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장비빨, 옷빨

by 권성선

오늘은 한국무용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주엔 결국 사지 못했던 풀치마를 오늘은 입었다.
사실 기초 수업에서는 풀치마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발 모양과 스텝을 봐야 해서,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입고 싶었다.
무용을 배우는 사람 말고, 무용을 하는 사람의 기분을 한 번쯤은 느껴보고 싶어서.
거울 앞에 섰다.
풀치마는 생각보다 더 화사했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처럼 퍼졌다.
별다른 기술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동작이 부드러워진 것 같고 자세도 한 번 더 세우게 됐다.
역시 장비빨, 옷빨이다.
우리는 종종 말한다.
중요한 건 실력이지, 겉모습은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때가 있다.
아직 서툰 몸이 스스로를 믿지 못할 때, 옷 한 벌이 그 믿음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풀치마는 내 실력을 바꿔주진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무용수답게 만들어주었다.
‘이제 배우기 시작한 완전 초보이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서도 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다.
생각해보면 삶도 그렇다.
완벽해진 다음에 역할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역할에 먼저 몸을 들여놓다 보면 조금씩 그 사람에 가까워진다.
무용가가 되기엔 아직 부족한 몸이지만 무용가의 옷을 입고 서 있는 이 시간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삶 쪽으로 한 발 더 다가간 느낌이었다.
오늘의 풀치마는 장비도, 허영도 아니었다.
나를 다음 단계로 데려가기 위한 작은 용기였다.
역시, 옷빨이다.
그리고 그 옷을 입기로 결정한 내 마음빨이기도 하다.
역시 장비빨, 옷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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