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의 세월 X 8시간 49분을 달려가기 위한 안내서
세월X 를 전부 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제가 보고 내린 결론은 '세월호는 외력으로 침몰했으며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정부가 발표한 침몰 원인은 틀렸으며 대신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은 정확하다.' 입니다. 이게 그가 본 가장 중요한 진실이고, 나 또한 동의했습니다.
그럼 잠수함 충돌이 사실이란 말인가요?
잠수함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상초유의 움직이는 커다란 암초일 수도 있고,
외계에서 갑자기 떨어진 커다란 비행선일 수도 있고,
하다못해 엄청나게 크고 단단한 고래거나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데 등장하는 거대한 물고기 떼일수도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입니다.
그는 '외력'을 확신했지 그것이 잠수함이라고 단정지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그는 다큐에서 '잠수함은 절대 아니다' 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론이라고 못을 박아두었습니다. 따라서 잠수함 충돌이 아니다라는 반박은 이 다큐의 핵심과는 관계 없는 반론일 뿐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그가 어떻게 진실을 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우선 그가 진실을 검증한 특별한 패턴이 있는데, 간략히 적어보겠습니다.
크로스체크
이 다큐가 8시간 49분으로 길어진 이유는 크로스체크 때문입니다. 자로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근거가 크로스체크되지 않은 사실은 쓰지 않았습니다. 특히 레이더에 잡힌 괴물체가 컨테이너가 아니라는 사실은 5가지 서로 다른 시각에서 10개 이상의 근거를 크로스체크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방영된 것은 근거 중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준 셈입니다.)
반증
이 다큐가 길어진 또하나의 이유는 그가 'A는 B가 아니다' 라고 반증하는 방식으로 검증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사건에 분명한 흔적이 없다면 사건의 원인이 '**다' 라는 건 증명하기 어렵지만 ' *최소한 **는 아니다' 라는 건 증명하기 쉽습니다. 즉 기존의 가설들이 하나 하나 틀렸음을 증명하며 가능성들을 제거해나간 것입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제거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원인에 대한 하나의 의혹이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다른 의혹도 마찬가지로 불확실해집니다. 이를테면 철근 과적이 침몰에 영향을 미쳤다고 가정하면, 외부 충돌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과적이 원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외부 충격의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일상적인 것이었는가, 예외적인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는 침몰의 원인이나 조작의 징후라고 나타나는 사실들에 대해 그것이 일상적인 것이었는지 예외적인 것이었는지를 전부 검증합니다. 즉 그것이 평소때도, 다른 날도, 다른 배들에서, 흔히 나타나던 현상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의심할만한 것이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중 한두가지 예를 들자면, 과적은 전부터 일상적인 것이었고, 지그재그 운항도 마찬가지이고, AIS 자료들이 누락되는 것도 다른 배들에서 일정 비율로 발견되던 것이었다라는 점 등입니다.
그가 사용한 근거들
그는 다음 자료들을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청문회 증언들 전부, 생존자 증언들, AIS 항적도, 레이더 영상, VTS 영상, 아이들 핸드폰 사진들, CCTV '전부', 교신 녹취록, 해경 헬기 사진들, 둘라에이스호 영상과 증언, 지금껏 세월호 방영된 모든 뉴스와 탐사보도 중 일부, 세월호 재판기록(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책), 유가족들이 제공하고 협조해준 20만 페이지에 달하는 재판기록, 조사기록 일부, 날씨와 조류의 기록들. 해양 항해 관련 논문들, 자료들.'
특히 뉴스와 탐사보도의 자료는 이 자료를 전부 비교 대조하여 일치하는 것들만 추출하여 사용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물리적인 부분만 크로스체크합니다. 사람들의 소속이나 심리 정황 등은 전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즉 '정부 편이니까 거짓말했을 것이다' 와 같은 추론은 사실로 쓰지 않습니다. 귀납적인 추론은 이 자료들로부터 나옵니다. 반면 연역적인 추론은 김관묵 교수의 수학적, 물리학적 추론과 합동수사본부 자문위원의 청문회 증언을 많이 참고합니다. 이들의 추론으로부터 '외부 충격 없이 있을 수 없는 움직임' 이라는 결론을 얻어냅니다.
그래도 이 다큐를 전부 볼 엄두가 안 나시는 분들을 위해 안내의 글이 필요할 것 같아 이렇게 씁니다.
챕터 별로 정리해보았으니 필요하신 부분, 미심쩍거나 궁금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도 도움될 것 같습니다.
Chapter 1 진짜 사고 원인 - 3분경
이 챕터에서는 정부가 발표했던 침몰 원인 즉 '과적' '조타미숙' '고박 불량' '복원력' 네 가지가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하나씩 검증합니다.
