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평가의 불편함
'회사' 형태를 한 직장의 대부분은 인사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교과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인사평가는 직원 개인의 직무 성과를 기준으로 업적, 능력, 태도를 평가하여 그 결과를 통해 조직의 성장을 도모하고 직원 개인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시행된다. 그런데 이런 의의와는 달리 인사평가에 대한 직장인들의 신뢰도가 매우 낮다.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재직 중인 회사의 인사평가를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인 60.5%나 됐다. 또,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사평가제도에 대한 직장인 인식조사'에는 무려 75.1%가 인사평가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과나 역량을 정량적으로 정확하게 산출해낼 수 있다면 인사평가에 대한 불신이 훨씬 덜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속 시원한 평가는 들인 시간과 노력이 곧바로 생산의 양이나 수로 이어지는 작업에서나 겨우 가능하다. 심지어 생산량과 개수가 성과로 기록되는 생산직의 경우에도 100% 정량적인 인사평가는 쉽지 않다. 책상머리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회계관리 담당자나 인사관리 담당자의 성과를 오직 숫자로만 치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인사평가는 일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동반한다. 근래에는 성과중심형 인사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인사평가에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덕분에 수많은 인사평가 기법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객관적인 인사평가는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점이 바로 직장인들로 하여금 인사평가를 불공정하다고 여기고 불신하는 주된 이유다.
불공정의 원인
인사평가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내정치에 의한 평가'다. 사내정치를 쉽게 말하면 '줄 서기', '줄 세우기'다. 줄 서기와 줄 세우기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의도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만나서 만들어진다. 줄을 서는 사람은 영향력 있는 사람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고, 줄을 세우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드는 것이다. 사내정치는 인사평가에도 영향을 끼쳐 평가자로 하여금 자신의 줄에 서 있는 사람을 먼저 챙기도록 만든다. 흔히 말하는 '내 사람 챙기기'다.
줄 세우기, 내 사람 챙기기는 여의도 정치판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이런 광경은 흔하다. 힘 있는 상사에게 줄을 섰다는 이유로 별다른 성과도 없이 승승장구하는 얄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내정치와는 거리를 둔 덕분에 성과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서로 다른 줄을 선 사람끼리 서로 평가의 공정함을 얘기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다. 사내정치의 관점에서 인사평가는 줄을 서는 사람이 노리는 이익 중에 하나이고 줄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권력의 과시의 수단이 돼버리는 것이다. 줄을 서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높은 사람에게 아첨하고 자신 선 줄을 위해 패를 나눠 싸우는 모습도 볼썽사나운데 그것이 인사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공정에 대한 판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다. 이런 사내정치에 의한 인사평가의 불공정은 상사가 부하직원을 평가하는 하향식 평가 시스템을 갖춘 조직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미지 평가'도 인사평가가 불공정하다는 불신을 품게 만든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때 평가받는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다. 인사평가 시스템은 그런 주관적인 인식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지며, 인사평가가 성과를 움직일 수 없는 기준으로 삼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실제 평가에서는 이미지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무척 많다. 평가자의 주관을 넘어서 감정이 개입되는 것이다. 그 결과 성과는 높지 않아도 성실함, 열의, 애사심, 친절함, 싹싹함, 예의범절 같은 이미지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설사 평가받는 직원이 그런 좋은 이미지를 지녔더라도 성과 중심의 평가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평가자만 느끼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성과를 높이는 대신 '괜찮은 직원'이라는 이미지를 평가자에게 심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평가자의 위치에 있는 상사에게만 좋은 이미지를 심으려고 안달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실력보다는 이미지로 평가받고자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지 덕분에 낮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사평가에서 나타나는 오류 중에 가혹화 경향, 상동적 태도가 여기에 속한다. 가혹화 경향은 성과나 능력을 의도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평가자가 평가받는 직원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졌을 때 가혹화 경향이 생기기가 매우 쉽다. 평가자에게 가혹화 경향이 생기면 '성과는 그럭저럭 냈는데 별로 성실해 보이지 않아서'라든가 '성과는 좋은데 상사를 대하는 태도가 나긋하지 못해서' 점수가 깎인다. 상동적 태도는 가혹화 경향보다 한 발 더 나간다. 