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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Aug 27. 2019

인맥의 힘은 어디까지 유효할까?

직장생활에서 인맥의 한계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에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로 인맥을 꼽는다.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인맥을 개인의 능력이자 경쟁력이라고 한다. 한 설문조사에서 인맥을 능력이라고 답한 직장인이 91%에 달하는 것을 보면 직장인들이 인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실제로 인맥을 이용해 영업 라인을 넓히고, 시장 정보나 경쟁사 정보를 입수하고, 막힌 일을 뚫어내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인맥도 과연 능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위기는 소위 마당발이라고 불리는 직장인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반면에 인맥도 변변찮고 인맥관리도 허술한 많은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인맥이라는 것은 한계가 뚜렷한 편이다. 특히 직장을 떠나거나 일하던 분야에서 벗어나면 인맥의 효율은 급속하게 낮아진다. 직장생활 중에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서로를 '어떤 회사, 어떤 직급의 아무개'로 기억한다. 이런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회사', 어떤 직급'이지 '아무개'가 아니다. '아무개'는 '회사'와 '직급'을 상징 혹은 대리하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다. 만약 '아무개'가 직장을 그만두면 '다른 아무개'가 회사와 직급을 대리하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직장생활에서 맺는 관계의 대부분은 비즈니스가 근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즈니스가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매일 얼굴을 마주 보고 몸을 부대끼며 함께 일한 사이라면 '아무개'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더 크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직장생활을 통해 쌓은 인맥은 일정한 공백기 정도면 대부분 사라져 버린다. 흔치 않겠지만, 직장생활을 한참 하다가 1년 정도 백수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이해한다. 자리를 떠난 처음 한 두 달 정도는 업무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오고("부장님, 언제 그만두셨어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인사를 건네고("과장님, 잘 지내시죠?"), 빈말일지언정 약속을 청하기도("차장님, 퇴사 기념으로 식사 한번 하셔야죠?") 한다.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의 빈도는 줄어든다. 결국 '아무개'를 기억해주던 몇몇을 제외하곤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즈니스가 끝났어도 형님, 동생 하며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긴 하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는 다음 비즈니스를 위한 일종의 적금 성격이 있다. 관계를 굳이 끊을 필요는 없으니 큰 힘을 들이지는 않고 유지만 해두는 것이다. 그러니 직장을 떠나거나 일하던 분야에서 멀어졌을 때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의리가 없다고 힐난하거나 섭섭하다고 할 필요가 없다. 비즈니스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맥은 기본적으로 '필요'에 의한 관계다. 생각만큼 끈끈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진짜 인맥의 한계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관계 맺기가 너무 허술했기 때문에, 관리가 치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맥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관계 맺기도 하기 나름인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하고 싶은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책 <티핑 포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었을 때 자신을 진정으로 실의에 빠지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2명 정도를 든다고 한다. 국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나서서 도와줄 사람의 수'를 묻는 설문에 10.9명이라는 답이 나온 것과 비슷하다. 심리학자들은 그 12명 정도의 사람들을 '공감 집단'이라고 한다. 공감 집단은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친근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나 관계를 말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우리가 12명 정도의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이유를 '사람에게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죽음 앞에서 실의에 빠질 정도로 절친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투자해야 할 최소한의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수가 12명을 넘어서면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의 배분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만약 공감 집단 구성원을 30명으로 만들려면 12명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반 이하로 나누어야 한다. 그러면 관계의 밀도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밀접하고 돈독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평균 12명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관계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12명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인맥 관리 고수들의 각종 스킬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12명에게 느꼈던 관계의 끈끈함을 30명에게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공감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 12명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인맥이 갖는 두 가지 속성을 드러낸다. 하나는 그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맥의 친근함이나 돈독함은 공감 집단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맥이 풍성해도 정서를 공유할 정도의 유대감을 갖는 관계가 아닌 사람이 인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의 인맥에서 거의 고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가족과 절친한 친구를 빼고 나면 공감 집단에 포함되는 사람은 몇 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직장생활을 통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감 집단의 바깥에 속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들끼리 아무리 형님, 동생이라 불러도 공감 집단에 들어갈 정도의 수준은 아닌, 대부분 피상적 관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곁들여서 말하면, 직접 만나고 대면해서 맺은 관계도 이럴진대 SNS 같은 온라인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관계의 대부분은 '피상적 관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피상적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인맥을 업신여기거나 '마당발'이 무의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강준만 교수처럼 피상적인 관계가 삶의 경쟁력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인맥, 마당발의 효율성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런 관계가 나의 결여된 부분을 채워줄 것이라고 맹신하지는 않아야 한다. 관계를 통해 나의 결여된 부분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순간, 관계 유지를 위한 행위는 인간적임을 가장하는 허위가 된다. 그런 거짓 관계로 연결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비록 피상적인 관계에 머문다고 해도 관계가 감정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해야 한다. 그래야만 관계로 인한 상처를 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 인맥관리는 그러한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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