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다한 인연에 대하여

by 권성선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오래전 스터디 모임에서 누군가 무심히 던진 말이 가끔 생각난다.
살면서 속하게 된 수많은 모임과 일터, 그리고 그 안에서 맺은 관계들이 오래 유지되기도 하고 자연스레 정리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그 말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그 말은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흐름에 닿아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함께 웃고, 일하고, 밥을 먹고, 마음을 나누지만
그 모든 관계가 영원하진 않다.
어느 순간 대화의 결이 달라지고, 연락의 속도가 느려지며,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한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가 달라질 때, 관계의 결이 어긋난다.
많은 사람이 그 변화를 ‘배신’이나 ‘실망’으로 받아들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명 주기일지도 모른다.
꽃이 피고 지듯 관계에도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을 함께한 것만으로도 인연은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짧은 인연은 늘 조금 쓸쓸하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분명 진심이었고, 서로의 인생에 잠시 머물며 필요한 역할을 다했을 것이다.
그걸 떠올리면 마음이 조금 덜 아프다.
그 시절의 인연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믿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아쉽다.
소중한 인연이라면 방부제라도 넣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관계에는 방부제가 없다.
억지로 붙잡는 순간, 관계는 더 빠르게 상한다.
유통기한을 조금 더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의 변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뿐이다.

결국 인연은 ‘기간’보다 ‘깊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짧아도 마음을 남기는 인연이 있고, 오래 이어져도 공허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유통기한이 다한 인연도 괜찮다.
그 시절,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으니까.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말 걸고 싶다.

언젠가 떠나보낼 날이 오더라도 그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당신과 나는 참 좋은 시절인연이었어요.”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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