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인사발령이 있었습니다. 저는 해당자가 아니었지만, 지점 내에서 승진자도 나왔고, 서울 분이신 지점장님은 서울지점으로 발령이 나와서 지점 분위기는 꽤 좋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사발령이 났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것과 함께 같이 생활했던 동료가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엔 지금 지점이 첫 발령지였기에, 이번에 떠나시는 지점장님이 저의 첫 지점장님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이제는 서울로 가신 이전 지점장님이 제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제목에도 적었던 '바보 나라의 천재'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지점장님께서 해준 이야기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바보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천재는 바보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는 내용인데요, 아직 은행의 조직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보았던 지점장님께선 제게 일단 은행에 들어왔으면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문화도 우선은 적응을 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시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덕분인지,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9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요즘은 직장에서도 큰 갈등 없이 적응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은행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도 조금씩 생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며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보 나라의 천재'에 대한 이야기는 은행생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사람은 무슨 일을 하던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에,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합한 방식으로 말을 하고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이 바보 나라의 천재가 되지 않는 방법을 것입니다.
특히 요즘 저는 글을 쓰며 이 생각을 더욱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적는 글은 다른 사람에게 저의 생각을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사실은 저 자신을 위한 글쓰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취업과 창업을 고민하며 백수로 생활했었던 2020년엔 100편의 글을 적으며 복잡하고 혼란했던 저의 마음속 걱정과 고민을 글이라는 형태로 풀어냈던 것처럼, 그리고 2021년엔 어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속엔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기분이 들어 다시금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글쓰기를 했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제게 마음을 가다듬고, 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이며 지금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다 선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글, 소위 말해 팔 수 있는 글을 적는다면 지금 제가 브런치에 적는 글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사변적인 내용들 뿐이라 그리 인기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어떻게 적어야 독자들께 재미와 기쁨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이 지점에서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아버지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요약하면 '작가는 예술병에 빠지면 안 된다'인데요,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자신의 사상과 가치관을 글에 옮겨적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그걸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상업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구매할 필요를 느끼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아 작가의 철학과 가치관이 담긴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면 그건 정말 다행이지만, 아버지의 경험에 따르면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의 구성과 내용은 작가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업 작가는 자신의 가치관은 접어두고,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글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버지가 해주신 말의 핵심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가 보면, 저는 '바보 나라의 천재'가 되지 않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주관을 전부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아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제가 활동하게 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문화와 문법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오랫동안(어쩌면 지금도) 천재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이 강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은 왠지 피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자신의 고유한 생각과 가치관을 오롯이 반영한 결과물을 만들어내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 자체가 전형적인 바보 나라의 천재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형식과 운율이 있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처럼, 제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는 것 역시 정해진 양식과 문화를 충분히 받아들인 다음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득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답답하게만 느껴질 때면, 혹시 자신이 바보 나라의 바보들을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나아가 바보 나라의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것도 한 번쯤은 해보면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바보 나라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뜻과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분명, 나름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