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래 Nov 28. 2018

이도저도 아닌 내가 쓰는 이도저도 아닌 것들에 대한 글

우유부단함과 융통성의 사이 그 어디쯤


최근 MBTI에 관심이 많아졌다.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건 어쩌면 굉장히 무섭고 무모한 일이다. 다만, 적어도 내가 대답한 항목들로 나를 분석한다는 최소한의 툴이 있다는 점에서, 혈액형이나 별자리보다는 신뢰도가 높다고 믿는 편이다. (실제로 어렸을 땐 별자리 궁합을 믿어서 전애인들의 생일은 잊었어도 별자리는 기억한다.)


응답결과에 따르면, 나는 ISFJ 타입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초록창이 알려주는 결과에 따르면 이 타입의 사람들은 대게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남에게 피해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모임에서 최대로 호응하지만, 딱히 사교적인 타입은 아니고, 사실 다소 이기적이기까지 하다고 한다. 굳이 형상화하자면, 여럿이 같이 치킨을 시키면 다리는 먹지 않고 기다리지만, "이거 먹어도 돼?"라고 묻지 않고 홀랑 집어가는 사람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타입정도일까? (하지만 기억하는 것이 끝이다.)


오, 맞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사회에서 만났을 때 딱 좋은 타입이다. 조직에서는 전체 업무 진행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름의 책임감을 발휘하여 일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하기 때문에 아무말이나 해대는 분위기 메이커로 기능하며, 뒷담화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싫은 소리는 꺼내지 않는다.


그런 나는 누구에게나 좋은사람이지만 누구에게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요즘은 개인 브랜딩 시대라고 했던가. 아무말이나 내뱉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흥미로움이 없고, 온 종일 웃지만 그 웃음은 다른 주제가 화두에 오르기 전 잠시 텀을 메워주는 BGM으로 작동할 뿐이다.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아요"가 처음에는 100% 거짓말이었는데, 6년동안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고 말하다보니,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진건지, 아니면 정말 말에는 힘이 있는건지. 적어도 신입사원 시절에는 "물에 빠진 생선 못 먹는 애"라는 이상한 타이틀(?)은 있었지만, 이제는 그조차 잃었다. 가끔은 스스로 매운탕집에 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친하게 지내는 후배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회색이야" 라고 하니, 후배는 놀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선배님은 형광분홍색이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형광분홍색이고 싶어하는 회색인데, 그리고 사람들이 모를 줄 알았는데, 역시나 들켰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나서서 잘난체는 하고 싶지 않지만 누군가 알아보고 칭찬해주면 하루종일 그 칭찬을 떠올리느라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누군가 내 별명을 지어주면 그게 그렇게 행복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세상 제일 가는 주접을 부리고 그들이 즐거워하면 두 배 세 배 뿌듯함을 느낀다. 혼자인 걸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먼저 만나자고 오는 연락의 고마움이 나가기 싫은 귀찮음을 늘 이기곤 한다. (정말정말 귀찮을 때도 있지만, 약속을 깨면 상대가 실망할까봐 별 수 없이 나가는 경우도 물론 있다.) 요즘 말로 '소심한 관종' 정도라고 표현해야 할까?


어쩌면 MBTI라는 것도 일종의 프레임인지 모른다. 내가 나를 그런 사람(=회색인간, 우유부단해, 매력없어..)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내가 ISFJ타입이라는 걸 알게된 무렵 인 것 같다. '오오오 맞아맞아' 라고 생각하다보니 '맞아.. 난 노잼이야..'라고 더욱 수렁에 빠져버린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렇게 갈팡질팡 말 한마디에 우유부단한 것도 ISFJ의 특징인걸까..? 모든 말을 '~한건지도 모른다, ~한 것 같다, ~인걸까?'로 끝내는 것도 ISFJ의 특징이..려나?


사실 사람들의 시시콜콜하고 별 거아닌 이야기를 읽고, 또 이도저도 아닌 내 이야기를 어딘가에는 쓰고 싶어서, 그리고 그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하고 또 공감받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고, 또 닉네임을 한참 고민하다가 적어본 것이 어쩌다보니 주절주절 길어진 첫 번째 글이 되었다. 어쨌거나 내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나를 드러내고는 싶지만, "팔로우 합니다 맞팔해요~"라고 말 할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


이도 저도 아닌 나이지만,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도 맞고 저도 맞지 않나. 혹은 이도 저도 아니면 또 좀 어떤가. 이도 저도 아닌 게 맞는거지 라는 말장난을 읊조려본다. 어쨌거나 내 안의 프레임에 나를 가두지 않고, 자유로운 글과 생각과 그림으로 나를 채워가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늘 있어왔고,

조금은 이 공간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