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저는 언제나 A급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A급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여유 있는 실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기에 조급해하거나 불안한 기색은 전혀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데 심지어 실력이 좋아서 일도 인간관계도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 생각해보면 저는 항상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는 A급은커녕 B급이라고 하기에도 과장이 섞인 C급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저의 C급 판정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 증명된 바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최근에 연달아 제게 있었던 일주일 간 4번의 술자리 모임에서의 사건은, 제가 인간관계에서는 B급과 C급을 넘나드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여러 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글은 푸념 섞인 넋두리가 되겠군요.
저는 술자리나 회식같이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소통하는 장소에선 이상하리만치 부자연스러운 말을 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의 행동과 말에 대해 '자본주의적 미소'라던가 '그게 만약 연기라면 정말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저는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생각했습니다.
우선 저는 술자리와 같이 술의 힘을 빌려 실수든 진심이든, 자신의 속마음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는 선택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제 속마음은 A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저는 제가 A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평소엔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B나 C와 같은, 전혀 엉뚱한 생각을 마치 저의 생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지난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복기해보면, 당시 2차 모임에서의 주제는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다들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서 특별히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술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대화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참석했던 모임에 함께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은 가상화폐 투자를 진지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재미라고는 했지만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서 큰돈을 잃거나 벌기도 하였고, 가상화폐 시장은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분이었으니까요.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면 일단 저는 가상화폐 투자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의 나쁜 버릇이 발동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가상화폐 투자를 하는 이 분이 인간적인 매력이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마치 제가 가상화폐 투자에 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상대방의 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맞다고 마치 기계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가상화폐 투자를 할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실제 생각은 그게 아니더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마치 잘 훈련된 방청객처럼, 무슨 말에도 좋게 반응하고 과할 정도로 호응하거나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가라앉으려는 느낌이 들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조급증이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제가 아직까지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속마음을 보여주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좋게 표현한 것이겠죠, 사실 저는 제가 가진 진지한 생각,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생각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 혹여라도 제가 가진 진짜 속마음이 드러날 것 같으면, 괜히 이상한 말을 꺼내며 한편으론 빨리 다른 주제로 대화가 옮겨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다 보니, 저는 이상하리만치 술자리 계산을 자꾸만 제가 하려고만 합니다. 돈이 아깝지 않아서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써서 함께한 자리임였음에도, 저는 제 자신의 속마음을 제대로 소통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엉뚱한 소리나 해가며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미묘한 죄책감 때문에 계산이나마 하려고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저의 소통방식에 대해 나이가 어릴 때는 아직 잘 모르니까 좀 어리숙한 거라고 생각해주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렇게 넘어가 주진 않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31살 정도 되는 사람들의 행동과는 확연히 다른 저의 말과 행동, 생각(정확하게 표현하면 진짜 생각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억지로 짜내는 가짜 생각)을 듣고 나면 다른 사람들은 곧바로 저에 대해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지난 4번의 모임을 나갔을 때, '리액션이 진짜 특이하다', '너는 순진한 건지 영악한 건지 모르겠다', '이게 연기라면 넌 진짜 무서운 녀석이다'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겠죠. 신기한 것은,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서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말들을 해주는 분들이 차라리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면 이건 진짜 제 속마음입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저의 잘못된 습관과 버릇은 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제가 글을 쓸 때만큼은 자꾸만 더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어쩌면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제대로 된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종의 반작용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제가 A급의 인간관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괜히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저의 생각과 다른 생각에 대해 괜히 맞장구치지도 않을 텐데 말입니다. 오히려 정말로 제가 A급의 소통을 할 수 있었다면, 저는 솔직하되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표현으로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됩니다. 그러니 계속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