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 대 1
평일인데도 도서관에 사람이 참 많다. 방학이 아니라서 중고등학생은 보이지 않는다. 일반인들과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람실에 그득하다. 서고의 작은 책상도 빈자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 어깨를 죄어오는 열람실 책상 칸막이가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열람실에 미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로 보인다. PC를 사용할 수 있는 방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휴게실에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룹 스터디를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음료수를 손에 들고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짐작하건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하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몇 명이나 합격의 기쁨을 누릴지 궁금해졌다.
2019년 9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의 평균 경쟁률은 39.4 대 1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전체 평균이 그 정도이고 9급 일반 행정직 전국 선발의 경우 114.1 대 1이라고 한다. 지역 선발도 별반 다르지 않아 115.3 대 1의 경쟁률이었다. 경쟁률이라고는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를 때 9.6 대 1을 경험한 것이 전부인 대입학력고사 출신의 나는 입이 떡 벌어진다. 아마 대입학력고사를 치를 때 내가 지원한 학과가 114.1대 1이 아니라 39 대 1의 경쟁률만 되었어도 나는 시험을 포기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몇 해 전보다 경쟁률이 많이 떨어진 거라는 사실이 더 놀랍다. 2016년 9급 일반 행정직 전국 선발 시험의 경우 경쟁률이 406.6 대 1이었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도서관 열람실의 좌석 수는 400 개다. 이 중에 절반인 200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114.1 대 1의 경쟁률을 적용해 계산하면 1.75 명이 합격한다. 두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열람실 통유리문을 통해 사람들의 열심을 보면서도 과연 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합리적인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합격한 두 명은 고생의 대가를 누리겠지만 나머지 198 명은 '경험'이라는 허울만이 남는다. 4년, 5년을 공부에 쏟고 있는 '장수생', '고시 낭인'이 흔한 세상이다. 그들이 이 경쟁을 지속하는 것은 얼마나 현명한 일일까?
공부 잘하는 것도 재주
각자의 인생이니 어떻게 살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야 상관치 않는 게 옳다. 직업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개인의 주관을 깎아내릴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붙들고 늘어진다고 다 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말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두라고 권하고 싶다. 보통 1년 안에 시험 과목 전체를 한번 이상은 공부한다고 하고, 지방직, 국가직 시험이 매년 있으므로 2, 3년이면 시험 과목도 서너 번 이상 공부했고 시험도 여러 번 치렀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아직 필기시험조차 합격하지 못했다면 시험 준비를 그만두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자. 밤을 새도 성적 안 나오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놀면서도 성적 잘 나오는 얄미운 친구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공부의 적성과 기질은 사람마다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5~7 개의 과목을 공부한 지가 몇 년이 지났다면 더 나올 점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고등학교 공부를 남들보다 2, 3년 더 한다고 해마다 성적이 늘어 서울대에 갈 수 있지는 않은 것과 같다. 공부가 아무리 엉덩이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학습능력은 갖춰야 한다. 인내, 끈기 따위는 옵션이지 필수가 아니다.
몇 해 전, 같은 부서의 직원이 한여름에 퇴사를 했다. 당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고 신혼이었다. 두어 달 쉬더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 9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합격을 했다. 노력, 끈기 따위의 드라마틱한 사연은 없었다. 그냥 시험 과목대로 공부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잘 나가는 상위권 대학 출신이다. 소위 말하는 '공부 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기질이 타고나는 것도 행운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행운이 공무원 시험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또 다른 입시
아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이 학창 시절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시험에 대한 태도나 각오, 의식과 절실함이 그때와는 다르며, 학교 다닐 때 안 해서 그렇지 열심히 하면 꽤 잘하는 머리를 가졌다고, 열심히 하면 분명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 역시 같은 생각과 각오로 임한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학을 두고 경쟁하던 것과 상황은 거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번엔 경쟁자 모두가 같은 대학을 목표로 한다.