Chapter 2 평형수의 진실 - 42분경
평형수를 빼서 복원력이 상실됬다고 하는 주장의 허구를 증명합니다. 평형수를 뺐다는 선원의 증언 맥락 재검증, 탱크의 구조와 세월호의 평소의 평형수 사용 패턴을 근거로 평형수는 복원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Chapter 3 철근 400톤의 진실 - 56분경
이 챕터에서 세월호 각 데크에 실린 화물의 적재 위치와 무게를 전부 구해내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세월호 출항 전 CCTV를 전부 분석해서 적재 위치를 분석한 뒤 이것이 복원력에 미친 영향을 수학적으로 구해냅니다. 화물을 모두 감안한 세월호의 복원력은 0.69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0.3정도와 두 배 이상 높습니다. 특히 철근이 미친 영향은 복원력을 오히려 미세하게 상승시켰다는게 이 챕터의 결론입니다.
Chapter 4 외력의 흔적 - 1시간 12분경
다른 챕터는 '반증'을 한 데 비해 이 챕터는 직접적으로 '흔적'을 검증합니다. 즉 '쿵'소리는 기울기 전에 났는지, 후에 났는지, 기운 속도는 얼마나 되었는지를 봅니다. 자로는 12명의 생존자 증언으로부터 어떤 '충격'과 함께 몇십 초 사이 사람들이 날라다닐 정도의 급격한 기움이 있었다는 근거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작성한 '증언표'를 참고합니다. 이것은 각 증언자들이 있던 위치, 기울기 전 후에 들은 소리를 전부 정리한 표입니다. 여기서 자로는 생존자들이 기울기 전에는 '쿵'소리를 들었고 기운 후에는 '쿠쿠궁'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쿵'소리는 기울기 전에 난 소리이므로, 화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Chapter 5 정체 모를 괴물체 - 1시간 26분경.
VTS레이더 영상에 등장한 물체가 무엇인지를 분석합니다. 첫째 조류와 원심력의 영향으로 예측되는 움직임, 둘째 괴물체가 등장한 최초 위치의 불합리성, 셋째 세월호와 잔류 표류물과의 거리, 네번째 괴물체 표류 예상 위치, 다섯번째 레이더에 반사된 반사면적을 통해 이것이 컨테이너가 아니라는 결론을 냅니다. 즉 5가지 측면을 검증하기 위해 사진, 영상, 조류 상황, 물리적 운동 법칙과 국회 요구자료와 해경 실험보고서, AIS와 레이더 대조자료 등 적어도 10개 이상의 근거를 크로스체크하여 결론을 냅니다.
즉, 이 결론을 반박하려면 그 10개 이상의 근거를 전부 반박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한두 개의 어떤 근거들은 틀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그것 만으로는 결론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Chapter 6 잠수함 충돌 가능성 - 2시간 5분경
이 챕터가 흥미로운 것은 기존 잠수함설과 관련한 대부분의 사진들을 자로 씨가 반박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잠수함의 존재가능성을 접어두었다가 생각이 바뀐 이유는 급변침이 일어난 해역의 수심이 50m 이상이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물론 이 챕터에도 잠수함이라고 추정해볼만한 근거들은 2-3 가지 등장하지만, 다른 챕터에 쓴 근거들에 비하면 (그의 검증 패턴을 보았을 때 ) 크로스체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는 잠수함이라고 단정짓지 않습니다.
다만, 세월호가 기울어서 침몰할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해보면 배 밑에 파공이 생겼을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챕터를 보고 든 생각은, 해군은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레이더에 잡힌 물체가 '무엇인지' 밝히기만 하면 끝납니다. 만약 잠수함이 아니라면, 당시 근처 선박, 영상, 사진, 목격자를 죄다 찾아서라도, 비슷한 가능성있는 물체를 띄워 실험을 해서라도 괴물체가 무엇인지 밝히는데 최대한 협조를 하면 됩니다.
만약 '다른 나라'의 함정이나 동력체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오히려 해군은 바싹 긴장하고 괴물체가 무엇인지, 더더욱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그게 국방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의 본분이 아닌가 합니다.