상동적 태도는 평가자가 평가받는 사람에 대해 지닌 나쁜 감정을 평가에 노골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쁜 감정이란 분노, 질투, 증오, 복수심처럼 '대상의 불행을 바라며 해를 가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는' 것들이다. 이런 감정이 있으면 좋은 평가를 줄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나마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다행인데, 아예 그 감정을 그대로 평가에 반영해서 낮은 평가를 주게 되면 공정함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온정주의 평가' 역시 인사평가가 불공정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평가는 공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온정주의는 그러한 냉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온정주의에 빠지게 되면 원칙 대신 관계의 유지에 집중하게 된다. 하루 이틀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니 될 수 있으면 좋은 평가를 줘서 평가하는 사람이나 평가받는 사람 모두 불편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인사평가의 오류 중에 평가받는 사람의 성과나 능력을 실제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관대화 경향이 바로 이 온정주의에 속한다. 온건주의에 이끌린 평가자는 모두에게 관대한 평가를 했으니 다 좋은 것 아니냐고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평가를 받는 사람의 입장은 다르다. 못한 사람이나 잘 한 사람이나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상대적으로 잘 한 사람은 거꾸로 손해를 입는 셈이 된다. 못하면 못한 대로, 잘하면 잘 한대로 평가하는 것이 모두가 말하는 공정함이다. 모두에게 고르게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평가자 혼자 마음 편하려는 이기주의 밖에 되지 않는다.
마지막은 '연공서열에 의한 평가'다. 이 평가 방식은 성과나 능력보다 경력이나 근속 연수, 나이, 학력 같은 것들을 평가에 우선 반영하는 방식이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계량화되어 있는 요소들로 평가를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아서 편하다. 실제로 연공서열에 의해 승진과 호봉을 정하는 조직들도 많다. 공무원 사회가 연공서열을 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조직이다. 문제는 연공서열과는 관계없는 인사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서, 실제 평가에서는 연공서열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평가자가 연공서열을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평가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온정주의적 평가의 이유가 필요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다.
평가시스템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시스템 외부의 요소들이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시스템이 원하고 제공하는 요소들만으로 평가가 부족하면 다양한 외부 관점들이 개입된다. 연공서열도 그중에 하나다. 경력이나 근속 연수, 나이, 학력 같은 것들은 '정량적' 형태로 나타낼 수 있으니 평가의 기준으로 삼기에 더없이 적절한 것이 된다. 물론 그런 것들은 '정량적'이 아닌 단순히 '숫자'일뿐이지만 말이다. 온정주의적 평가에서는 연공서열이 평가의 합리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이 정도 경력에, 이 정도 근속 연수면 이 정도 평가를 주는 것도 괜찮다는 평가자의 자기 합리화가 가능해진다. 평가자의 게으름은 연공서열을 손쉬운 평가 수단으로 선택하게 만든다. 평가를 위해서는 대상을 관찰하고, 업적을 분석하고, 역량을 가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과정이 귀찮은 평가자는 연공서열대로 순위를 늘어놓는 방식을 택한다. 게으른 평가자 입장에서는 이미 '서열'이 매겨져 있으니 그만큼 간편한 평가 방법도 없다.
공정함이 우선
인사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이 동의한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인사평가제도가 필요 여부에 대한 질문에 73.7%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동시에 인사평가 후 이직을 고민했다는 답을 한 직장인도 84.6%나 되었다. 인사평가의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그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이중적인 상황이다. 이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다. 불공정한 평가에 의해 자신의 노력과 성과가 낮은 평가를 받거나, 합리적이 이유 없이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평가는 조직 차원에게는 승진이나 임금 인상, 보상, 처벌 같은 고용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기초 정보를 제공하고 직원들에게는 동기 부여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인사평가가 공정하지 않으면 조직은 고용에 관한 판단을 위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으며 직원들은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어버린다. 많은 조직들이 인사평가의 트렌드나 검증된 기법에 매달린다. 하지만 정작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평가의 품질이 아니라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하느냐이다. 인사평가의 대상은 직원들이다. 그들에게는 평가를 얼마나 잘하느냐 보다 공정함이 더 우선이다. 그러니 어떤 평가 기법을 선택할 것이냐는 고민 전에 그 평가 기법을 직원들이 공정하게 여길 지, 평가를 받는 당사자들에게 물어라도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사평가는 인사담당부서의 형식적인 업무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인사평가는 어디까지나 공정함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