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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Nov 04. 2019

첫인상을 얕잡아 보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첫인상

어떤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나 신뢰도를 판단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이미지 컨설턴트인 카밀 래빙턴(Camille Lavington)은 그의 책 『You've Got Only Three Seconds』에서 3초를 주장했다. 3초면 상대에 대한 판단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나마 3초는 아주 긴 편에 속한다. 프린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제니 윌리스(Janine Willis)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0.1초면 충분하다. 0.1초 동안 얼굴을 '스쳐' 본 것만으로도 매력이나 신뢰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더 긴 시간 동안 얼굴을 본다고 해서 판단이 달라지는 일도 없다고 한다. 찰나의 시간을 통해 얻은 첫인상이 한 사람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를 정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동과 말을 판단하는 필터가 되는 것이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생김새, 태도, 말투, 옷차림, 목소리 같은 것들로 첫인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감각적 반응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며 '직감'이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첫인상은 대하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감각에 대한 반응 체계가 다르고 자기만의 추론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첫인상은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판단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첫인상은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의 씨앗이 되는 일이 잦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첫인상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누군가에 대해 갖는 첫인상에 대해서도 의미를 크게 두지 말아야 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갖는 첫인상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첫인상이 비록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판단에 영향을 주는 일이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직장생활만 놓고 봐도 그렇다.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부하직원에게 야박하게 구는 상사, 첫인상이 별로라는 이유로 비협조적인 동료직원, 회사에 대한 첫인상 때문에 계약을 주저하는 거래처, 첫인상이 좋아서 입사한 신입사원과 첫인상이 별로라서 면접에서 탈락한 입사 지원자 등, 판단과 추론 결과의 옳고 그름을 떠나 첫인상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첫인상은 오래간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오직 첫인상만은 아니다. "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을 경험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바뀔 수도 있다. 만약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첫인상을 가진 사람이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나를 대한다면 논리와 이성을 동원해 납득을 시키거나 감정에 호소해 설득을 할 수도 있다. 첫인상에 연연하지 않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첫인상을 그렇게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첫인상을 신경 써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첫인상은 오래간다는 사실이다.


첫인상이 오래간다는 말은 첫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어떤 사람에 대해 갖는 첫인상은 그 사람의 태도나 행동을 인식하는 기초가 된다. 첫인상이 좋으면 무얼 해도 좋게 보이고 실수나 잘못에도 관대해질 수 있다. 반대로 첫인상이 나쁘면 무엇을 하건 탐탁지 않고 실수나 잘못은 더 크게 보인다. 특히 나쁜 첫인상이 좋은 첫인상보다 더 강하고 오래간다. 이는 좋은 첫인상과 나쁜 첫인상이 서로 다른 평가의 체계를 갖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좋은 첫인상은 긍정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태도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게 만든다. 좋게 인식한 사람이 마음에 드는 일을 했으니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다. 만약 부정적으로 보이는 행동과 태도를 취했더라도 야박하게 마이너스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명백한 기만이나 배신을 당한 상황이 아니라면 0점 처리를 하는 정도로 마무리를 한다. 반면에 나쁜 첫인상의 평가 체계는 아주 혹독하다. 긍정적인 행동과 태도에도 아주 야박한 점수를 주거나 평가를 깎아내린다. 그리고 부정적인 행동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마이너스 점수를 준다. 나쁜 첫인상을 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웬만큼 잘하지 않고서는 나쁜 첫인상을 좋은 인상으로 바꾸기가 어렵다.


이처럼 첫인상이 강하게 지속되는 것은 초두효과(Primacy Effect)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초두효과는 처음 받아들인 정보가 나중에 받아들인 정보보다 훨씬 강력하게 각인되는 현상을 말한다. 닻 내림 효과는 처음 받아들인 정보가 기준이 되어 그 이후에 접하는 정보를 수용하지 않거나 처음 받아들인 정보를 수정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첫인상은 단편적인 정보를 감각적으로 분석해서 만들어진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판단이기 때문에 오류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되면 판단의 오류가 드러나게 된다. 논리적으로 접근한다면 드러난 오류는 수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초두효과나 닻 내림 효과가 발동하면서 기존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나도 첫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더 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판단과 믿음을 수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메커니즘 때문인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명백한 오류가 있음에도 기존의 판단과 믿음을 수정하지 않으면 심리적인 불쾌감을 겪어야 한다. 사람은 신념, 생각, 태도와 행동의 일관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불편해한다.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할 때 불편을 느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태도와 행동의 일관성을 상실한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하는데, 인지부조화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분석한 이론이 미국의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인지적 부조화 이론'이다. 이 이론의 가장 쉬운 예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다. 여우는 포도가 높이 달려 있어 딸 수가 없자 포도가 아직 덜 익어 시다고 말한다. 포도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서 포도를 먹고 싶어 하는 마음과 포도를 따지 못한 행동 사이의 부조화를 없앤 것이다.


