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발리에서 한 달 살이를 마치고 돌아와, 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간 매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방문한 곳만 20여 곳, 온라인에서 검토한 곳까지 포함하면 50곳이 넘는 공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방향성을 가지고, 사부작사부작,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습니다. 어쩌면 “부지런한 백수”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시기였습니다. 3월부터는 바리스타 자격증과 와인 테이스팅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회사에서 사업기획과 커뮤니티 운영 경험은 축적했지만, 공간 기획이나 커피 추출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습니다.
공간 설계는 인테리어 전문가와 함께하면 되겠지만, 커피는 결국 스스로 내려야 했기에, 맛있는 한 잔을 내릴 줄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고,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했던 와인 테이스팅 자격증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커뮤니티 사업을 한다면서, 왜 굳이 공간을 마련하나요?
스스로에게도 수없이 던진 질문입니다. 커뮤니티 사업을 하는데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가 하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커뮤니티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형태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카카오톡 단톡방도 커뮤니티이고, 네이버 카페나 SNS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관계도 커뮤니티입니다. 트레바리, 넷플연가, 소모임, 문토와 같은 모임 중심의 오프라인 커뮤니티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정의하는 커뮤니티의 모습입니다. 제가 정의하는 커뮤니티는 단순한 서비스의 소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고,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며, 공동체로 연결되는 장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감은, 결국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생한다고 믿습니다. 상대방의 눈빛과 시선, 언어와 침묵, 그리고 수백 가지 미묘한 교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오프라인 만남. 수많은 콘텐츠를 공유해도, 결국 한 번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깊이 연결됨을 경험합니다.
그렇기에, 온더저니클럽의 시작에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반드시 자체 공간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공간 대관을 통해 5년간 북클럽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드나들며 자연스러운 트래픽이 형성되는 고유한 공간에서 커뮤니티 모임을 열고 싶었습니다.
상반기 네 달 동안, 공간을 찾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어떤 활동과 모임이 발생하는지, 무엇보다 제가 추진하고자 하는 커뮤니티의 세부 기획이 명확하지 않았고, 적정 투자 규모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좋은 매물을 발견해도 과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옵션을 검토하겠다는 신중함이 오히려 좋은 기회들을 놓치는 결과로 가져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시간들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상하던 커뮤니티의 모습이 점차 명료해지고, 예산의 범위가 잡히면서 비로소 나만의 기준이 잡혔거든요.
공간을 준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공간 기획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공간 계약이 먼저일까요?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기획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간이 확정된 후 디벨롭되는 부분들도 상당합니다. '덜컥' 계약하는 무모함은 피해야 하지만, 나에게 '좋음'의 기준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온더저니클럽의 경우, '삶을 여행처럼 살아가기', '깊이 있는 사색', '독서와 글쓰기', '의미 있는 모임(독서모임, 명상, 강연, 콘서트 등)' 등의 큰 방향성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공간은 ‘찾아오는 공간'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그래서 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번화가 한복판보다는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동네
최소 12명 이상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가끔 큰 행사를 열 수 있는 트인 구조
1층보다는 2층 혹은 3층
리모델링이 필요 없거나 비어 있는 상태
감당 가능한 월 임대료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
이 기준을 바탕으로 찾았지만,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후암동, 효창공원, 남영동 등지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찾다가, 이런 식으로 기다리기에는 영원히 결정할 수 없겠다 싶어서 경의선숲길을 따라 살펴보던 중, 5월 말, 지금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 방문에서 즉시 매력을 느꼈고, 다음 날 바로 계약 의사를 밝히며 계약 일정을 확정했습니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이상적인 공간이었어요. 이토록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축적된 구체적인 기준들과 명료해진 기획 덕분입니다.
공간 계약 과정
5월 27일 : 공간 매물 현장 확인
6월 3일 : 인테리어 디자이너 첫 미팅
6월 9일 : 임대차 계약
6월 18-20일 : 보건소 및 위생교육
6월 24일 : 영업신고 및 사업자등록
6월 26일 : 인테리어 디자인 계약
7월 5일 : 철거 시작
이제 공간이 확정되면서 창조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용 18평 규모에 높은 창문이 있고, 경의선숲길을 따라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이 특별한 공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행자들에게 어떤 의미 있는 경험과 진정한 연결을 제공할 수 있을지 상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획, 기획, 또 기획입니다. 공간 기획부터 콘텐츠 기획, 모임 기획, 굿즈 기획까지, 하나하나 정성껏 구성하며 알찬 콘텐츠로 채워 넣는 일을 시작합니다. 4개월간의 탐색과 고민이 있었기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