고등학교 때는 성적에 맞춰서 대학교를 선택하게 된다. 성적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같은 수준의 대학교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그런 '등급'을 선택을 할 수 없다. 한 고등학교의 학생 모두가 같은 대학교를 목표로 시험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2019년 9급 일반 행정직 공무원 시험의 경우 4,350명을 선발하는 데 17만여 명이 지원했다. 응시자를 20만 명으로 치면 5,100 명 정도다. 공부 말고 다른 것을 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보자. 1,000 명 중에 25등, 200 명 중에 5등, 40 명 중에 1등을 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대평가의 함정
게다가 대한민국의 공무원 시험은 상대평가다. 내가 아무리 잘 봐도 다른 사람이 더 잘 보면 밀려나야 한다. 이전 시험의 결과가 다음 시험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매 시험이 그때마다의 경쟁률과 그에 따른 합격 확률을 갖는다. 이번 시험에 아슬아슬했다고 다음 시험에서는 붙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는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련의 사건들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우연은 기억도, 양심도 없다."는 마틴 가드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 시험은 같은 과목을 여러 번 공부했다고 해도 매번 다른 시험을 보는 것과 같다. 공무원 시험은 경쟁의 질이 문제가 아닐뿐더러 오래 공부했다고 합격할 확률이 높아지는 시험이 아닌 것이다. 만약 공부에 투자한 시간과 성적이 무조건 정비례한다고 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오래 공부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성적이 오를 테니 말이다.
경쟁률은 몇십 대 1이지만 허수가 많다는 얘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응시율이 높다는 것이지 실제 경쟁률은 그렇게까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경쟁률에서 허수를 뺀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죽도록 공부한 사람이 응시만 하고 시험을 치르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응시만 하고 시험을 보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준비가 안된 사람일 확률이 높다. 결국 허수가 빠지면 알짜들만 남는다. 39 대 1을 10대 1 경쟁으로 줄이면 그 안에는 알짜만 남는 것이다. 선지원 후시험을 치르던 대입 학력고사 시절 10대 1의 경쟁률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했다. 3년 동안의 학업과 모의고사를 통해 합격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학생들만 응시하기 때문이다. 경쟁률에서 허수를 빼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희망과 희망사항
시험을 준비한 사람들은 성공 케이스를 바라보면서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다. 합격한 4,350 명을 본보기로 삼는다면 낙방한 16만 7천 명에도 어느 정도는 시선을 줘야 하는 것이 공평하다. 하지만 낙방한 이들에게는 주목하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불합격한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16만 7천 명 안에 자신이 바라지 않는 자신을 집어넣기는 죽어도 싫기 때문이다. 불합격의 자리에 있을 확률이 월등하게 큰 자신을 외면한 채로 성공한 사람에게만 자신을 투사한다. 덕분에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지, 현실적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을 "다른 사람은 안 돼도 나는 될 거야."라는 낙관 편향을 근거로 시작한다. 초반의 실패는 경험으로 포장하고 '가능성'을 담보로 도전을 반복한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비로소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들지만 지금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쉽게 그만 두지를 못한다.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장수생, 고시 낭인의 길을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장수생, 고시 낭인은 모자란 실력 때문이 아니라 현실 부정과 편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에서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공무원 시험 학원만 한다. 그들이 진심으로 합격을 기원하고 응원하는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불합격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음을 미덕이라고 말한다. 격려로 좋게 들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포기도 선택지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몇 년 해봐서, 몇 차례 시험 봐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냉철하게 자신을 분석하고 자질과 가능성을 점칠 필요가 있다. 희망에만 너무 매달리다 보면 다른 것에 접근할 기회와 때를 잃어버리기 쉽다.
공무원은 직업이다. 직업은 인생의 일부이며 수많은 방식과 형태가 있다. 인생에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음을 감안한다면 포기도 선택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공무원 시험처럼 승리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경쟁에서는 포기를 전략에 넣어둠이 현명한 태도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영리한 토끼는 쉽게 달아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뚫어놓는다는 뜻이다. 실패의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세 개의 굴 중에 하나는 '포기'여야 한다.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 적절한 시점에서의 포기는 썩 훌륭한 전략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