Chapter 7 세월호를 인양하라 - 2시간 36분경
이 챕터에서는 세월호에 파공이 생겼다는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가장 큰 증거가 세월호 선체이며, 인양 방식을 이유로 선체에 100여개의 천공을 뚫었다는 슬픈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Chapter 8 세월호 닻의 진실 - 2시간 47분경
Chapter 9 AIS 조작설의 진실 - 3시간 48분경
Chapter 10 VTS 관제영상 조작설의 진실 - 5시간 04분경
Chapter 11 CCTV 조작설의 진실 - 5시간 23분경
Chapter 12 한쪽 엔진 정지설의 진실 - 6시간 21분경
Chapter 13 지그재그의 지실 - 7시간 01분경
Chapter 14 예슬이 사진의 진실 - 7시간 13분경
Chapter 15 전자등대의 진실 - 7시간 36분
Chapter 16 서우 사진의 진실 - 7시간 55분
챕터 8부터 16까지의 주 내용은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도가 정확하다는 사실을 검증합니다. 주로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이야기한 AIS, CCTV 조작설을 반박하면서, 논리를 전개합니다. 참, 이 부분을 보실 때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앵커 침몰설과 관련한 영상 들을 먼저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래야 좀더 객관적인 판단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그들이 조작으로 오해한 이유를 기계적 오류에서 찾아냅니다. 이것은 평소에 기계들이 갖고 있는 오류의 확률들을 전부 검토하면서, 조작의 확률보다 기계 오류의 확률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가 해낸 가장 중요한 검증은
AIS 항적도, 레이더, VTS 관제영상, 상업용 AIS,
해경 초계기 좌표, 타선박 VDR, 타선박 레이더, CCTV,
아이들 사진과 영상에서 발견한 위치, 움직임, 각도
이 8가지 종류에서 추출해낸 같은 시간의 정보가
모두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AIS 항적도가 중요한 이유는 이 항적도가 거짓이 아니라면, 이것은 외력에 의한 움직임을 증명할 강력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부분을 볼 때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거친 표현 때문에 좀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거나 논리에 집중해서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특히 CCTV가 갑자기 꺼진 이유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히 파고드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상했던 '의혹'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은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이와 같은 분량이 필요했던 이유는 파파이스에서 김지영감독이 자료 조작과 앵커 사용 가능성에 꽤 많은 근거들을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근거들을 거의 모두 반박했기 때문에 이토록 긴 분량을 할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시는 분들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Chapter 17 프락치의 정체 - 대략 8시간 07분 부터 시작
여기서는 김관묵 교수를 만나게 된 이유와 경위를 소개합니다. 그 이유가 재미 있습니다.
Chapter 18 가장 시급한 일 - 8시간 20분
강력한 세월호 특조위를 만들어야 하며, '왜 구조하지 않았나'를 '침몰 원인'과 연계해서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Chapter 19 다큐를 만든 이유 - 8시간 27분경
자로 씨가 다큐를 만들게 된 사연을 소개합니다. 조금 가슴이 아팠습니다.
Chapter 20 열일곱살의 버킷리스트 - 8시간 31분경
개인적으로 이 다큐 중 가장 아름다운 챕터였습니다. 고 박수현 군과 그의 사진 이야기입니다. 박수현 군의 사진이 무엇을 찍었는지, 어디서 찍었는지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박수현 군의 사진 또한 당시의 배의 기울기와 움직임이 AIS항적이 정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담았을까, 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이 다큐는 오로지 세월호의 물리적인 움직임에 집중하여 침몰 원인에 철처하게 집중한 다큐입니다.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국정원과 대통령은 무엇을 한 건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침몰 원인을 알면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추론해나가는 상당히 파워풀한 근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자살인지 맞아죽었는지 중에서 맞아죽은 게 확실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셈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항적도가 정확하며, 신뢰할만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큰 진전입니다.
그가 '진실을 보았다'는 핵심들 중 제가 새로이 발견한 중요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급격히 기울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쿵 소리는 기울기 전에 발생했다.
AIS항적은 조작되지 않았다.
CCTV는 누가 일부러 끈 것이 아니다.
세월호는 외부 충격으로 침몰했다.
제가 보기에 이제부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더에 잡힌 물체가 무엇인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밝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철저히 검증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추가 - 오늘 찾아보니 레이더가 반사체 등에 의한 허상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허상일 수 있다는 의견허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존재했습니다. 두 명 다 레이더 경험자였습니다. 자로 씨는 인터뷰로 보아 허상의 각도를 두고 허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레이더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다만 참고로 저는, 그것이 허상일 경우라도, 외력 침몰이 아니라고 단정할 근거는 못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조타로는 있을 수 없는 급변침과 물리적 운동, 소리 등에 관한 강력한 근거들 때문입니다. 다만 레이더 영상이 허상이 아니라면 외력을 뒷받침하는 더 선명한 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다큐의 결론들을 반박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반박할 차례입니다. 만약 여전히 의심스럽고 반박하고 싶다면, 다큐 8시간 49분을 모두 보시고, 몇 챕터의 몇 분에 나온 어떤 자료에 오류가 있는지, '오류'를 찾아내면 됩니다. 이는 자로 씨도 오히려 환영할 것입니다. 그렇게 더 진실에 가까이 가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 다큐의 가장 큰 성과는
세월호의 진실은
기자도 검사도 조사위원도 아닌
우리와 같은 개인들은 밝혀내긴 힘들다는
편견을 깬 것입니다.
그는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 자료를 모두 크로스체크해서 진실의 일부분을 검증했습니다. CCTV를 모두 체크한 노력, 항적도의 모든 데이터를 일일이 체크한 노력, 이를 아이들의 사진과 전부 대조해본 노력에는 솔직히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다큐를 만든 자로 씨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