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1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나의 출발점

by 봄빛

ㅇ 읽은책 : 니코마코스 윤리학

ㅇ 펴낸곳 : 이제이북스

ㅇ 1판3쇄 (2008년1월25일 판)

ㅇ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 이창우, 김재홍, 강상진 옮김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에게 알려주는 행복이야기.

행복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이해 범주 안에 있는 감정이나, 대상에 대해 하나하나 논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지 규정한다.

으뜸 가는 학문으로 가장 총기획적인 학문인 '정치학'을 꼽는다.

이는 최상의 좋음, 즉 최고선을 다루는 학문이며, 그 목적은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라 규정한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용구를 한번 보자. 헤시오도스의 말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사람이요.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역시 고귀한 사람이다.

하지만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가슴속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니라."


정치학이 추구한다고 지적했던 모든 좋음 중 최상의 것을 '행복'으로 규정하며, 이것은 '잘 사는 것', '잘 행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이를 잘 이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학의 문제들에 관해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좋은 습관을 통해 훌륭하게 자랐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위해 윗글을 인용하고 있다. 인용구를 보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우선 갖추어야 할게 많다. 여기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키워드인 '탁월성'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탁월한 것은 훌륭한 사람, 고귀한 사람의 근간이 된다. 그 탁월함이란 단편적으로는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는 다든지,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들이다.



다수의 사람들, 특히 대단히 통속적인 사람들은 좋음과 행복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목적이 향락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짐승들의 삶'이라 일갈하며 완전히 노예와 같다고 말한다.


다음은 정치적 삶의 목적으로서 '명예'를 택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교양있는 사람이나 실천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명예는 피상적이다. 이것이 '행복'이라는 바로 정치학의 목적인 최상의 좋음, 즉 '인간적인 좋음'은 아니다. 여기서 행복이란 어떠한 것이 될 지 이야기한다. 이 '인간적인 좋음'(행복)은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명예보다는 구체적인 것으로 '탁월성'이 이에 가깝다. 탁월성을 근거로 명예를 얻고자 하기에...


이후에 탁월성을 찾아서 헤매게 되는데,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탁월성을 행복의 근원으로 지목함으로써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을 한정짓고 있다. 고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명예를 더 높이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면서, 이태 전 읽었던 논어(배병삼 저, 한글세대가 본 논어)가 떠올랐다. 논어는 한문구 한문구 들여다 보아야 했다. 읽다보니 회자되는 많은 경구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내가 그 한문장 한문장 속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내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뜩 깨친 문장은 벼락처럼 머리속을 내리치고, 그것은 실천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는 지경이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면서, 논어와는 다르게 직관적이고 빠르게 다가오는 문장들은 더 쉽게 실천하게 만든다. 철학적인 논의를 더 깊이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적용하고 실천하게 하는 문구들이었다. 그래서, 내내 읽으면서 나에게 실천 의지가 있는지 되묻게 된다. 그리고 할 수 있고, 하려한다. 이 정도면 이 책은 나에게 성공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 책을 명명코자 한다. "실천적인 행동으로 옮겨가는 삶의 철학"


"행복? 인간적인 좋음이라는데, 그게 뭐지?" 행복은 뭘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드는 의문이다.

'좋음은 그것을 위해 나머지 것들이 행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이것을 위해 나머지 일을 하는 바로 그것', 그것은 행복이라고 재차 규정한다.


다시말하면, 우리모두는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행하며, 좋은 것들의 원리이자 원인이 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다시 어려운 길을 걸어가야한다. 어두워서 막막하기만하다.

인간만이 행복을 느낄수 있다. 이성이 있기에..

이성을 가진 것의 실천적 삶에서 행복은 나온다.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의 정의로 돌아가보자.

"인간적인 좋음은 완전한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어떤 활동"이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적인 좋음은 '행복'이다.



자, 이제 바통은 탁월성으로 넘어왔다.

탁월성이 있어야 행복할 듯하다. 어떤가?


여기서 탁월성에 대한 명제하나를 소개코자한다.

"정의로운 일들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된다."

처음 헤시오도스의 인용구에서 나왔듯이 탁월성은 두가지로 나뉜다. 지적 탁월성과 성격적 탁월성이다. 첫구절 '훌륭한 사람' 즉,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이 가진 것이 지적 탁월성이라면, 둘째구절 '고귀한 사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가진 것은 성격적 탁월성일 것이다. 이 성격적 탁월성은 습관에 의해 생기며, 품성상태(hexis)들은 유사한 활동들로부터 생긴다.

생각만으로는 탁월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각하고 행동해서 습관이 되는.. 그러한 것이다.


다시 한번, 공자가 생각난다. 공자의 앎은 알고서는 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와 비슷하게 나아간다. '논어'의 낮은 버전이라고 할까?



탁월성은 합리적 선택과 결부된 품성상태로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중용에 의존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 속에서 생겨나는 것을 세가지로 말한다.


감정(pathos)과 능력(dynamis)과 품성상태(hexis) 이 세가지로서

감정은 욕망, 분노, 두려움, 대담함, 시기, 기쁨, 친애, 미움, 갈망, 시샘, 연민, 일반적으로 즐거움이나 고통이 동반되는 것이고,

능력은 우리가 이러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들로, 화를 낼 수 있거나 슬퍼할 수 있거나 연민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능력들이다.

품성상태란 우리가 감정들에 대해 제대로 태도를 취하거나 나쁘게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으로, 분노와 관련해서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느슨하다면 우리는 나쁘게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하며, 그래서 중용적이라면 제대로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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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성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언명한 것을 한번 보자.


"모든 탁월성은 그것이 무엇의 탁월성이건 간에 그 무엇을 좋은 상태에 있게 하고, 그것의 기능을 잘 수행하도록 한다. 눈의 탁월성에 의해 잘 보는 것이니까. 마찬가지로 말의 탁월성은 말을 신실하고 좋게 만드는 데도, 달리는 데도, 사람을 실어 나르는 데도, 적과 맞서는 데도 좋은 말로 만든다. 이러하다면, 인간의 탁월성 역시 그것에 의해 좋은 인간이 되며, 그것에 의해 자신의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품성상태일것이다."


탁월성이 무엇인지, 어떠한 것에서 나오는지를 말하는 부분이다.

"탁월성의 본성이 어떤 성질인지를 고찰해 보자. 연속적이고 분할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는 더 많은 양을, 혹은 더 적은 양을, 혹은 동등한 양을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때의 더 많고 더 적음이나 동등함은 대상 자체에 따라 이야기될 수도 있고, 우리와의 관계에 따라 이야기될 수도 있다. 이때 동등함(ison)은 지나침과 모자람의 어떤 중간이다."


결국, 탁월성을 이루는 것은 동등함, 중용으로 귀결된다.




*참고 : http://springdaylight.tistory.com/215

http://springdaylight.tistory.com/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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