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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Feb 24. 2023

문학 칼럼55(프랑스 문학)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혐오자'에서 배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

[문학칼럼]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혐오자'에서 배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

민병식


'몰리에르(1622-1673')는 17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극작가로 불린다. 인간 혐오자’는 1666년 6월에 초연된 희곡으로 몰리에르의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또, 프랑스 왕정시대에 왕족과 귀족 혹은 신화 속 인물을 다루는 것이 ‘비극’이고, 부르주아지를 묘사하는 것이 ‘희극’이라는 전통을 과감히 깬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다 보면, 과거나 현재나 권력을 추종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군상의 본성은 변함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데, 몰리에르는 이 작품의 부제를 ‘사랑에 빠진 우울한 사람’으로 칭했다. 이 작품 속에서 알세스트의 인간 관이 적대적인 데다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알세스트는 귀족이지만 완고할 정도로 귀족 사회의 표리부동함을 싫어한다. 앞에서는 온갖 칭찬과 찬사를 하다가 그 대상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끔찍한 비난으로 변하는 위선을 몹시 증오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주위 사람들과 타협할 줄 모른다. 그는 진정함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직설화법을 사용하며 솔직한 태도를 고수한다. 그는 솔직함때문에 왕궁으로 진출할 기회를 상실했다. 그의 친구 팔렝트는 극단성을 피하고 적절한 타협을 미덕으로 삼는다. 상대방의 말이 거짓 칭찬이라고 호의 표현으로 받아들일만큼 사회성이 뛰어난 인물이다.


갈등의 한 복판에 '셀리멘'이라는 21세의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뒤부터 살롱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많은 남자들이 찾아와서 추파를 던진다. 그러나 셀리멘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어느 날 '오롱테'라는 귀족이 셀리멘을 위해서 소네트 한편을 집필하여 살롱에서 낭독한다. 오롱테는 주위의 어느 누구도 만만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궁에 들락거리면서 황제와 알현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세스트는 이에 개의치 않고, 오롱테의 작품을 형편없는 졸작으로 매도하였고, 오롱테는 이로 인하여 살롱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적개심을 느껴 알세스트를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고소한다. 이때 필랭트는 판사를 돈으로 매수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조언하지만, 알세스트 친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결국 패소하고 만다.


알세스트는 사랑에서 더욱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그는 셀리멘을 사랑하지만, 셀리멘은 정작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다. 한편, 셀리멘의 친구로서 그다지 매력 없는 나이 든 여자인 아르지오네가  알세스트를 흠모하속내있었는데 질투심에 사로잡혀 셀리멘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긴 편지 한통을 편지한다.  셀리멘은 모두에게 마음을 약속한 연서를 보냈던 것이다. 남자들은 셀리멘의 위선에 실망해 떠나지만 알세스트는 떠나지 않고 셀리멘에게 함께 자신의 영지로 가서 둘이 살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셀리멘은 사교계를 떠날 수 없다.


궁정과 사교계에서의 소외와 고립, 그리고 사법 기관이 내린 판결은 알세스트에게 탈 사회라는 막다른 선택을 남긴다. 결국 몰리에르는 알세스트가 사회에서 고립된다는 측면에서 무작정 사회와 인간을 경멸하는 사회성 없는 인간을 비판하고 있다. 즉, 알세스트의 안에 있는 혼자만의 고집, 자기 생각에로의 집착, 남에 대한 존중 없음 등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남자의 유형을 21세기 현대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팔랭트처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삶은 지속적인 유지가 힘들다.  상대방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만  언제까지 속마음을 감출 수 없다. 반면 알세스트처럼 삶을 솔직함만 추구하는 자세는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자신만의 아집으로 이어지기 쉽고 사회성 부족이라는 평을 받는다. 반면, 팔렝트는 사회성이 좋다는 면에서, 알세스트는 인간의 이중성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어찌 성격적으로 인격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결국 세상 살면서 우리는 팔랭트와 알세스트를 적절히 섞어서 살아야 한다. 장점과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지 않고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때 신중해야 하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위선과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바름에 대한 생각, 타인 존중, 솔직함, 그리고 순수함 등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덕목을 몰리에르는 강조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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