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웅 Jul 31. 2021

삶과 죽음 사이를 항해하는 서퍼

이 여름,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함께 읽으며

  이번 여름에는 바다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다에 갈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그 어느 때보다 바다가 더욱 간절한 여름이다. 가볼 수 없으니 더 자주 기억 속의 여름 바다를 꺼내 보게 되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바다를 그려보는 이들이 참 많겠다.


무더위 속에서 달아나듯, 눈을 감고 잠시 그 시원한 일렁임을 불러내 보자.


작열하는 태양과 그 아래 볕 조각들을 머금고 반짝이는 바다. 생각만으로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여름 바다는 다른 계절의 바다보다 매혹적인 구석이 있다. 극단의 온도가 한 풍경을 이루어내며 생명과 소멸을 한데 어우러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여름 바다는 우리로 하여금 삶과 죽음이 부딪쳐 생겨나는 포말을 마주하게 한다.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그러안고서 싱그럽게 빛나는 바다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0)를, 그리고 그 속에서도 특히 서핑에 도전하던 ‘우윤’을 생각나게 한다.


<시선으로부터,>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 당부하던 ‘심시선’이 죽자, 그의 자손들이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나는 이야기다.


사시사철이 여름 날씨인 하와이에서 그들은 제사상을 차리는 대신 각자 하와이를 여행하고 인상 깊었던 순간의 경험, 혹은 기뻤던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을 수집해 오기로 한다.


어렸을 적 오래 아팠기에 언제나 죽음을 의식하여 조심스레 살 수밖에 없었던 우윤은 죽음과 대면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고자 서핑에 도전한다.


여러 날을 서핑에 실패하던 우윤은 심기일전하여 마지막 날 처음으로 서핑에 성공한다. 우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스러지는 파도에 쥐고 있던 물병을 갖다 대어 거품을 담아 장례식에 가져온다.


파도를 타며 우윤은 어린 시절 그토록 두려워했던 죽음이 “투명한 팔을”(291쪽) 두르고 기이한 격려를 해주었다고 느낀다.



  우윤은 죽음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행위에 도전하여 자신이 “특별히 용감하지도 않지만 겁쟁이도 아니”(95쪽)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애써 외면하고 피해왔던 죽음을 어깨동무를 할 정도로 바투 마주함으로써 오히려 내가 여기에 이렇듯 살아 존재한다는 지극한 생의 감각을 길어 올린다.


  자신은 물에 빠져 흠뻑 젖고도 보드 위에 다시 올라 다음 파도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자 큰 파도 앞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바다를 유유히 가로지를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이는 적극적으로 삶을 만끽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이들의 특별한 장례 행위가 갖는 의의와도 맞닿아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제 몫의 파도를 감내하며 사는 이들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가 고난과 시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무력하게 바다에 잠식되는 대신, 거대한 파도를 발판 삼아 희로애락의 오르내림을 오롯이 느끼며, 그것을 즐기는 서퍼(surfer)가 될 수도 있겠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임을 강조했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를 미리 끌어와 두려움 속에 살라는 뜻이 아니다. 어차피 오게 될 죽음으로 먼저 다가가기 위해 죽음을 택하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확실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에 오히려 각자의 삶이 고유함을 인식하고, 그 삶을 풍부하고 소중하게 만들 줄 아는 존재라는 말이다. 높은 파도에도 거침없이 올라타서 내리막의 스릴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또 다른 오르막이 되기도 한다는 희망을 믿어보는 것, 무엇을 위한 항해를 할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정할 것, 이것이 우리의 삶에 주어진 사명일지 모른다.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삶은 무더위와 짝을 이루어 더욱 시원해지는 여름 바다와 닮았다. 팬데믹으로 일상을 잃어버린 우리는 그 무서운 전염병과 재난 속에서도 다시 삶으로 가는 새로운 물결을 찾아낼 것이다. 저기 거대한 파도가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우리는 멋진 보드를 가진 서퍼이므로, 저 파도가 우리를 집어삼키리라는 걱정일랑 떨쳐버리고 “괜찮은 녀석이 오는데?”(290쪽)라는 설렘으로 파도를 탈 준비를 할 수 있다.


  무슨 소리 겁이 나기는 재밌지 뭐!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을 시작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