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또 껌을 한 통 샀다. 내가 씹을 것이 아닌 어머니가 씹을 껌이다. 어머니는 당뇨병 때문에 갈증이 심하다는 이유로 늘 껌을 입에 달고 사신다. 그렇다고 껌을 씹으셔서 물을 안드시는건 아니다. 문제는 껌을 많이 씹는다는 이유로 잔뜩 비축해 놓으려 하신다는 거다. 얼마든지 사드린다고 너무 오래씹으면 딱딱해지고 턱 관절에 좋지 않으니 아끼지 말고 씹다가 뱉고 새로 씹으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다.
어머니는 껌을 씹다가 버리는게 아니라 물을 부은 컵에 씹던 껌을 뱉어놓고 필요할 때 또 꺼내드신다. 아마 어머니의 젊은 시절 너무 어렵게 사셔서 그런게 아닌가 이해하고 있지만 요즘은 껌이 원통안에 들어있어 몇 개씩 집어 먹으면 되고 껌 값이 비싼것도 아니다.
부모님 댁에는껌통이 이곳 저곳에 산재해있다. 냉장고에 한 통, 쇼파 옆 탁자에 한 통, 거기에 더해 어머니가 비축한다고 숨겨놓은 찾기도 어려운 서랍 곳곳에 껌통이 있다. 나중에는 껌이 다 떨어졌다고 사달라고 해서 껌통에 리필한 봉지껌까지 충분히 사드려도 얼마 못가 또 사달라고 하신다. 어제는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외출시켜 부모님 댁으로 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밥도 사드리고 운동도 시켜드렸는데 점심식사를 하고 컵에 담궈놓은 껌을 또 씹으시려하신다.
"엄마. 그거 버리고 새 껌 씹으세요. 껌도 이렇게 많은데 굳이 왜그래요. 남들이 보면 아들이 껌도 안 사주는 줄 알아요."
"한 번에 새개 씩 씹으면 하루에 아홉 개야. 금방 없어져."
어쩌면 저장 강박증을 떠올리게할 어머니의 과잉 절약은 비단 껌 뿐만이 아니다. 마스크도 하루가 아니라 때가 타서 윤이 반들반들 날 때까지 쓴다.
"마스크는 하루에 한 개씩 갈아야해요. 어머니 재활치료 받으실 때 사람 많잔아요. 또 오늘처럼 외출하면 꼭 새 것으로 갈아 써야해요.
아무리 말을 해도 어머니는 그때 뿐이다.
나의 어린 시절 껌은 무척 귀했다. 사서 먹을 생각은 꿈에도 못했고 사격훈련 중인 미군 탱크에서 멀찍이 떨어져 '핼로우 기브 미 껌'을 외쳐 겨우 한 통 얻으면 친구 들과 한 개씩 나누어 입에 넣고선 하루 종일 씹었더랬다. 밥먹을 때나 잘 시간에는 벽지에 붙여놓았다가 다음 날 떼어내어 씹고 또 씹어 단물이 다 빠지면 어머니 몰래 부엌 찬장에 있는 설탕봉지에서 설탕을 한 숟가락 퍼넣고 씹었던 귀하디 귀한 간식 겸 입 안의 장난감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껌 하나로 일주일을 씹으셨다. 나와 내 동생은 그런 어머니의 악착같은 생활력 덕분에 어린 시절 집에 과자와 같은 간식은 없었어도 그 시골 깡촌에서 세계문학전집에 세계 위인 전집, 백과사전까지 모자람없이 많은 책을 읽었고 그 당시 농촌 가정에서는 꿈도 못꾸었던 과외공부까지 받았으니 초등학교 5학년경 서울로 유학와 그나마 지금 밥벌이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어준 어머니의 희생 덕분이다.
요즘은 식사 후 껌을 씹는 일이 드물다. 집이든 회사든 모두 양치질을 할 수 있고 밖에는 몇걸음 마다 한 곳 씩 있는 편의점에서 가글을 사서 양치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껌은 여타의 다른 것들과는 달리 입 안에 달콤한 향기를 머금게 해주고 또, 치아도 튼튼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으며 소화 기능을 돕는 등 장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그런데 껌을 길거리에서 바닥에 뱉어버리는 순간 제거하기 힘든 골치 아픈 쓰레기가 된다. 시내 중심가 사거리 바닥에 붙은 수많은 껌들은 끌로 긁어내도 잘 떨어지지도 않고 아무리 떼어내도 자국이 남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바닥에 달라붙은 껌같은 인간 들이 있다. 얼마전 큰 아이에게 카카오톡이왔다. 폰이 깨져서 수리 중이니 지금 보낸 폰 번호로 친구등록하고 톡을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참 세상천지에 큰 놈이 내게 톡을 먼저하다니 이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대사건이다. 하도 안하던 짓을 하여 아이의 원래 번호로 톡을 보내 보니 '헐 진짜 저렇게 오네'라고 하며 자기가 보낸 톡이 아니라고 하여 이내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채고 즉시 톡을 삭제하였다.
아이디어가 신박하다. 그 머리를 좋은 일에 쓰면 얼마나 좋을까. 보이스피싱범은 선량한 사람들을 속이고 양분을 빼먹는 회충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일부라도 타인에게 내어준 적이 있을까.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버려지는 껌보다 더 못한 게 아닐런지, 바닥에 붙은 껌을 떼어내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서 악함을 지워내는 노력이 필요한 세상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껌은 씹는 동안 단맛과 달콤한 향기를 주지만 살아가는 동안 나는 한번이라도 타인을 위해 잠시라도 나를 내어준적이 있었던가. 그리 생각하면 누가 어떻게 씹느냐에따라 껌 한 조각도 무척 소중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쓰레기가 될 수도 있으며인간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길거리 껌딱지보다 못한 존재가 될수있음을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