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와 인간, 그리고 나의 ‘자기계발’ 실패담

by 아침햇살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오늘은 인간으로서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 뭐 이런 거창한 결심 말이다. 그런데 내 결심이 얼마나 허무한지, 부엌 어항 속 금붕어들을 보며 깨달았다. 어항에 새로 들어온 금붕어 한 마리가 고개를 번쩍 들며 “이제부터 내가 이 집 주인이오!”라고 선언하는 듯한 표정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존 금붕어들은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라는 눈빛을 주고받는다. 결국 어항 안의 평화는 누가 헤게모니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인간 사회와 닮았는지.


사실 인간이란 동물도 규율 없이는 못 산다. 중국은 충효와 우애를, 희랍은 용기와 웃음을, 미국은 근면과 절약을, 히브리 민족은 십계명을 강조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가 굴러가려면 뭔가 지켜야 할 규칙이 필요하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그런데 이 규칙들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규칙을 지키다 보면, 가끔은 ‘내가 금붕어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계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아리스토텔레스 형님은 “인간의 최종 목표는 선(善)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하려면 건강, 약간의 재산, 그리고 우정이 필요하단다. 여기서 ‘약간’이란 게 참 애매하다. 내 통장 잔고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약간’은 내게는 ‘엄청’이다. 그는 또 “친구 사이엔 정의가 필요 없지만, 재판할 땐 정의도 우정만 못하다”고 했다. 친구가 없다면 정의라도 좀 챙겨야지, 싶다가도, 현실은 친구도 정의도 없이 혼자 라면을 끓이고 있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공자 선생도 빠질 수 없다. 그는 “군자는 말하기 전에 행동하고, 소인은 행동도 전에 변명한다”고 했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위안을 찾는다. 나는 오늘도 위안 삼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집어 들었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삼각김밥을 먹고 ‘덕’에 대해 생각하느냐, ‘이게 몇 칼로리일까’ 고민하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이쯤에서 불교와 도교의 고수들도 한마디 거든다. 석가모니는 “이상적인 인간은 아홉 가지 해서는 안 될 일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살생, 도둑질, 거짓말, 미움, 어리석음, 두려움… 사실 이 중 몇 개는 이미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노자도 “도(道)를 깨달은 사람은 겨울 냇물을 건너듯 조심스럽고, 손님처럼 겸허하다”고 했다. 나는 겨울 냇물은커녕, 여름 에어컨 바람에도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산다.


이쯤에서 예수님이 등장하신다. 예수님은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마음이 빈 사람, 슬퍼할 줄 아는 사람, 옳은 일에 목마른 사람, 온정이 풍부한 사람,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 화해를 이끄는 사람, 그리고 옳은 일을 하다 박해받는 사람. 이쯤 되면 나는 복과는 거리가 먼 인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십자가는커녕, 월말 카드값 고지서만 봐도 어깨가 무겁다.


그렇다면 ‘새 사람’이 된다는 건 뭘까? 뱀이 허물을 벗듯, 인간도 생물학적 욕구를 하나씩 벗어 던지며 영적인 존재로 성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야식의 유혹을 못 벗어났다. 새 사람이 되려면,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처럼, 좋은 말씀을 삶에 ‘적용’해야 한단다. 성경이 아무리 옆에 있어도, 라디오에 건전지를 넣지 않으면 소리가 안 나는 것처럼, 내 삶에 그 가르침을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건전지 뚜껑을 어디에 뒀는지 찾고 있다.


마지막으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내 영혼의 채널을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 영혼의 주파수는 자꾸만 ‘먹방’ 채널로 돌아가는 게 문제다. 천문대에서 별빛을 모으듯, 마음의 창을 열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라는데, 내 창문은 미세먼지 때문에 늘 닫혀 있다.


결국, 이 모든 위대한 가르침 앞에서 나는 오늘도 삼각김밥을 씹으며 생각한다. “그래,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한 존재 아니던가?” 금붕어도, 공자도, 예수님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계발을 외쳤지만, 나는 오늘도 내 방식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언젠가는 나도 어항 속 금붕어처럼, 고개를 번쩍 들고 “이제 내가 주인공이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오늘도 내 삶의 어항에서 조용히 헤엄쳐본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일 아침 거울 앞에서 또다시 다짐하게 된다면, 이번엔 금붕어에게 먼저 물어봐야겠다.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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