첫인상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것도 인지부조화를 없애는 방식을 통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상사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다고 해보자. 그 직원에 대해 '예의가 바르다'는 첫인상을 가진 상사는 직원이 자신을 미처 보지 못했거나,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거나, 다른 급한 일 때문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굳이 첫인상이라는 판단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 어떤 직원에 대해 '예의가 없다'는 첫인상을 가진 상사의 경우 그 직원이 깎듯하게 인사를 하고 예의범절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면 인지부조화를 겪게 된다. 첫인상의 오류를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초두효과와 닻 내림 효과가 맞물리면 첫인상의 판단을 유지한 채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려 한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여우가 멀쩡한 포도를 신포도로 만든 것처럼 직원의 예의바름을 가식과 허위로 받아들이면 된다. "고개만 잘 숙인다고 인사가 아니지. 마음에서 우러나야 진짜 인사지.", "싸가지 있게 보이려고 쇼를 하는구만. 내가 그런 가식에 속을 것 같냐?"라고 생각하면 첫인상의 판단을 유지하면서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첫인상은 모순과 오류를 불편해하는 심리와 맞물려 오랫동안 강하게 유지된다. 그래서 한번 만들어진 첫인상은 쉽게 고칠 수가 없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49.2%가 첫인상이 거의 유지된다고 했고, 유지되는 편이라는 응답도 26.6%였다. 직장인 열 명 중에 일곱 명은 상대에 대한 첫인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게, 혹은 의도와 전혀 다르게 나쁜 첫인상을 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속상한 일이다. 오해라면 오해고, 오판이라면 오판인 첫인상 때문에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리는 일은 억울한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첫인상의 지속성이 갖는 영향력이다. 


첫인상에 속기 쉽다

때때로 관찰 대상의 의도에 의해 첫인상이 결정될 때가 있다. 쉽게 말해서 어떤 대상이 관찰자에게 특정한 첫인상을 갖도록 유도하는 데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첫인상을 의도하는 일은 일반적이긴 하다. 첫 출근을 하는 신입사원은 상사에게 예의 바르고 성실하다는 첫인상을 주려 애쓰고, 고객과 첫 대면을 하는 영업 담당 직원은 신뢰할 수 있다는 첫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는 그런 첫인상이 거짓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허위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거짓말을 감지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 첫인상을 신경 써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인상에 속기 쉽다는 것이다.


FBI 최초의 여성 프로파일러였던 메리 앨런 오툴(Mary Ellen O'Toole) 박사는 직감이 우리를 배신하는 일은 흔하다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직감은 안전을 반대하라고 자주 우리에게 말한다." 오툴 박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단편적인 정보를 이용해 처음 본 사람을 단 몇 분 만에 정형화한다. 그것이 첫인상이다. 오툴 박사는 첫인상이 직감의 사각지대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위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인상을 관리하는 데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오툴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인상을 관리하는 전문가들은 후광효과(Halo Effect)를 기만의 도구로 쓴다. 후광효과는 어떤 대상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이 그 대상의 구체적인 특성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신입사원에 대해 '영리하다'라는 첫인상을 갖게 되면 성실함이나 유능함 같은 부분에도 좋은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상을 관리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은 기만과 허위를 이용해 강력한 첫인상을 남기고, 그 첫인상은 후광효과를 발동시켜 대상의 구체적인 행위들마저 첫인상에 근거해 평가하도록 만든다. 사기꾼들이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걸치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인사를 들먹이는 이유가 바로 후광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첫인상에 배신당하는 이유는 짧은 시간 동안 한정된 정보로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체계화할 정보가 부족하면 '느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 상을 수상한 이스라엘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 박사는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WYSIATI'라는 개념을 말한다. WYSIATI는 'What You See Is All There Is'라는 구절에서 단어의 앞 글자만 따서 만든 말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당신에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다. 카너먼 박사는 사람들이 제한된 정보만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이유가 WYSIATI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적을수록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족한 정보로 만들어진 판단은 허술하기 마련이고 그 허술함을 직감으로 채워진다. 직감은 설명이나 증거가 필요하지 않은 ‘느낌'이다.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람의 증명사진, 목소리, 옷차림,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몇 가지 이야기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직장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를 생각해보면 사진, 학력, 경력, 자기소개서 속의 경험 따위로 전체적인 판단을 한다. 직감이 만들어낸 첫인상이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판단하는 사람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하겠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이 친구가 딱이네!"라고 해서 뽑은 직원이 첫인상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이 드러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첫인상의 힘

오래간다는 것과 속기 쉽다는 두 가지 특징만으로도 첫인상은 결코 얕잡아 볼 것이 못된다. 누군가에게 좋지 못한 첫인상을 주었다면 심리적인 불편함을 겪을 뿐만 아니라 삶의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감당해야 한다. 직장인의 경우 나쁜 첫인상이 평판이나 인사고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직장인의 70% 가까이가 첫인상이 지속된다고 한 설문 조사의 응답을 상기하면 나쁜 첫인상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직장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다는 '쿨'한 태도로 일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자존감을 높일지는 몰라도 부당하거나 잘못된 평가, 오명(汚名), 오해 같은 실질적인 불편을 초래한다. 


또, 첫인상을 너무 신뢰하면 논리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런 오류는 배신감, 분노, 억울함 같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영위하는 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신뢰감이 충만하다는 첫인상을 주었던 협력사 직원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유능하다는 첫인상에 반해 뽑은 직원이 실제로는 무능하기 그지없다면 불편한 감정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첫인상에 속은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오래가거나 속기 쉽다는 것은 첫인상의 강력한 속성이자 영향력이다. 하지만 그것이 첫인상의 실제 힘은 아니다. 첫인상의 실질적인 힘은 대상에 대해 선입견과 편견을 갖는 것, 판단의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에 있다. 바로 그 힘 때문에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누군가를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첫인상은 처음 마주하는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권력이다. 권력은 쓰는 것도, 대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권력을 잘못 쓰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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