간의 목소리를 택했다는 것은 비즈니스적으로도 좋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이 담긴 스토리를 수십 시간씩 기계가 무미건조하게 읽어 준다면, 그것은 결코 질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무공은 사파의 무공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