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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소의 조건

좋소기업으로 불리는 기업의 필수 조건

by 김성열

좋소기업이라고 들어들 보셨죠? 근무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중기업이나 소기업을 낮게, 얕잡아서 부르는 말(멸칭)이죠. 인터넷 돌아다니다 보면 좋소기업의 현실이라며 우스개처럼 올린 자료들이 많이 보여요. 좋소의 점심 메뉴, 좋소의 면접, 좋소의 명절 선물, 좋소의 연봉협상, 좋소의 회식, 좋소의 승진, 좋소의 퇴사 등등. 아주 다양한 좋소만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들이 넘쳐나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아, 저러면 좋소기업이구나...'라고 생각해요. 한발 더 나가면 '그럼 우리 회사도 좋소네...'라는 생각을 갖기도 하죠.


그런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들어맞는다고 무조건 좋소기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래요. 단편적인 몇 개의 이미지만으로 캐릭터를 고정시켜 버리는 것은 성급하죠. 좋소라는 소리는 듣는 기업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을테구요. 미시적인 몇 개의 현상만으로 좋소를 정의하는 건 무리라는 얘기에요. 물론 그런 현상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 일련의 현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소로 평가되는 필수적인 조건이겠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스템'의 문제에요. 여기서 시스템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업답게 굴러가기 위한 시스템'이에요. 인터넷에서 보이는 좋소의 열악한 모습들의 대부분은 시스템이 없거나, 시스템을 나쁘게 쓰거나, 시스템이 있지만 배제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에요.


무주공산 ㅣ 無主空山 - 시스템의 부재

급여체계나 직급체계가 없다고 해봐요. 경영자가 그때 그때 마음 가는 대로 월급 올리고 내리고, 직급 달아주고 떼고 할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근로자가 평정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까요? 내 밑으로 들어온 직원이 나보다 월급이 더 많고, 나보다 경력이 더 짧고 업무역량도 별로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내 위로 올라오면 돌아버리죠. 사람은 다른 이들과 엮여서 살아가는 환경에서 '공정함'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해요.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동기부여가 되고 애사심이이 생기기는 어렵겠죠. 게다가 기준도 없이 아무나 갖다 놓고 아무렇게나 줘가면서 일시키면 일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죠.


주인이 없는 산은 깃발을 먼저 꽂는 사람이 임자에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기업(주인 없는 산)에는 그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심지어 경쟁자도 없으니 멋대로 꽂으면 되는 거예요. 힘없는 일반 직원 입장에서는 깃발이 꽂힌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거죠. 깃발을 잘 꽂으면 문제가 없지만, 규칙도 체계도 없이 지 멋대로 꽂는 깃발이 다른 사람을 위한 깃발이기는 어려워요. 밖에서 보기에는 깃발이 아니라 그냥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쓰레기일 뿐이죠. 요소 요소에 제대로 깃대가 서지 않고 쓰레기만 잔뜩 널려있는 산을 기업으로 치자면 좋소가 되는 거죠.


감탄고토 ㅣ 甘呑苦吐 - 시스템의 오용

조미김 몇 장, 콩나물 서너 줄기가 떠 있는 멀건 국, 김치 몇 조각, 지은지 이틀은 돼보이는 누런 밥이 휑하게 올라가 있는 스뎅 식판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저러니까 좋소 소리를 듣지'라고 생각을 하죠. 기업 시스템과 관계지어 생각하는 경우는 적어요. 스뎅 식판이 내 식판이라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경영자가 야박하고 못됐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거기에 함정이 있어요.


회사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식사제공'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시스템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녜요. 그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냐는 거죠. 경영자가 됐든, 관리자가 됐든,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거나 입맛에 맞추고 싶은대로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에요. 시스템이 달짝지근하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거죠. 시스템은 조직 전체가 잘 굴러가도록 운영하는 건데 자기 입맛에만 맞추면 결국 누군가가 손해나 피해를 봐요. 누군가가 시스템을 자기 입맛에 맞게 쓰는 것은 기업 운영 측면에서 손실이죠. 그러면 좋소라고 불릴 수 밖에 없어요.


무법천지 ㅣ 無法天地 - 시스템 위반

시스템을 위반하거나 부정하는 경우도 좋소에서는 흔해요. 입사를 하면 근로계약서를 쓰잖아요.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내가 서명한 근로계약서를 주지 않거나, 근로기준법에서 필수로 정한 항목이 빠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종용하는 경우가 좋소에는 많아요. 이건 사회가 정한 '법률'이라는 시스템을 부정 하는 거죠. 법률은 사회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거예요. 그 조차도 준수하지 않는 자가 위계에 의해 권력이 정해진 '평등하지 않은' 조직에서 구성원들의 권리를 보장할 의지가 있을까요?


다른 것도 많아요. 시간외 근무 수당을 주지 않거나, 급여에 퇴직금을 포함하거나, 일할 사람 구해놓고 나가라며 퇴직을 못하게 해요. 근로기준법 뿐만 아니라 헌법(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나몰라라 하는 거죠. 이런 시스템 위반이 일상화 된 기업을 좋소 말고 다르게 부를 방법은 없죠.


좋소는 결국 시스템이 문제인 거죠. 없거나, 멋대로 쓰거나, 안 지키거나 하는 거죠. 그런 좋소 기업이 돌아가기나 할까요? 아쉽게도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가요. 여유가 좀 있다면 사장님은 연두색 번호판 달린 세단을 끌고 골프를 치러 가죠. 직제에도 없는 사모님이, 사장님 조카가 와서 직원들을 부리죠. 사람은 숫자일 뿐이고 빠진 숫자는 그냥 채워버리면 그만이에요. 그러다보면 직원들이 죽어나가요. 시스템이 제대로 돌지 않으니 체계 없이 일해요. 업무의 효율과 능률은 바닥을 기고 개인의 업무 역량은 느린 걸음을 하게 되죠. 쌓인 분노는 갈길을 잘못 잡아 주식 한 조각 없는 직원들끼리 반목하고 미워하고 싸움질 해요. 그렇게 시달리다가 몸은 몸대로 지치고 마음은 마음대로 썩는 거죠.


'좋소'는 우스개 소리로 그칠 게 아니에요. 누군가는 그 좋소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야 해요. 2023년 통계를 보면 대한민국 2,530만명의 전체 근로자 중에 1,900만명이 종업원 99명 이하 사업체에서 일을 해요. 종업원 99명 이하의 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구요. 좋소기업이 정말로(?) 있다면 아마 이 99% 안에 들어갈 확률이 높겠죠.


뭐가 됐든 좋소도 직장이에요. 직장은 직장다워야하고 직장인은 직장인답게 대접 받아야 맞다고 봐요. 물론 그 좋소기업들이 당장 그럴싸할 기업이 되길 기대하는 건 지금으로는 무리죠. 누가 와도 한번에 바꿀 수 없는 게 확실해요. 그렇다고 썩어문드러진 가슴을 안고, 피멍이 든 마음을 부여잡고 눈물바람으로 살 수만은 없는 일이에요. 할 수 있다면 좋소에서도 덜 아프게, 더 직장인답게 살 수 있어야 해요.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이 좋소라면, 이제 그 고민을 시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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